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S칼텍스 매경오픈
6년만에 코리안투어 우승…통산4승
캐디백 멘 아내 육은채씨와 결혼 후 첫승
"샷은 감각으로, 퍼트는 백스윙 작게"
허인회가 아내 육은채 씨에게 우승컵을 바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대회조직위 제공] |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 “우승하면 가슴이 벅차서 울 줄 알았는데, 오늘 볼을 못쳐서 감정이 망했어요. 골프선수는 골프선수인가봐요. 우승보다 못 친거에 더 집중되는 거같네요.”
물러서지 않는다. 돌아가지 않는다. 그의 전매특허 ‘닥공(닥치고 공격) 골프’는 성공할 경우 팬들에게 짜릿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거꾸로 낭패를 보는 일도 잦았다. 스윙 폼도 어색하고 퍼트는 대충 치는 것같다. 볼이 굴러가고 있는데도 홀컵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런데 골프 감각 하나만큼은 타고났다. “연습하는 재능이 선천적으로 없다”고 고백한 그의 별명은 그래서 ‘게으른 천재’다.
골프천재가 돌아왔다. ‘괴짜골퍼’ 허인회(34)가 6년 만에 고대하던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메이저급 대회서 들어올린 첫 우승컵이다.
허인회는 9일 경기도 성남시 남서울CC(파71)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GS칼텍스 매경오픈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2개, 보기 2개, 더블보기 2개로 4타를 잃으며 최종합계 5언더파 279타를 기록, 2위 김주형(3언더파 281타)을 2타차로 제쳤다.
이로써 허인회는 2015년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 우승 이후 6년 만에 코리안투어 통산 4승째를 달성했다. 2019년 8월 결혼 후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본 허인회는 3년 전부터 전담캐디로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 육은채 씨를 힘껏 끌어안고 감격을 나눴다. 우승 상금 3억 원과 함께 메이저급 대회 우승자에게 주는 5년짜리 투어 카드도 받았다.
국가대표 출신인 허인회는 코리안투어 신인이었던 2008년 필로스오픈서 첫 승을 올렸고 2013년 헤럴드 KYJ 투어챔피언십서 5년 만에 2승째를 기록했다.
허인회 [대회조직위 제공] |
거침없는 플레이, 튀는 스타일과 언행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섰지만 최근 6년 간 우승과는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9년과 2020년 23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는 단 1차례(2020년 비즈플레이 전자신문 오픈 3위) 올랐다. 지난해 상금랭킹은 30위다.
올초엔 갑자기 전지훈련지인 하와이서 열린 미국프로골프투어(PGA) 소니오픈 월요예선에 이틀 연습하고 출전, 본선 진출권을 따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생애 첫 PGA 투어 무대서 비록 컷탈락하긴 했지만, 허인회의 괴짜 본능과 천재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6타차의 넉넉한 선두로 최종일을 맞은 허인회는 마지막 라운드서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2번 홀(파4)에서 티샷한 볼이 숲속으로 사라져 더블보기를 적어냈고, 3번 홀(파3)에서도 타수를 잃었다. 하지만 캐디백을 멘 아내 앞에서 허인회는 예전의 야생마 같은 모습을 버렸다. 2위 그룹과 4타차로 좁혀지자 지키는 골프로 급선회한 것. 5번 홀(파4)에서 첫 버디를 잡은 허인회는 차분히 파 행진을 이어가다 13번 홀(파4)에서 3m 버디 퍼트를 떨어뜨리고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웃음을 되찾았다.
17번 홀(파3)서 1타를 잃고, 18번 홀(파4)서는 티샷과 세컨드샷, 파 퍼트에서 잇따라 실수를 하면서 더블보기를 적어냈지만 워낙 벌어놓은 타수차이가 커 우승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허인회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PGA 투어 욕심이 있었는데, (올해 초) 갔다와보니 지금처럼 해서는 아예 게임이 안되겠더라. 이렇게 게으른 상태로 PGA 투어에 가서는 할 수가 없다는 판단에 국내 투어에 집중하고 우승을 해서 좀더 열심히할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며 "우승도 사실 생각이 없었다. 제 생일(7월) 지나고 가을 되면 감이 올라온다. 그때 찬스가 있겠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우승했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허인회와 아내 육은채 씨가 2019년 결혼 후 처음 품은 우승컵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대회조직위 제공] |
아내 육은채 씨는 이번 대회서 허인회의 잠자던 승부 본능을 깨웠다. 매경오픈 첫날 8번홀까지 연속 보기로 5오버파를 하자 육 씨는 "이대로 가면 컷탈락이다. 오늘 이븐파로 마치면 돈을 주겠다"고 내기를 제안했고, 이후 허인회는 9번홀부터 믿기지 않는 줄버디로 결국 이븐으로 첫날을 마쳤다.
육씨는 경기 후 싱글벙글 웃는 남편을 보더니 기자에게 "제 돈 갖고 간다고 지금 저렇게 좋아하는 거에요. 아니 대회 상금을 타와야지, 와이프 돈을 가져가는 게 뭐가 저리 좋을까요"라면서도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육씨는 최종라운드서도 허인회가 14번 홀(파5)에서 티샷을 페어웨이 왼쪽으로 보내자 끝까지 방심하지 말라는 듯 다그치는 모습을 보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허인회는 "와이프에게 캐디를 부탁한 건 그게 내 인생 로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애기가 생기기 전까지 내 이기적인 꿈을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고생시킨 거다"며 "주변에서 전문가가 아닌 와이프가 캐디해서 안되는게 아니냐는 얘기를 3년 내내 들었다. 그래서 오기로 더 다른 캐디 안쓰고 와이프와 함께 이겨내려고 했다. 그래야 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게 되니까"라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허인회는 또 자신만의 독특한 샷과 퍼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교통사고로 허리가 안좋아져 고생했다. 그 때 이후로 거리가 줄었다. 허리를 못 쓰니까 손으로 치게 됐다. 감으로 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 뒤 "퍼트는 백스윙을 작게 한다.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부드럽게 치는 법이 있겠지만, 내 주관은 많이 들면 들수록 내려오는 동안 흔들린다는 것이다. 밀고 싶지만 룰이 안되니 최소한으로 들어 치게 된다"고 했다.
anju1015@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