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호남5현’ 박광전, 광해군 스승, 어진 목민, 의병 출전 [남도종가]
라이프| 2021-06-15 08:34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차밭과 제암산, 득량역 추억의거리, 율포해변솔밭, 티벳박물관, 초암식물원, 월곡영화골벽화마을, 벌교갯벌체험, 주암호 등 팔방미인 여행지 보성은 ‘호남5현’ 죽천 박광전(1526~1597)의 문무겸장 인문학으로도 유명하다.

박광전은 실리 외교, 세제개편, 빈부격차 해소 정책 면에서 최고 임금으로 꼽히는 광해군을 가르쳤으며, ▷조선 수양론(修養論:자아정립)의 선구자 이항 ▷동아시아 18현으로 꼽힌 김인후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유희춘 ▷한국철학 양대 사상 중 한축을 담당한 기대승과 함께 호남 5현으로 불린다. 호남에 조금 길게 인연을 두어서 호남 5현이지, 이들이 활동무대에 비춰보면 ‘전국구’이다.

죽천정에 걸린 판액 퇴계 이황이 박광전에게 준 이별 시의 모사본

퇴계 이황은 당대 학문의 거두 조광조,양응정 등에게서 배우고도 천리길을 멀다 않고 자신에게 또 배우러 온 아들 뻘 박광전과 토론하며 학문을 풍성하게 하다가 헤어질 때가 되자, ‘늦게 좋은 친구를 만났으나 이제 작별하는 이 마당에 어찌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시 5수를 지어 주었다.

여기에 ‘주자서절요’ 까지 이별 선물로 받고 돌아온 박광전은 주자서와 비교하며 연구한 문답록을 자신의 ‘죽천집’(목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06호)에 남겼다.

죽천은 조광조의 문인이며 고흥에 유배왔던 홍섬에게서 더 배우고, 유희춘의 문인인 문위세의 누이와 결혼했다. 능주 학포당의 양응정도 스승으로 모시며 수학했고, 산앙정 등에서 학문에 정진한 이후 진사시에 합격, 경기전 참봉을 거쳐 왕자사부(임해군, 광해군의 스승)에 제수됐다. 광해군은 나중에 죽천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광해군이 1584년 스승 박광전에게 보낸 안부 편지

광해군이 잘 성장하는 것을 보고난 이후 사헌부감찰을 거쳐 함열(익산)현감으로 부임한다. 박광전은 동헌에 ‘시민여상’(視民如傷, 다친 사람을 보살피듯이 백성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긴다)이라는 글귀를 내걸고 이를 실천했다고 전해진다.

낙향해 학문에 매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계영이 대장을 맡은 전라좌의병에 가담, 남원, 진주, 성주, 의령 등에서 공을 세웠다.

죽천정

그는 광해군에게 민생안정 ·군량확보를 건의하는 시무책을 제시했으며,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의병장이 돼 화순 동복 전투에서 승리한뒤 전쟁이 끝나기전 문무겸장의 불꽃 같은 생을 마감해 용산서원에 배향됐다.

용산서원, 화산재, 죽천정, 산앙정 등 장계파 종가의 유적에서는 박광전이 인문학의 거두로서 활약하던 시절 쓴 ‘우계기’를 칭송하고 죽천의 문무겸장 ‘실천하는 선비’의 족적을 본받겠다는 후배 문인의 글들이 넘쳐난다.

병자호란에는 박광전의 손자인 16세 박춘수(1590~1641)가 동생 박춘장, 사촌 박춘호, 아들 박진형(1611~1672)과 함께 안방준이 이끄는 의병 창의에 참여했다. 구한말에는 후손 박태승이 동학 접주로 활약하고, 박문용이 만주 봉천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산앙정과 우계

종가는 선현의 문집과 유산을 보존하고 절의정신의 가통을 계승하기 위해 용산서원을 중건하고, 의병기념관을 건립해 보성을 빛낸 777명의 영웅들의 족적을 보존했다.

진원박씨는 고려 대장군을 지낸 박진문을 시조로 삼는다. 11세손인 박홍원, 박계원, 박윤원 3형제 대에서 각각 장종파, 장중파, 장계파로 분파했다. 박광전은 박진문의 14세손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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