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르포] “에어컨 설치도 안돼…” 장마, 영등포쪽방촌 가보니
뉴스종합| 2022-06-29 09:53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28일 오후에 만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주민 윤정자 씨. 윤씨는 “고관절 통증 때문에 무더위에도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고 종아리에 파스를 붙이며 토로했다. 박혜원 수습기자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박혜원 수습기자] “장마 때문에 항상 문을 항상 열어놔도 소용없다. 바로 앞에 벽이 있으니까….” 장맛비가 쏟아지던 지난 28일 오후 2시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영등포 쪽방촌. 10m 정도 되는 1층 복도에 방 5개가 붙어있다. 장마철 유달리 심해진 습기를 빼기 위해 문을 열어놓은 한 1층 주민은 “빨래를 해도 널어놓을 곳이 없어 집안에 놓는데 너무 습하다”고 말했다. 그가 살고 있는 쪽방촌은 문을 열어놓으면 문과 벽 사이가 성인 손 반뼘 정도 남을 정도로 복도가 좁다.

이른 장마와 열대야를 극복하기 위해 쪽방촌 주민들은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다. 공용 에어컨이 없어 일부 주민은 선풍기만으로 습기와 무더위를 견딘다. 변덕스러운 날씨보다 최근의 고물가와 전기세 인상은 주민들을 더욱 무섭고 힘들게 하고 있다.

낡은 선풍기를 튼 채 쪽방에 누워있던 주민 윤정자(64) 씨도 장마철이 되면서 삶이 더 팍팍해졌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지자 그의 다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해서다. 윤씨는 “요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며 “고관절이 아픈데 수술할 돈이 없어 파스를 여러 개 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윤씨는 30만원 월세를 내면 남는 돈이 얼마 없어 밥은 주로 컵라면으로 먹는다고 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의 한 주택 1층, 10m 남짓한 복도에 방 5개가 붙어있다. 이 중 자물쇠가 걸려있지 않은 세 번째 방 1곳에만 주민이 살고 있다. 박혜원 수습기자

올해에는 예년보다 빠른 6월에 열대야가 찾아오면서 쪽방촌 주민들은 예년보다 힘든 여름 나기를 하고 있었다. 이날 새벽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사상 처음으로 ‘6월 열대야’가 나타났다. 특히 서울은 6월 일최저기온이 사상 처음 25도를 넘으며 이틀 연속 열대야가 나타났다. 25년 만에 최고치 신기록이 수립된 지난 26일 밤 이래 사흘 연속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그날 서울의 일최저기온은 25.8도였다.

이런 더위에 대부분 쪽방촌 주민은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거나 방문을 열어놓고 견디는 게 고작이다. 주민 유모(54) 씨는 더운 쪽방을 나와 인근 영등포역고가차도를 걷고 있었다. 유씨는 “선풍기를 틀어도 방 온도에 변화가 없어 쪽방에 들어가기 싫다”며 “아침에는 여의도공원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영등포 쪽방촌 인근에 있는 문래동 쪽방촌에서 왔다는 차모(63) 씨는 “밤에 너무 더워서 속에서 ‘욱’하고 열이 올라온다”며 “에어컨이 있긴 해도 전기료가 걱정돼 아주 가끔 튼다”고 말했다.

공용 에어컨을 설치하려 해도 쉽지 않다. 쪽방촌에는 서울시립영등포쪽방상담소가 주민들에게 보낸 안내문이 있었다. 안내문에는 “쪽방 건물 내 공용 에어컨 설치를 위해 오는 30일 오후 3시에 모여달라”는 내용이 담겼으나 정작 주민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안내문을 받은 한 주민은 “낡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에어컨 설치도 못하는데 공용 에어컨이 무슨 소용이냐는 분위기다”고 했다. 실제 영등포 쪽방촌은 목조건물이 많아 벽에 에어컨을 설치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개발 이슈로 쪽방촌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 시설 수리도 쉽지 않다. 영등포 쪽방촌은 2020년 1월 정부가 영구임대주택, 신혼부부 행복주택, 민간분양 등 1200호 규모의 주거‧상업‧복지단지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용적률 등 협상 과정이 지연되면서 일부 주민들은 개발 기간 동안 거주할 곳이 없다며 이곳을 떠났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인근 골목에 2층짜리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박혜원 수습기자

주민 김진홍(78) 씨는 “요즘은 방을 내놔도 들어오는 사람도 없다”며 “정말 사정이 어려운 사람은 월세 15만원 정도를 내고 쪽방촌에 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15만~30만원 정도의 월세를 내야 1~2평짜리 쪽방에서 살 수 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에어컨 설치조차 불가능한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2010년 중반에 서울시가 수십억(원)을 들여 쪽방촌 개선사업을 했으나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공공개발이 속도를 내서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inna@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