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서동이 정치자금(金) 캐낸 ‘익산 토성’, 새로 태어났다
라이프| 2021-04-08 08:50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익산 토성은 해발 125m 오금산 정상에 있어 오금산성(五金山城)이라고 불리고, 보덕성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익산의 역사를 기록한 1756년 책 금마지(金馬誌)는 ‘세상에 전해지기를 서동대왕(무왕)이 어머니를 지극히 효성스럽게 섬겼는데, 마를 캐다가 다섯 냥의 금을 얻었으므로 이것으로 산의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고 적었다.

백제 왕실이 혼란스런 시기, 왕족이긴 해도 왕실 주류세력과는 거리가 있었던 서동에게 이 금은 주류로 진입하는 중요한 정치자금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7세기 후반, 멸망한 고구려-백제의 부흥을 희망하던 세력이 고구려 왕종 안승과 함께 보덕국(報德國)을 세웠던 흔적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보덕성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백제 건국세력도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후손들이다.

익산토성 정비

전북 익산 토성이 국민들의 역사탐방 돕기 위해 새로 단장했다. 오금산의 구릉에 계곡을 감싸고 쌓은 포곡식(包谷式) 성으로 둘레가 약 450m인 토성의 정비작업은 문화재청(청장 김현모)과 익산시(시장 정헌율)가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을 위한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로 선정돼 진행됐다.

8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익산시, 마한백제문화재연구소 등은 성 안팎에 대나무와 잡목이 어지럽게 촘촘히 자라나 토성을 훼손하고 있었는데, 이를 상당수 제거했으며, 성 둘레를 돌아볼 수 있는 탐방로도 새로 단장했다.

토성의 모습을 훼손하고 시야를 가리던 잡목을 이번에 제거하면서 성의 전체적인 모습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북으로는 미륵산과 미륵사지, 동으로는 용화산, 서로는 웅포 일대, 남으로는 왕궁리 유적까지 한 눈에 조망하게 됐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익산 토성은 그 둘레가 690m 정도로 주차장에서 성을 돌고 내려오면 30분 정도 걸리며, 가파르지 않아 산책하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다. 이번에 정비가 완료되면서 시민들은 성을 거닐면서 적의 공격을 감시하고 방어하는 산성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400년전 유적인 익산 토성이 산듯하게 단장돼 국민들이 더 편한 거리두기 탐방을 할수 있게 됐다.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화연구소는 문화재청과 익산시의 지원을 받아 서문지를 비롯한 서쪽 성벽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행한 결과, 백제부터 고려에 이르는 유물을 다수 수습하였고 돌을 쌓아 올려 성벽을 만든 것을 새로 확인한 바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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