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불야성을 이뤘던 인쇄 골목 지금은?
라이프| 2022-09-30 07:34

대구 남산동은 인쇄골목으로 유명하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고층빌딩이 즐비한 번화가 사이에 수백 개의 작고 오래된 인쇄소들이 즐비하다. 글을 기록으로 찍어내는 이들이다.

‘기록을 찍는 사람들’(산지니)은 남산동 인쇄 골목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이들을 인터뷰한 현장 기록이자 인쇄소의 어제와 오늘, 미래의 얘기다. 24시간 불야성을 이뤘던 이곳은 재개발 현수막이 나부끼고 빈 집들이 늘어나며 저녁엔 어둠에 잠긴다.

인쇄 골목 안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한 생생한 이야기들은 불빛이 꺼져가는 인쇄소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쇄 골목의 대다수 업체들은 영세해 소량 인쇄로 유지되고 있는데 재개발 이슈와 젊은 층의 부재, 인쇄 기술자의 고령화로 쇠퇴의 길이 가팔라지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70%가 60대, 70대 초의 나이다. 젊은이들은 남산동 인쇄골목이라고 하지 않고 ‘카페골목’으로 부른다.

90년대 만 해도 이곳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었다. 선거철에 철야작업은 필수, 동성로에 상점들이 들어서고 관공서, 회사들은 홍보 책자를 만들기에 바빴다. 엄청난 물량이 쏟아졌다. 그러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와 광고를 보는 시대가 됐다. 대학 전공 책 주문도 3분의 1로 줄었다.

인건비 감당이 안돼 채용도 못한다. 업주 자신의 인건비도 못 건지는 형편이다. 더욱이 인쇄 단가는 20년 전이나 똑같다. 그래서 일이 있으면 문을 열고 일 없으면 닫는 게 일상이다.

책은 인쇄의 전 과정을 현장에서 속속들이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종이 가공, 인쇄, 라미네이팅, ‘도무송’, 제본 순으로 이어지는 인쇄 공정과 크기· 재질· 두께별 수백 가지가 넘는 종이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복잡한 인쇄 공정이 서로 연결돼 있어 뭉쳐 있어야 하는 영세한 이들은 재개발이 되면 갈 곳이 없다는 데 걱정이 있다.

업자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사업이 인쇄보다는 주로 기획이나 출판 쪽에 기울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인쇄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술자라고 말한다.

인쇄소 뿐 만 아니라 작은 책방, 출판사까지 지식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인쇄골목의 안과 밖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기록을 찍는 사람들/조현준·전민규 지음/산지니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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