여행/레져
“인명은 제천” 길위의 힘찬 인문학, WHO 건강도시
라이프| 2021-03-09 07:15
산정호수를 닮은 제천 제2의림지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데크길을 산책하는 동안 청정옥수가 가까이서 오래도록 동행한다. 제1의림지가 잘생긴 남친이라면, 제2의림지는 츤데레 남친 같은 묘한 매력이 있어,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의림지에서 솔숲을 지나 제2의림지까지 걷는데만 30분이면 된다. 비가 많이 내리면 동쪽 배수로를 넘어 의림지로 향하는데, 수평으로 길다란 폭포가 형성된다.
국립제천치유의숲

[헤럴드경제=함영훈 여행선임기자] ‘인명은 재천(在天)이 아니라 제천(堤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충북 제천에 가는 것 자체가 건강여행이기 때문이다.

높은 곳은 산이고 낮은 곳은 호수나 강이다. 이같은 파란만장한 식생에 약초가 잘 자라 국내 3대 약령시로 건재하고, 면역력을 키울 트레킹 명소가 즐비한 것이다.

이 시국, 최고의 가치로 손꼽히는 웰니스(Wellness) 클러스터 충북의 중심지이고, 정부 인증 웰니스 관광지를 보유한 곳이며, 세계보건기구(WHO) 건강도시이다.

여기에, 동굴로는 국내 유일의 구석기 유적인 점말동굴이 역사문화공원화 작업을 시작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범적 성직(가경자) 칭호를 부여한 배론성지가 있다. 댐 막이로 수몰될 위기에 있는 문화재를 청풍호 옆 문화재단지에 모아놓았다. 여행자가 청정 생태 속에 산책하며 6만년 인간문화사를 편안하게 머리와 가슴으로 품는 인문학 성지이기도 하다.

▶능동적 면역력 맛집 찾아가기= 건강과 명운이 하늘에 달렸다(在天)는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나의 생명력을 키울 청정생태와 약(藥)이 되는 미식을 능동적으로 찾아 흡입하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인명은 제천(堤川)’이라는 속담 패러디는 무죄다. 파란만장한 생태 사이사이 가벼운 트레킹 명소를 많이 조성한 점은 무장애 코스를 지향하는 제천의 나눔 정신이겠다.

박달재 공원

북서쪽 구학산을 남쪽으로 넘으면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제야 이뤄지게 하려는 ‘사랑의 사진 맛집’ 박달재공원이 나오고, 점말동굴이 있는 동쪽 용두산을 넘으면 의림지와 제천한방엑스포공원이 차례로 나온다.

한방공원 그리팅맨은 꼿꼿하게 서있어 이채롭다.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과 비슷한 넓이인 왕암동 14만6893㎡ 부지에 한방체험놀이터, 약초허브식물원, 색깔정원, 국제발효박물관, 약초판매장, 한방한우프라자, 식문화체험장, 고기능LED 약용작물연구소을 두었다. 걷기와 건강체험을 되풀이하며 충전하는 곳이다.

한방생명과학관은 첨단기술로 알기쉽게 한방지식을 알려주고 국제발효박물관은 장류 뿐 아니라 술 빚는 과정도 보여준다. 점말동굴 처럼 꾸며진 약초허브식물원에는 선사시대 치료법도 보여준다.

이곳에서 차로 10분이면 닿는 의림지는 2000년전쯤 인공 축조가 시작된 대한민국 과학영농의 본보기이다. 물은 30m높이의 용추폭포 아래로 떨어져 건강한 철분,불소 성분 때문에 붉은 빛을 띠는 홍류동 계곡, 하소천을 지나 청천뜰을 적신다.

제1의림지와 용추폭포
의림지 순주섬

▶지혜로운 농경과학= 인공섬인 ‘순주(蓴洲)’는 해빙기 부터 왕성한 나래짓을 시작한 흰뺨검둥오리의 보금자리이다. 이 섬은 운치도 있거니와 최근 수심과 청정도를 가늠하는 기능도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당시 농민들의 지혜를 느끼게 한다. 의림지에 용출샘이 3~4군데 있어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점도 알았다. 뺨만 흰 검둥오리는 춘삼월이 되자 사람을 겁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호수 곳곳은 유영했고, 물가로 잘 놓아진 나무데크길로 거리두기 건강 걷기 행렬이 이어진다.

고려 성종 11년(992) ‘옳을 의(義)’자를 붙였다. 인간이 만들어 세상을 이롭게 했다는 뜻으로 추정된다. 義의 ‘언어 소명(召命) 효과’는 이곳을 유인석 등 의병 고을로 만들었다. 400살이 넘는 의림지 소나무숲에는 의병이 승전 자축연을 열고 결기를 다진 영호정이 있다.

