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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은 극한직업”‘슈룹’의 김혜수가 표현해낸 ‘중전’ 캐릭터
엔터테인먼트| 2022-12-07 00:21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국모는 개뿔, 중전은 극한직업이다.”

엄마의 위대한 ‘사랑의 힘’을 증명한 tvN 토일드라마 ‘슈룹’의 마지막 대사다. 왕자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던 중전 임화령(김혜수)이 마지막까지도 막내 일영대군(박하준)이 연을 만들어 함께 날아보겠다며 지붕위에 올라가자 이를 해결하러 달러가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다.

지난 4일 종영한 이 드라마는 마지막 대사 뿐 아니라 마지막 장면도 의미가 있었다. 이제 성장한 아들 대군들이 화령의 우산이 되어주는데, 마지막에는 중전과 계성대군(유선호)이 우산을 쓰고 함께 걸어가다 엔딩에서 계성대군이 여장(女裝)으로 바뀌는 것. 당시 대군마마가 여장을 한다는 것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중전은 그 자체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뒤 만면에 환한 웃음을 가득 품은 채 자식을 단속하러 달리는 화령의 모습은 힘들어도 더없는 행복감으로 가득해 보였다. 어린 자식이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주던 화령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자식에 의해 비를 피하고, 그런 그녀가 또 다른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엔딩은 짙은 여운을 남겼다.

이처럼 ‘슈룹’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엄마의 사랑을 우산의 순우리말인 슈룹에 빗대어 표현했다. 모양은 같아도 색은 형형색색인 우산처럼 극 중 엄마들의 사랑도 다양한 방식을 보였다.

화령은 어떠한 역경에도 돌파구를 찾아내는 현명한 사랑을 보여줬다. 어떤 사랑은 결핍을 채우는 도구였고, 또 어떤 사랑은 더 큰 부와 권력을 향한 탐욕이었다. 이러한 욕심에 피해를 입는 것은 자식들이었으며 그 상처는 오롯이 엄마의 몫임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일깨워 주었다.

김혜수는 기존 사극이 그려왔던 내명부 여인의 정적인 이미지 대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역동적인 인물로 화령을 표현했다. 신선한 화법의 캐릭터 묘사는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해 시청률 견인의 원동력이 됐다.

김혜수가 그린 화령이 달랐던 점은 모두를 생각하는 중전이었다는 것이다. 화령의 슈룹은 남다른 정체성을 가진 계성대군(유선호)에게, 양반에게 겁탈을 당하고도 되려 손가락질 당해야 했던 여인에게, 방황하던 왕자들과 비통해 하는 후궁들, 그리고 비참한 말로를 맞은 의성군(강찬희)과 황숙원(옥자연)에게까지 골고루 씌워졌다. 화령이라는 캐릭터는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어 모두가 평등하게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미, 즉 ‘사랑’ 그 자체였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화령의 활약 역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성이기에 마주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통쾌하게 표현했다. 확신과 신념에 맞는 말이라면 국왕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고 대비의 계략과 황원형의 음모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았다. 강인한 중전이자 대범한 화령의 행보는 큰 응원을 받았다.

물론 화령이 빛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혜수라는 배우가 있었다. 김혜수는 온갖 암투와 권력 다툼의 중심에 서야 했던 화령에 녹아들어 오로지 표정과 분위기만으로도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냈다. 또한 기개 넘치는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카리스마 역시 김혜수이기에 표현 가능했다. 나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는 대군들 앞에서 버럭하고, 원손 앞에서는 무장해제되는 화령의 모습으로 따뜻한 인간미까지 느껴지게 만들었다.

‘슈룹’ 마지막회는 태인세자는 물론 왕세자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상세히 밝혀지며 결말을 맞았다. 동시에 비밀을 파헤칠수록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던 화령의 고단했던 여정도 마무리 됐다. 자식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다 왕실의 끔찍한 비밀과 마주한 중전 화령은 결국 왕(이호)을 설득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았다.

탐욕으로 시작된 비극은 결국 누군가의 복수심을 깨우고 희생을 불러낸다는 사실 역시 태인세자의 아우 이익현(김재범)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했다. 비극의 굴레가 계속되지 않도록 치부를 드러낸 왕 이호의 용단이 의미 있게 다가온 이유도 그의 아픔과 번뇌가 보는 이들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일 터. 진짜 용기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했다.

이러한 스토리를 사극이라는 시대적 배경 안에, 그중에서도 지엄하고 제약된 공간인 궁을 배경으로 한 점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 여성 연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포용 등 현대적 가치관을 반영한 소재를 과감히 사극에 투입, ‘슈룹’만의 특별한 재미와 공감대를 형성하게 했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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