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반
[글로벌인사이트] 자율보행자
뉴스종합| 2022-06-27 11:22

쫓기는 사람처럼 황급히 스마트폰을 꺼낸다. 구글지도 앱을 열고 서둘러 설정 아이콘을 찾는다. 활동제어로 들어가 위치기록을 끈 나는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창밖을 응시한다. ‘구글은 내 모든 걸 알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메일을 넘기다가 확인한 구글의 ‘내 활동기록 보고서’를 보고 나는 섬뜩해졌다. 구글은 시간대별로 나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걸어서 커피를 마시러 가는 나의 동선을 구글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기록했다. 구글에 따르면 나는 오라클(Oracle) 캠퍼스 앞에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교차로에서는 암트랙(AmTrak)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느라 몇 분을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집에서 스타벅스 미션칼리지 지점까지 가기 위하여 도보로 총 27분을 소요했다.

낯선 곳에 일하러 와서 빨리 적응하기 위해 틈날 때마다 지도를 펼쳤다. 안드로이드 전화기를 쓰던 내게 구글맵은 생활교본과도 같았다. 자동차로 세계를 바라보는 미국인과 차별화된 시각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덜 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현지에 도착하는 날부터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겠다고 결심했다.

샌프란시스코행 항공기에 접이식 자전거를 구겨 넣었다. 며칠 되지 않아 타이어가 펑크났고 나는 재빨리 자전거포를 찾아야 했다. 구글지도 앱을 열고 ‘내 주변 자전거 수리점(bike repair shop near me)’을 검색했다. 구글은 문 닫는 시간까지 고려해 가장 가까운 곳을 알려줬다.

미국에 와서 줄기차게 이용한 구글지도 앱은 기본값으로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수집한다. 애써 설정을 바꾸지 않는 한 내 활동은 실시간으로 구글 서버에 축적된다. 나는 구글에 별도의 사용료를 내지 않는 대신 내 정보를 고스란히 넘기고 있었던 셈이다.

제멋대로 살아온 나는 마땅히 내세울 만한 종교가 없다. 그래도 생을 마감할 때 나의 진실과 허위를 모두 알고 있는 이는 신밖에 없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해왔다. 이제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하루하루 나는 구글에 절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위탁한 채 살고 있다. 구글로 검색하고 지메일로 교신하고 구글이 인수한 유튜브로 영상을 즐긴다. 얼마 전 장만한 휴대전화는 구글이 만든 단말기 ‘픽셀 6’다. 구글은 나의 추구(pursuit)와 선호(preference)를 완벽히 파악해 내가 사고 싶은 상품을 띄우고 내가 즐길 영상을 제시한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신이 된 인간’을 설파했다. 삶의 많은 부분을 구글에 의존하다 보니 내게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구글의 지배에 사실상 종속된 나는 앞으로 삶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실리콘밸리 생활이 1년 반을 향해가는 지금, 이제 웬만한 곳은 지도 없이도 찾아갈 수 있다. 일론 머스크가 자율 주행을 내세운다면 나는 자율 보행자의 길을 가겠다. 구글맵의 안내 없이 나의 자유 의지에 따라 걸어갈 경로를 선택하겠다. 오늘 아침 스타벅스로 향하는 길, 스마트폰부터 집에 두고 나왔다.

김욱진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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