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80년대 청년과 동행한 저항춤꾼, 이애주 무형문화재 타계
라이프| 2021-05-11 15:20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1980년대 국민의 피를 딛고 일어선 신군부 독재 정권을 몰아내려는 열기가 뜨거웠던 대학가에 백기완 선생의 강연이 끝나면 이애주 무형문화재의 민주화 영령들을 향한 진혼 춤이 이어지곤 했다.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에 그는 단골로 나와 당시 막내동생 뻘인 60년대생 후배들과 뜻을 같이했다. 그리고 저항의 시기가 끝난 뒤 그는 K헤리티지 전승에 매진한다.

1980년대 성균관대 민주화 시위현장, 이애주 교수의 진혼춤
이애주 무형문화재의 승무

4060 민주화운동 세력들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이애주(1947년생) 보유자가 병환으로 10일 오후에 별세했다고 문화재청은 11일 아침 전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1호실(02-2072-2020)이다. 유족으로는 오빠 이형철, 여동생 이애령·이애경씨 제부 임진택씨가 있다.

이애주 무형문화재는 1968년 신인예술상 수상(문화공보부 장관상), 1971년 서울신문 문화대상 수상(서울신문사), 1992년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전승교육사 인정,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인정, 2003년 만해대상(예술부문) 수상, 2013년 옥조근정훈장 수훈, 2017년 박헌봉 국악상 수상, 2019년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등 족적을 남겼다.

승복을 입고 추는 승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 가운데 하나로,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흔히 무복(舞服) 때문에 중춤이라고도 하지만 불교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과는 다르다. 승무는 달고 어르고 맺고 푸는 선율의 섬세한 표현과 초월의 경지를 아우르는 춤사위의 오묘함이 조화된 춤으로,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높은 차원에서 극복하고 승화시킨 춤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김보남 선생에게 입문하여 본격적으로 승무를 배우기 시작한 고(故) 이애주 보유자는 서울대 재학 시절 대한민국 문화공보부 주최 제7회 신인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일찌감치 타고난 재능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1970년부터는 고(故) 한영숙 전 보유자에게 승무를 전수받아 1976년 승무 이수자가 되었으며, 1992년 전수교육조교(현 전승교육사)를 거쳐 1996년에 초대 보유자였던 고(故) 한영숙 전 보유자를 이어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고(故) 이애주 보유자는 1982년부터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아왔으며, 한영숙춤보존회 이사장,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한평생 승무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통무용의 전승과 발전에 헌신했다.

이애주는 K헤리티지 리더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새겨져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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