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늘 새로운 베토벤...아는 만큼 더 혹독했죠”
라이프| 2022-09-28 13:43
동갑내기 친구이자, 같은 길을 가는 ‘음악적 동반자’인 첼리스트 양성원(맨 앞)과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가 다시 베토벤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베토벤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곡가”라며 “내면의 감정과 깊이를 담아 연주했다”라고 말했다. 임세준 기자

마주 하는 시선 너머로 ‘닮은 눈빛’이 오간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엇’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같은 길을 가는 ‘음악적 동지’. 첼리스트 양성원(55)과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55)가 처음 만난 것은 10여년 전이다. 양성원이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짐머만의 공연에서였다.

“그 때 엔리코가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연주가 너무나 좋아 제 이탈리아 친구를 통해 먼저 연락했죠(웃음).”

MBTI로 치면,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극 E형’(외향형)의 적극적 표현이었다. 그 날 이후 두 사람은 많은 무대를 함께 하고 있다. 이번엔 다시 베토벤으로 돌아왔다. 양성원이 베토벤 전곡 연주 음반을 내는 것은 15년 만이다. 최근 클래식 레이블 데카(DECCA)를 통해 엔리코 파체와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곡집’을 선보였다.

한국 관객과의 만남(9월 29일·롯데콘서트홀)을 앞두고 만난 두 사람은 “베토벤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곡가”라고 입을 모았다.

베토벤은 한 번의 음반으로 만족하기엔 ‘거대한 산’과 같은 음악가였다. 양성원은 15년 만에 베토벤을 다시 녹음한 것을 두고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다시 음반으로 담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 과정은 “음악가로 혼을 담는 시간”이었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모습이 발견되고, 연주할수록 내면으로 탐구하게 되는 것이 베토벤이다.

“지금까지 베토벤을 백 번 이상 연주했어요. 명곡일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새로운 가능성이 보여요(양성원).”

“베토벤은 음악가에겐 등대와 같아요. 빅토르 위고는 ‘베토벤의 음악은 영원할 것’이라고 했어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할 때 자신의 마음을 듣기 시작했고, 표현이 불가능한 것을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베토벤은 역사적으로는 가장 처음 인간의 감정을 음표로 담은 사람이고, 마음 깊이 철학적 갈망을 표현한 작곡가예요(엔리코 파체).”

이미 여러 번 해봤다고 수월한 녹음은 아니었다. 양성원은 “연주는 아는 만큼 더 혹독하다”며 “이 곡들을 통해 우리는 계속 성장한다”고 했다. 이전과는 달라진 점들도 새 음반에 담겼다. 단지 소리와 기교의 총체가 아닌 “내면의 감정을 담고자” 했다. “기악적인 완성도는 이미 15년 전에 이뤘기에, 이번엔 악보 위의 까만 점이 아닌 그 이면을 들여다봤어요(양성원).”

엔리코 파체도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파체는 “악보는 고정돼있어 사람들은 때때로 그것이 건축같다고 말하지만, 베토벤은 환상적인 즉흥 연주자이자 유연한 건축가”라고 했다. 그러니 “악보에 담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상호작용 과정을 거쳐 새로운 순간을 창조하고, 또 다른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토벤의 아이디어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도전이에요. 우리는 늘 미켈란젤로, 바흐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다가서려 노력하지만, 그들은 다른 차원에 있으니까요(엔리코 파체).”

음악에 대한 성찰과 탐구는 음반을 녹음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이어진다. 무수히 많은 음표들이 “연결된 과정”, “연결의 다양성”을 탐구하는 데에 적잖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질문을 던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양성원과 파체가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닮았다. 철학하고 사유하는 쌍둥이 같은 음악가다.

양성원은 엔리코 파체를 ‘음악의 수도자’라고 표현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이자 “수도자 같은 인품을 가진 피아니스트”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린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닮아있어요. 음악 앞에선 한없이 겸손하죠. 그동안 너무나 많은 곡을 함께 했는데, 엔리코와는 그 작곡가들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고 깊이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아요(양성원).”

엔리코 파체는 “양성원이 항상 음악을 노래하고 호흡하는 능력에 감동을 받는다”며 “이탈리아인과 한국인은 비슷한 점이 많아 삶에 대한 접근방식이 닮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다”고 말했다.

음악가들의 음악활동은 그들의 지나온 ‘인생의 기록’이다. 다른 어떤 때도 아닌 지금의 내면, 그 안에 차곡차곡 쌓인 음악과 삶을 하나의 챕터로 남긴다. 양성원은 “음악은 삶의 초상화”라며 “추구하는 삶이 음악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했다.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이 환히 웃더니, “어느덧 흰머리는 생기고, 아이들은 훌쩍 커 대학생이 됐다”고 했다.

“10대, 20대 때의 연주가 연습의 결과물이었다면, 40대 후반까진 음악가의 정체성이 드러나요. 50대에 들어오니 우리의 삶이 느껴지는 것 같더라고요. 60대가 되면 그 때부터 우리의 철학이 들리겠죠. 그 길을 가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음악을 해온 지난 시간 동안 우리 안에서도 성장이 있었다고 믿어요. 내면의 성장과 함께 음악에도 여유가 생기고, 깊이가 생겼어요. 우리 둘 다 아주 자연스럽게 한 발짝, 한 발짝 바른 방향으로 음악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양성원).”

“수십 년을 연주한 지금에야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음악을 조금 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사는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엔 무수히 많은 변화가 담겨있어요. 우리 안에서 이뤄진 변화를 통해 음악의 언어를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늘 바라고 있습니다(엔리코 파체).”

두 사람과 한국 관객의 만남은 2020년 이후 2년 만이다. 양성원은 “클래식 음악은 다른 세기에 다른 철학을 추구한 사람들의 아카이브”라며 “그들의 이상을 만날 수 있는 시간으로 꾸미겠다”고 했다. 엔리코 파체는 “한국 관객들은 공감능력이 매우 높고 감정을 잘 읽는다”며 “이 음악 안에 있는 눈물과 웃음, 내면의 감정과 농담을 두루 이해하고 공감하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음악으로는 표현할 수 있어요. 음악은 내면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가 될 수 있죠. 그 언어들을 만나는 자리가 될 거예요.” (엔리코 파체)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