트레킹은 의림지~의림지역사박물관~놀이동산~솔밭공원~제2의림지(비룡담)로 이어진다. 갈 지(之)자 걷기여행 나무데크길 위에 있는 제2의림지는 산정호수를 빼닮았다.

점말동굴

의림지 북동쪽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용두산은 포전리 30m높이 수직 석벽에 6개 동굴이 눈코입을 형성하고 전체적인 모양이 용의 얼굴을 닮은 점말동굴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6만6000~3만6000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은 용두산의 동물들을 이 절벽쪽으로 유인하고 추락시키는 방법으로 사냥하고, 청동기 때엔 동굴 앞쪽 뜰에서 농경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6만년 시간여행= 이곳에서는 원숭이·사슴·하이에나·코뿔소의 뼈, 김랑(金郞)·상란(祥蘭) 등 신라 화랑이 새긴 각자(刻字), 신라말~고려초 석조 석가탄생불 등 유물이 발견됐다. 한수면, 수산면에서도 구석기유물이 발견됐고, 청풍면일대에선 신석기 유적과 고인돌이 발견됐다.

청풍호케이블카

춘삼월 탐방객들이 하나 둘 오가는 중에도 점말동굴을 역사관광명소로 만드는 작업이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가는 길목에 작업현장을 조금 지나는데, 산길로 접어들면 실개천 소리와 새 소리를 들으며 호젓한 트레킹을 할수 있다.

능선이 물을 만나려고 악어들 입수 하듯 모여드는 청풍호 주변엔 건강 트레킹길이 참 많다. 비봉산, 대덕산과 ‘청풍대교~금수산~옥순봉~능강솟대~청풍랜드’로 이어지는 청풍호 자드락길 구간 등 어디를 걷어가도 산과 물의 멋진 풍경이 동행한다.

청풍문화재단지
마스크 쓴 팔영루 포졸 입상. 제천시는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 정책을 촘촘하게 실행하고 있다.

편안한 걷기탐방은 청풍문화재단지이다. 1978년 충주댐 건설로 5개면 61개 마을이 수몰되자, 수몰지역에 있던 각종 문화재들을 비봉산이 보이는 야트막한 산에 모았다. 한벽루, 석조여래입상 등 보물 2점 외에도 포졸 입상조차 마스크를 끼고 있는 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택 4동, 고인돌 등 문화재 42점과 생활유물 2000여 점이 원형대로 이전 복원돼 있다. 해설사의 안내 속에 청풍의 상큼한 봄바람 속을 거닐며 아빠와 딸이 동급생이 되어 인문학을 흡입한다.

이 단지 위로 청풍면 물태리~비봉산 정상 2.3㎞를 날으는 케이블카가 오간다. 케이블카 정상의 비봉산(531m)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먹이를 구하려고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청풍호 중앙에 있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는 청풍호의 그림 같은 비경 사이를 지나 봉황이 비상하듯 비봉산 정상으로 날아오르며 고도와 각도가 달라질때 마다 다채로운 파노라마 뷰를 선사한다.

비봉산 정상에 서면 사방이 짙푸른 청풍호로 둘러싸여 있어, 넓은 바다 한가운데 섬에 오른 기분이다. 제천은 ‘내륙의 바다’인데, 그 바다 속에 독야청청 우뚝 섰다.

정방사 [한국관광공사 제공]

▶Life Goes On, 맑으면 갓 씻고, 탁하면 발 씻고=문화재단지에서 동쪽으로 물을 건너면 정방사 입구와 국립제천치유의숲을 차례로 만난다.

다소 가파른 등산을 하고 싶다면 금수산 신성봉 의상대 절벽 위의 정방사를, 사색와 명상을 곁들인 숲 산책을 하고 싶다면 학현리 국립제천치유의 숲(61만㎡)이 좋겠다. 치유의 숲에는 음이온·숲내음치유숲길, 약초원, 건강측정실 등이 있고, 숲하모니, 금수산 치유힐링 숲테라피, 웃음치유 등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는데, 열흘전쯤 운영 범위를 확인해야 한다.

배론성지

배 밑바닥 모양을 닮은 골짜기에 있는 배론 성지는 신유박해(1801)때 신앙인들의 은거지이자, 황사영이 국제사회에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한 곳이며, 국내 첫 신학교(성 요셉)가 있던 곳이다. 한국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묘, 북한에서 제작한 황사영순교현양탑도 있다.

인근 탁사정은 구학천이 굽이치는 S라인이 잘 보이는 강변 바위 언덕 위에 세운 정자이다. 이름은 초나라 시인 굴원의 ‘어부사’에서 따왔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탁하면 발을 씻는다’는 뜻이다. BTS의 ‘Life Goes On’ 노래를 연상시킨다. 생태와 약식이 모두 건강한 제천은 인생 배움터로도 손색이 없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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