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포커스] 국민사찰기구가 ‘LH사태’ 해법이라니...
뉴스종합| 2021-03-26 11:36

‘LH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LH 직원들뿐 아니라 다수의 국회의원과 전·현직 기초단체의원, 공공기관 직원과 공무원, 심지어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 관계자까지 신도시 예정지구에 땅 투기를 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 폭등으로 국민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 와중에 LH 사태로 현 정부의 ‘변창흠표 공공주택 개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 투기 일벌백계’ ‘투기자 패가망신’ ‘부당이득 환수 시스템 가동’ 등 하루가 멀다고 내놓는 초강력 대책도 낮은 실현 가능성과 소급 적용의 어려움 등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급기야 주초에는 해묵은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를 해법으로 들고나왔다. 정부와 민주당의 당정청협의회에 이어 대통령까지 ‘비정상적 부동산거래와 불법 투기를 감시하는 감독기구 설치’를 주문했다.

사실 부동산 감시감독기구 설치 문제는 지난해 9월에 반짝했던 이슈다. 부동산시장 교란행위 차단을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해서 가칭 ‘부동산거래분석원’을 2021년 초까지 출범하겠다고 정부여당에서 공언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러한 감시기구 설치에 대해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전문가들도 부정적이었다. 조직의 역할과 권한뿐 아니라 조사 대상과 범위가 불분명하고, 국민의 부동산거래, 임대차, 금융거래, 인터넷활동 등을 모니터링하고 감시하는 사찰기구화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에서조차 ‘국민의 기본권을 과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었다.

그런데도 현 정부와 여당이 LH 사태에 대한 해법으로 부동산 감독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헛다리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 개발정보를 독점한 인사들의 땅 투기가 LH 사태의 원인인데도 그러한 독점적 정보와는 무관한 일반 국민의 부동산·금융거래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LH 사태로 촉발된 공직자의 위법과 탈법, 도덕적 해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자신들의 공약 달성을 위해 이용하려는 수작(酬酌)으로 비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규제기관 설치로 대응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신의 직장’에 버금가는 일자리가 생겨 실업자 통계는 미미하게나마 호전되겠지만 사생활 침해와 시장 기능의 제약 등 제반 비용과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기존의 정부 조직이나 기능만으로도 부동산시장을 모니터링하고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 국토교통부의 ‘불법행위대응반’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 국세청, 금융위, 한국부동산원 등 수많은 정부기관에서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LH 사태의 본질은 시장의 기능, 민간을 무시한 이른바 공공 주도 개발 정책에 배경을 두고 있다. 토지수용권과 용지개발권, 용도변경권까지 독점한 거대 공기업 주도의 주택공급 정책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LH 주도의 2·4 주택공급대책을 근본적으로 재고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와 부작용이 연이어 불거질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장원리에 순응하는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 수요 억제 위주에서 공급 확대 정책으로 전환하되 민간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인하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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