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코로나에 젊은층도 안 와”...연말 쓸쓸한 대학 동문회
뉴스종합| 2021-12-24 11:18
연회장 관련 이미지(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한때는 대학 선후배 간 ‘만남의 장소’였던 대학 동문회의 명맥이 끊기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서울대를 비롯, 주요 대학의 동문회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동문회보다 소모임’을 선호하는 젊은층의 참여가 줄고 있는 대학 동문회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주요 대학은 총동문회·단과대학별로 진행하는 대학 동문회를 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겨울만 되면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 대학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취소’라는 유례 없는 상황을 맞았다.

고려대 총동문회 관계자는 “11월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행 당시 동문회관을 활용해 동문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거리두기 강화로 대부분 취소됐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의 경우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한 파티를 열기도 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서는 줌에서 ‘올해 기억에 남는 일’을 보내면 추첨을 통해 선물하는 등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대면으로 동문회를 진행할 경우 졸업생 참석 인원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가 원인이긴 하지만 대학 동문회에 대한 젊은층의 인식은 그전부터 옅어져 왔다. 수도권 소재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안 된 20~30대 10명에게 코로나19 종식 후 동창회 참석 여부를 물어본 결과,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불참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동문회를 “성공한 중년만 참석할 수 있고” 젊은 세대가 가봤자 “술만 먹고 잔소리를 듣는” 부정적인 행사로 생각했다.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을 얻고, 인맥도 넓힐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건국대 졸업생 A(27) 씨도 “다만 동문회를 자주 가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동문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졸업생도 추억이 좋진 않았다. 다시는 동문회를 가고 싶지 않다는 서울대 졸업생 B(29) 씨는 “나이 지긋한 선배들이 와서 술을 마시고, 젊은 학번은 선배들을 보필하고 뒷정리까지 하는 분위기가 거북했다”며 “코로나라 동문회가 안 열려서 한 편으로 다행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경희대 졸업생 C(26) 씨도 “동문회에 갔지만 나이 차이가 많은 분들이 많아 인연이 이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했다”며 “선배들한테 도움받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서 이제 안 나간다”고 말했다.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 행사라는 인식도 강했다. 한국외대를 졸업한 D(33) 씨는 “동문회는 성공한 사람들이나 결혼식을 앞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한다”며 “그런 사람들이 와서 과시하는 모습을 굳이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과기대 졸업생 E(33) 씨도 “동문회는 서로의 인맥으로 돕고 도울 수 있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 평가했다.

대학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학연에 대한 중요성을 덜 느끼는 분위기도 있다. 2019년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동창모임을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은 10.7%에 불과했다. 수도권 소재 한 대학의 사범대학을 졸업한 F(28) 씨는 “임용시험을 보지 않고 취업을 했는데, 가는 길이 달라지니 동문회 참석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연세대를 졸업한 G(28) 씨도 “학생들이 대학 시절 스펙 쌓기에 치여 살다 보니 소속 대학에 대한 유대감을 상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건국대 졸업생 H(27) 씨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선후배 소식을 알 수 있어서 동문회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얇아진 학연의 끈은 대학 기부금에서도 드러난다. 대학에서도 동문회 등을 통해 기부를 받는 것과 별개로 외부 인사의 기부금이 많아지고 있다. 동문 간 연대가 끈끈한 걸로 알려져 있는 고려대의 지난해 기부자 비중을 살펴본 결과, 동문 비중은 55%로 전년 대비 10%포인트 감소했다. 동문이 아닌 일반 기부자의 기부 금액도 동문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지난해 총 1474억원으로 국내 대학 중 가장 많은 기부금을 모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도 기부자 99.9%(기부 금액 기준)가 동문이 아닌 일반 기부자였다.

하지만 졸업생들이 대학 시절 쌓은 추억을 잊고 지내는 건 아니다. 수직적인 분위기의 동문회를 피할 뿐, 동기처럼 수평적인 관계나 응답자 대부분을 소규모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고 답했다. 단국대 졸업생 I(36) 씨는 “대학 시절을 함께 보냈던 소수의 친구들과는 자주 연락한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졸업생 J(33) 씨는 “친한 친구들끼리 만나기도 바쁜데, 동문회까지 가서 친화력을 발휘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평적인 조직을 선호하는 젊은층 특성상 딱딱한 분위기의 동문회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대학 동문회를 활성화하려면 수직적인 분위기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빛나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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