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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한국 정치 태풍의 눈 ‘20대 현상’, 그 실체는?
라이프| 2021-05-14 08:11
“공정에 대한 그들의 외침은 그들이 처한 심리적 압박과 가치의 퇴조라는 배경하에서 형성된 정서적 기초가 특정 이슈와 맞물려 터져 나오는 현상에 가깝다.(…)90년대생 사이에서 공정은 가치와 논리보다는 느낌, 즉 ‘공정감’의 문제가 된다”(‘K-를 생각한다’에서)연합뉴스

4·7재보궐 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0% 이상이 현 정권에 등을 돌리면서 ‘20대 현상’ 연구가 활발하다. 민주화투쟁과 정치적 승리를 일궈낸 386세대의 자녀인 90년대생은 왜 정치적 보수화로 치닫고 분노의 세대가 된 걸까?

90년대생으로 사회인문학적 통찰의 글쓰기를 해온 임명묵의 ‘K를 생각한다’(사이드웨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스스로 밝혀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대 현상’이 어떻게 지금 한국을 휩쓸고 있는 ‘K열풍’과 연결되는지, 계층구조화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조목조목 짚어냈다.

저자는 무엇보다 지금의 20대를 만든 건 ‘위계적 피라미드’라고 말한다. ‘헬조선론’과 ‘수저계급론’이 대표적이다. 이는 이들의 경제적 비관과 격차에 대한 불만이 임계치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부모세대의 적극적 지원을 받고 비교적 모자람없이 성장한 이들 세대가 느끼는 격차 불만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저자는 이들이 성장한 시기의 한국경제와 교육의 특수성에 주목한다. 90년대는 닻을 올린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기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세계경제는 가치사슬로 엮이게 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 고부가가치 체조업과 서비스, 저부가가치 저임금체제의 이중경제체제로 빠르게 재편된다. 좋은 일자리가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한국교육은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그 결과, 대규모 인구집단인 90년대생은 ‘부적절한 설비가 불필요하게 많은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이와 동시에 한국사회는 계층화가 본격화된다. 얼마전까지 비슷한 공간에서 유사한 문화를 향유한 사람들이 멀어지고 소득격차가 벌어지면서 체감 불평등이 커진 것이다. 중산층의 상승욕구와 기대치는 만만치 않았다. 이에 맞춰 90년대생들은 청소년기부터 부모들의 요구에 맞춰 엄청난 학업경쟁에 내몰리게 된다. 특목고 과열경쟁이 절정을 이룬 시기다.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이 586을 비롯한 모든 기성세대가 뛰어든 전쟁터이자, 위계적 피라미드를 완성시킨 곳이 된 것이다. 그 중심엔 ‘학벌’ ‘능력주의’신화가 자리잡고 있다.저자는 대학입시와 개혁의 허상, 교실의 현실을 학생의 입장에서 낱낱이 보고한다.

문제는 그런 경쟁에서 승리해 학력 자본을 획득했음에도 변화된 고부가가치 영역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진 데 있다. 위계에 대한 인식과 상승의식은 중산층 이상에서 더 치열했고, 따라서 좌절은 분노로, 또한 빼앗겼다고 여기는 상대에 대한 혐오·증오로까지 바뀌게 된다.

그 한 가운데에 ‘조국사태’는 기름을 부었다. 조국 자녀의 입시 논란과 파장은 386세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저자는 조국이 상징하는 386세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입시 시스템과 맞물린 기득권적 욕망을 들여다본다. 거기엔 이들이 내세우는 이념적 가치와 딴판인 자산증식과 스펙을 만들어 계층세습에 몰두하는 욕망의 이중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저자가 90년대생들의 특징을 통해 ‘K현상’을 분석한 점은 흥미롭다.

90년대생들의 분노는 2010년대 온라인을 통해 본격 표출되기 시작했다. 남초 커뮤니티와 여초 커뮤니티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소규모 커뮤니티까지 합세하면서 세싸움과 함께 증오와 혐오 논쟁이 불거진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한마디로 투쟁 공동체였다. 온라인 싸움은 오프라인으로 확산하면서 대한민국을 흔들어놓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20대로 부상한 이 시기, 한국대중문화는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게 된다. 한국 콘텐츠 제국 건설의 일등공신은 90년대생이다. 유년기부터 인터넷문화를 흡수한 이들이 아이돌에서부터 만화, 인터넷 방송에 이르기까지 콘텐츠의 생산자로서, 한편으론 강력한 팬덤문화를 형성하는 소비자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들의 분노와 갈등은 콘텐츠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저자는 2010년대 콘텐츠의 서사를 한마디로 투쟁이라고 말한다. 이 시기의 대중문화 콘텐츠에는 주제의식과 서사구조부터 소비자들의 행태까지 일관된 투쟁 지향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위계를 거슬러 오르는 사회적 상승, 경쟁이 야기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가 웹소설, 웹튠의 주요 소재로 떠오른다. 90년대생들은 서사의 주인공이 투쟁하는 것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소비자로서 투쟁에 참여해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2010년대 콘텐츠는 그런 면에서 90년대생 사이에서 격렬해진 사회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그런 투쟁심은 그들이 겪었던 사회적 압박과 스트레스의 반영물이란 얘기다.

이들은 자기 한 몸을 건사할 최소한의 안정과 보호를 원할 뿐이다. 가능하다면, 자신을 끌어올려줄 ‘한 탕’에 올인한다. 이들에게 공적 가치는 무의미하다. 어린시절 부터 극심한 경쟁 압박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생존과 발전 너머의 가치를 추구할 어떤 여력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90년대생을 최초의 ‘탈가치 세대’라고 명명한다.

저자는 K방역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를 낸다. 이는 국가란 무엇인가와 관련돼 있고, 386세대의 모순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K방역의 성과는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세대가 그토록 ‘사악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던 동원체제와 병영국가 덕분이라고 지적한다.

90년대생이 촘촘하게 그려낸 본격 한국사회 해부는 왜 이들이 공정에 예민하고 분노하는지, 한국사회의 모순과 이중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예각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입시와 기능부전의 대학 현실을 피교육자의 입장에서 지적한 대목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K-를 생각한다/임영묵 지음/사이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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