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한국인 80%가 뽑는 사랑니…“꼭 뽑아야 하나요”[KISTI 과학향기]
뉴스종합| 2021-11-12 20:40
[123RF]

20대 초반, ‘어른’의 즐거움을 만끽할 쯤 찾아오는 어린 시절의 공포가 있다. 바로 치과 치료다. 작은 수술대 같이 생긴 의자에 누워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불빛을 마주하면 귓가에 ‘윙~’ 하는 기계소리가 들려온다. 사랑니 발치다.

치의학적으로 ‘제3 대구치’라고 하는 사랑니는 세 번째 어금니로 입 안 가장 안쪽에 난다. 사랑이 찾아오는 나이에 난다고 해서 사랑니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서양에서는 지혜가 생기는 나이에 난다고 해서 ‘지치(wisdom tooth)’라고 부른다. 사람의 치아는 28~32개인데, 사랑니가 그 차이를 만든다. 사람은 13살~14살 무렵 상하좌우 7개씩 모두 28개의 영구치가 치열을 완성된다. 이후 사랑니가 몇 개 나느냐에 따라 총 치아 수가 정해진다. 사랑니는 왼쪽과 오른쪽, 위턱과 아래턱 각각 1개씩 날 수 있는데 모두가 나지도 않고 나는 사람마다 개수도 다르다. 또 모두가 사랑니를 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60~80%는 사랑니를 뺀다. 턱이 작은 탓에 잇몸 위로 나오지 못하고 잇몸 속에 누운 채 자리 잡거나 나오더라도 비스듬히 혹은 일부만 나오는 등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치아가 누워있으면서 앞쪽 2번째 어금니와 맞닿아 있거나 턱 뼈 안쪽 깊은 곳에 난 경우에는 발치가 필요하다. 증상으로는 잇몸 끝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나거나 양치할 때 잇몸 끝 쪽이 간간히 피가 날 때, 혀로 느꼈을 때 부은 느낌이 들거나 손으로 만졌을 때 아프고 딱딱한 느낌이 들면 전문가들은 발치를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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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이나 증상이 없더라도 자라난 사랑니가 다른 치아에 비해 특이적으로 크기가 다르거나 난 방향이나 위치 등으로 주변에 음식물이 잘 끼고 양치질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전문가들은 발치를 추천한다. 충치나 염증으로 사랑니 앞에 있는 어금니까지 상하게 할 수 있어서다.

사랑니는 발치가 까다롭다. 특히 아래턱에 난 사랑니는 하치조신경과 가까워 발치 과정에서 손상 위험이 있다. 하치조신경은 아래턱의 치아와 잇몸, 아래 입술 주변의 감각을 주관한다. 다행히 방사선 사진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어 직접 신경 다발을 자를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치아의 머리 부분(치관)을 자를 때 발생하는 열과 압력, 이를 뽑을 때 가해지는 힘이 신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사랑니를 뽑고 하루 이상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취가 덜 풀린 느낌이 들거나 만졌을 때 반대쪽과 느낌이 다르다면 신경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또 낮은 확률이지만 혀의 신경이 손상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혀의 감각 이상과 미각 이상 증상이 동반된다.

물론 곧게 나지 않았다고 모두 뺄 필요는 없다. 잇몸 안쪽에 있어도 코 양 옆 공간인 상악동과 아래턱 신경, 사랑니 앞쪽 어금니와 닿아있지 않으면 뽑지 않아도 된다. 또 골격이 크고 턱 뼈가 큰 사람 중에는 사랑니가 잇몸 위로 곧게 나 어금니로서의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뽑을 필요가 없다.

잘 보관한 사랑니는 이후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충치나 충격으로 어금니가 손상돼 급한 치료가 필요할 때 ‘자가치아이식술’을 통해 사랑니를 옮겨 심을 수 있다. 최근에는 임플란트 대신 사랑니를 교정해 사용하는 방법도 주목을 받고 있다. 임플란트와 달리 치주 인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감각이 훨씬 자연스럽고 씹는 힘도 유지할 수 있다. 시술 후 염증이나 통증에 대한 부작용도 적고 풍치가 발생해도 임플란트보다 염증 진행 속도가 느린 것으로 알려졌다.

[KISTI 제공]

다만 잇몸 안쪽에 사랑니가 난 경우에는 주기적인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안면외과 명훈 교수팀은 잇몸 안에 묻혀있는 매복 사랑니가 물혹이나 종양 같은 합병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최대 23%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또 합병증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대게 치과 치료 중 우연히 발견되거나 건강검진에서 확인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질환은 함치성 낭종으로 잇몸 안쪽에 난 사랑니가 유발하기도 한다. 치아의 머리 부분(치관)이 잇몸 속에 묻혀있는 탓에 치아와 잇몸과 계속 닿으면서 염증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생긴 고름 등 액체가 치아를 감싸고 있는 치낭에 차오르면서 물혹으로 발전하는 것. 물혹은 주변 치아를 밀거나 턱뼈를 녹이면서 커지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물혹이 생기면 초기에는 증상이 없다가 크기가 커져서야 주변 치아가 흔들리거나 시린 증상, 입 안에 고름 같은 진물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심한 경우 작은 충격에도 턱뼈가 부러지기도 하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진이 중요하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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