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생사 가른 2.5초...경호, 총격범보다 아베가 먼저였는데 [글로벌 플러스]
뉴스종합| 2022-07-26 11:35
도쿄 경시청 경찰관들이 작년 7월 도쿄 올림픽 개막에 앞서 외국 VIP들과 선수들의 경호를 위해 경호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AFP]

선거 유세 중 총을 맞아 숨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피습 사건을 계기로 일본 경호 체계의 허술한 수준이 만천 하에 드러났다. 사건 당시 경찰 경호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일본 안팎에서 쏟아진다.

아베 전 총리는 총리 재직 중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 등 수 십 년 장기 독재자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경호를 잘 받는 지도자들 축에 속했다. 하지만 전직 총리 신분이 된 뒤 그는 어이없게도 정치적 암살자도 아닌 통일교에 앙심을 품은 40대 무직자의 수제총에 맞아 67세에 세상을 떠났다.

26일 일본 마이니치, 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경찰청은 용의자 야마카미 데쓰야(41)에 대한 수사와 별개로 나라현경의 경호에 문제가 없었는 지 등을 따로 조사 중이다. 청은 경호 문제를 검증하는 별도 팀을 꾸려 나라현에 파견했다. 경호 대책 수립부터 인력 배치, 경호 절차 등 현장 대응 방식을 살펴본 뒤 8월 중 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지난 8일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 사이다이지역 광장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연설 도중 피습한 용의자 야마카미 데쓰야가 사용한 수제총.

▶생사 가른 2.5초...경호 매뉴얼 장소 선정부터 틀렸다=미국 민간군수업체에서 대인 경호와 대테러 훈련을 수료한 마루야 모토히토 일본 전략연구포럼 위원은 일 매체 JB프레스에 한 기고에서 연설 장소 선정부터 SP(Security Police) 배치 구도, SP의 늑장 대응 현장 대응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SP’(Security Police)는 경시청 경호과 소속 경찰관을 부르는 약칭이다. 정부나 외국 중요 인사의 출타부터 귀가까지 집 밖의 경호를 담당한다. 미국의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 제도를 모방해 만들었다.

먼저 가드레일이다. 아베 전 총리는 사방이 가드레일로 둘러싸인 약 50㎡ 면적에 360도 열린 공간에서 수십㎝ 높이의 연설대에서 연설했다. 가드레일은 폭발물 등 테러 발생 시 신속한 대피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 가드레일이 쳐진 장소는 연설장으로 부적합하다는 분석이다.

아베 전 총리 바로 뒤에 SP가 단 한 명도 배치되지 않은 점도 큰 문제로 지적됐다. 경호원은 경호 대상을 손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서 있어야, 습격이 있을 때 경호 대상자의 몸을 재빠르게 피하게 하고 칼이나 총탄을 대신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는 가드레일 안쪽에 SP 1명과 경찰관 4명, 바깥 쪽 에 경찰관 1명 등 경호 인력은 모두 5명이 배치됐는데, SP는 아베 총리 왼쪽 뒤편에 거리를 둬 서 있었다. 그 결과 아베 전 총리 바로 뒤는 열린 구조여서 총격범에 그대로 노출됐다.

SP의 느슨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마루야 위원은 “프로 경호 요원이라면 1~2초 안에도 여러가지를 할 수 있다”며 “큰 소리를 내거나 사격선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범인에게 심리적 효과를 주는데, 당시 SP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방 언론도 당시 현장 경호에 주목했다.

로이터통신은 아베 전 총리 피습 영상을 경호 전문가 8명에게 검토하게 한 결과 첫 번째 발포와 두 번째 발포 사이 2.5초 시간 동안 경호원들이 아베 전 총리를 포격선에서 이동시켰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최근 보도했다.

용의자는 아베 전 총리로부터 약 7m 떨어진 곳에서 1차 총격을 가한 뒤 명중하지 못하자 2m 앞으로 더 걸어가 2차 총격을 시도했다. 1차 발포 때 큰 소리가 나자 아베 전 총리는 상체를 왼쪽으로 돌려 뒤를 돌아봤고, 2차 총격은 아베 전 총리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경호를 담당한 케네스 봄바이스 글로벌쓰레트솔루션 대표는 “그들(경호 경찰)은 총격범이 (1차 발포 후)총리 뒤쪽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는 걸 알아챘어야 했고, 개입했어야 했다”고 단언했다.

후쿠다 미쓰루 니혼대 위기관리 및 테러학 교수는 1차 총격 후 경찰 2명이 야마카미 쪽으로 달려간 점을 언급, “일부 경호가 아베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고 총격범을 쫓는 건 ‘잘못된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경시청 경호과 소속 경찰관 ‘SP’의 활동 사진. [NHK 캡처·일본 경찰청]

▶국격은 하락...국장(國葬)·G7 정상회의 삼엄한 경비 예고?=이번 경호 실패가 일본의 대외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렸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니노유 국가 공안위원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외국에서 보면 매우 큰 충격으로, 일본의 커다란 신용 실추”라고 인정했다.

마루야 위원도 기고문에서 “유감스럽게도 이번 실패는 일본 경찰의 경호 능력이 떨어진다는 증명과 함께 전세계 경찰과 군 등에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실패의 본보기’로 오랫동안 인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닛폰방송 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아이다 코지는 “아베 전 총리가 총리 땐 SP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총리 직을 관두고) 돌아올 땐 1~2명 뿐이다고 농담한 적이 있다”며 전직 총리에 대한 경호 지원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연자와 “일본에선 수하물 검사도 없다” “외국에선 생각할 수도 없는 일” “미군 관계자도 ‘일본은 경비를 전면 재검토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등의 대화를 나눴다.

일본에선 오는 9월 27일 도쿄에서 55년 만에 열리는 국장(國葬)에 세계 각국 주요 인사들의 대거 참여가 예상된다. 이어 내년 5월 히로시마에서 주요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다.

기시다 정부는 아베 전 총리 국장이 ‘조문외교’의 장으로서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무성 한 간부는 요미우리 신문에 아베 전 총리 국장은 “아베 전 총리가 제창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외무성에 따르면 1967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국장 때는 12개국 특사를 포함해 73개국에서 외교사절이 참석했다. 2000년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내각·자민당 합동장에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 참석해 모리 요시로 당시 총리와 개별 회담도 가졌다.

비록 코로나19가 재유행하는 상황이긴 하나, 아베 전 총리가 재임 중 폭넓은 외교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국장에도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 세계의 눈 귀가 일본 경호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한지숙 기자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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