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르포] “백신 맞았다” 우기며 태연히 3인 착석…밤 9시 영업제한 첫날 풍경 [촉!]
뉴스종합| 2021-08-24 10:58
23일 오후 9시 서울 서초구의 지하철 강남역 인근 번화가. 이날부터 식당과 카페 영업시간이 오후 9시로 제한되면서 마감시간에 맞춰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김영철 기자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수도권 식당·카페에서 영업시간이 오후 9시로 단축되는 새로운 방역수칙이 적용된 첫날이었던 23일, 서울 시내 일부 음식점에서는 백신을 접종했다고 우기거나 접종 혜택을 이용해 테이블을 쪼개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업주들은 ‘백신 인센티브’ 적용에도 여전히 손님이 늘지 않아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날 오후 6시30분께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일대 번화가에 있는 한 고깃집. 매장 내 30여개 테이블 중 절반 정도가 손님으로 차 있었다. 5명의 일행이 백신 접종을 마친 3명과 그렇지 못한 2명으로 나눠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두 테이블을 함께 쓰는 모습도 보였다. 이 식당에서는 달라진 방역수칙으로 인한 작은 실랑이도 있었다.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주던 아르바이트생 김모(27) 씨는 “조금 전에 자신이 ‘백신 접종 완료자’라며 손님 3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일이 있었다. 해당 손님이 백신 접종증명서를 보여주지 않아 식사를 할 수 없다고 설명하니 역정을 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일행이 접종증명서를 보여주고 나서야 이들을 식당에 들여보내는, 머쓱한 상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지하철 강남역 인근 한 고깃집. 백신 접종 완료자가 일부 포함된 손님 일행이 두 테이블을 붙여 함께 식사하고 있다. 김영철 기자

오후 7시30분께 강남역 인근 번화가의 한 2층 카페. 위층과 아래층을 통틀어 손님 대다수가 2명씩 모여 있지만 1층에서 남성 2명, 여성 2명이 서로를 마주 본 채 한 테이블에 앉아 미팅을 하고 있었다. 이 중 최모(25) 씨는 자신이 사회필수인력인 관계로 7월에 백신 접종을 마쳤다며 “백신 접종 덕에 여럿이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점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해당 카페 아르바이트생 김모(20) 씨는 “10분 전께 외국인 3명이 들어와 음료를 주문했다. 백신 접종증명서를 요구하니 그제야 몰랐다며 나가더라. 알고 보니 일행 중 두 분이 백신을 맞았는데 모두 1차 접종자였다”고 귀띔했다.

인근 선술집에서는 마감시간이 1시간도 안 남은 오후 8시10분께 젊은 남녀가 ‘헌팅’을 하는 풍경이 연출됐다. 여성 2명이 온 테이블에 남성들이 앉아 인사하고 휴대전화번호를 건네거나 두 명의 남성 중 누가 더 잘생겼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직원이 제지하기 전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졌다.

이모(20·여) 씨는 “각각 다른 남성 일행이 3차례 이상 우리 테이블에 접근했다”며 “지난주 다른 술집을 갔을 때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어차피 2인 이상 앉을 수 없는데 왜 말을 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백신 접종을 이유로 합석을 시도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오후 8시50분부터 매장 내부에선 환한 불이 켜지면서 영업 마감을 알리는 안내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안내에 따라 자리를 정리했지만 이날 영업시간이 9시까지인 줄 몰랐던 손님도 있었다. 대학생 허모(23) 씨는 “오늘인지는 미처 몰랐다”며 “2차로 이곳에 왔는데 1시간도 안 돼 나가게 됐다. 술과 안주도 다 먹지도 못한 채 나간다”고 털어놨다.

4인 모임이 허용되는 백신 인센티브가 적용됐지만 영업시간이 오후 9시로 제한되면서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업주들의 하소연은 여전했다. 강남역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강윤호(61) 씨는 “그나마 4명이 모일 수 있는 점심장사에 몰입하고 있다”며 “한 테이블이라도 3인 이상으로 더 모을 수 있으니 저녁장사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역수칙 적용 첫날 카페와 식당에서 백신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여전히 코로나 확산세를 낮추는 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24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주로 낮에 사람들이 모여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데, 식당·카페만 오후 9시까지 영업시간을 줄였다”며 “바이러스가 식당·카페에만 포진한 것도 아닌데 형평성이 어긋난다”고 말했다.

백신 인센티브에 대해 그는 “(백신 인센티브는) 미국처럼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이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독려하는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백신을 맞기 싫어서 안 맞는 것보다 부족해서 맞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 접종 완료자가 드물어 오후 6시 이후 3명 이상 모이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상황인데 ‘백신 인센티브’라는 개념이 들어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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