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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四色] 흑묘백묘 감독론
엔터테인먼트| 2021-05-12 11:29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고 ‘2002 한일 월드컵’ 4강에 오른 것은 국내 스포츠사상 커다란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전까지 월드컵에서 단 1승도 해보지 못한 변방 한국이 4강까지 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히딩크 감독이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로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그중 ‘학연·지연에 따른 차별이 없고, 오직 실력과 데이터로 선수를 평가해 기용했다’는 점을 든다. 물론 2년 가까이 선수 차출에 협조해준 국내 프로리그의 커다란 희생이 전제돼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명성도 대단했지만 그의 지도 방식이 한국스포츠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국내 각종 스포츠에서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하는 팀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프로축구 전북을 우승으로 이끈 모라이스 감독, 프로야구 SK(현 SSG)를 챔피언에 등극시킨 트레이 힐만 감독, 여자배구대표팀 라바리니 감독, 롯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비롯해 각종 아마추어 종목 국가대표팀에도 해당 종목 종주국의 감독을 모셔오는 경우가 많다. 순혈주의가 강했던 한국스포츠계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 것이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11일 허문회 감독을 경질하고, 2군을 이끌던 래리 서튼 감독을 승격했다. 겨우 30경기 치른 시즌 초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과감한 결정이다. 이로써 올 프로야구는 KIA의 윌리엄스, 한화의 수베로에 이어 3명의 외국인 감독이 활약하게 됐다. 이들도 다른 감독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지지를 얻고, 때로는 비판도 받지만 팀이 그들을 택한 것은 국내 지도자에게서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팀들이 국내 감독이 아닌 외국인 감독을 선택하는 것은 변화를 찾는다는 의미다. 알게 모르게 학연·지연, 또 선수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 국내 지도자와 달리, 모든 선수를 동일선상에서 평가해 대우하고 기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순기능이다.

외국인 감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한국스포츠계의 뿌리 깊은 문제 중 하나인 학연·지연 등에 연연하지 않고 파격적인 기용과 작전도 서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의사소통 문제나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또 그들만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오류도 범한다. 게다가 연봉 지출도 크고, 구단과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컨트롤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외국인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다.

이번 롯데의 경우 단순히 꼴찌를 하고 있어서 칼을 빼든 건 아니다. 현장과 프런트의 갈등, 2군과 백업 선수를 외면한 경직된 운영, 감독의 세련되지 못한 발언 등으로 팀 모양새가 말이 아니었다.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경험을 주면서 미래를 도모하려는 구단과, 베테랑 위주로 운영하려는 감독의 방향성 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이 구단의 경질 이유다.

롯데는 ‘구도(球都)’ 부산이라는 최고의 연고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감독 선임, 선수 계약, 용병 선발 등에서 아쉬움을 드러내며 오랫동안 하위권을 전전했다. 체질을 뜯어고칠 기회라고 생각하고 영입한 감독이 구단의 플랜에 배치되는 운영을 하면서 1년 반 이상을 날려버렸다.

외국인 감독 카드를 꺼내 든 롯데, 팀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구원등판하게 된 서튼 감독의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많이 이겨야 하고, 져도 이해할 수 있는 경기를 해야 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국적보다 중요한 건 결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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