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올레그 틴코프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했을 당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러시아의 한 억만장자가 "전쟁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가 정권의 보복을 당해 수십조원 규모의 재산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디지털 은행 틴코프 뱅크 설립자인 올레그 틴코프(45)는 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일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틴코프는 최근 자신이 가진 틴코프 뱅크의 주식 35%를 헐값에 팔고 완전히 손을 뗐다고 밝혔다.

런던증권거래소는 지난해 틴코프가 운용하던 틴코프 뱅크의 지분 가치를 200억달러(약 25조원) 이상으로 평가했다.

틴코프는 지난달 19일 인스타그램에서 푸틴 정권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저격했다.

그는 "이 미친 전쟁의 수혜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며 "무고한 시민과 군인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인의 90%가 이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며 "물론 'Z'(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지지 상징)를 그리는 멍청한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국가든 그 10%는 존재한다"고 했다.

또 "국가가 네포티즘(족벌주의), 아첨, 노예근성에 찌들었는데 군대가 좋을 리 있느냐"고 덧붙였다.

틴코프는 이 글을 올린 다음 날 러시아 정부가 회사 간부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틴코프 본인의 지분 매각과 사명 변경을 하지 않으면 틴코프 뱅크를 국유화하겠다고 러시아 정부가 협박했다고도 했다.

실제로 틴코프 뱅크는 오래 전 계획이었다며 자사 명칭을 변경하겠다고 지난달 22일 발표한 적이 있다.

틴코프는 지난달 28일 자신이 갖는 지분을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광산업계 거물인 블라디미르 포타닌의 회사에 강제로 넘겼다.

구체적인 매각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내가 믿는 실제 평가 가치의 3%에 지분을 넘겼다"며 "크렘린궁이 강요한 거래였다. 제안 받은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고, 상의조차 할 수 없었다. 인질처럼 잡혀 있었기에 가격을 흥정하지 못한 채 제시한 대로 팔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9일 올레그 틴코프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미친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등 푸틴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올레그 틴코프 인스타그램]

현재 틴코프는 백혈병 치료를 위해 국외에 머물고 있다. 그는 "러시아 보안국과 접촉한 친구들이 생명의 위협을 조심해야 한다고 얘기한 뒤 사설 경호원을 고용했다"며 "백혈병에서 살아남는다면 크렘린이 나를 죽이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NYT는 틴코프의 사례를 내세워 러시아 재계가 침묵하는 이유, 러시아 엘리트가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면 얻을 수 있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틴코프는 "재계와 정부 엘리트들이 (내 의견에)개인적으로 동의한다고 하지만,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며 "푸틴 정권이 이 정도로 재앙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한편 소련 붕괴 뒤 국영자산을 헐값에 끌어모아 거부가 된 신흥재벌(올리가르히)과 달리 틴코프는 러시아에서 몇 안 되는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로 거론된다.

그가 2006년 설립한 틴코프 뱅크는 러시아에서 2번째로 큰 신용카드 사업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