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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 시장의 황소개구리…시장 왜곡의 원흉이 된 임대차3법 [이념에 경도된 정책]
부동산| 2023-02-22 17:31
한 시민이 서울 송파구 잠실 인근 중개업소 게시판을 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요즘 집주인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를 가장 무서워합니다.” 최근 부동산중개업자들을 만나면 수시로 듣는 말이다.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 시행 이후 강화된 임차인 권리 조항에 따라 갱신계약을 통해 전세계약을 연장한 세입자는 언제라도 나가겠다고 통보하면 집주인은 3개월 이내에 전세보증금을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전셋값이 폭락하고 있는 최근 시장 상황에서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와 계약한 수준보다 낮은 금액으로 새 임차인을 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집주인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그 차액을 돌려줘야 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임대차3법이 시작된 초기엔 전셋값을 급등시켜 시장에 충격을 주더니 이제는 역전세난이 심각한 시장에서 급전세를 증가시키며 가장 큰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차3법은 문재인 정부에서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실제론 주택시장을 가장 크게 교란 시킨, 대표적인 정책이란 평가를 받는다.

제도가 시행된 2020년 7월 31일 정부는 임대차3법 시행을 계기로 임대시장의 안정 기조가 더 확고하게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정부는 새 제도(임대차3법)를 조속히 안착시켜 임대인과 임차인의 권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명령했다.

시장 전문가들이나 야당은 임대차3법이 시행되면 단기간 전셋값이 폭등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집주인=강자, 임차인=약자’라는 이념적 틀을 강조하면서 임대차3법 추진을 밀어붙였다.

서울시내 한 부동산중개업소. [연합]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움직였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전세 계약 기간이 4년까지 늘어나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할 때 그 기간만큼 전셋값을 대폭 올렸다. 한편으론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기존 임차인과 재계약을 한 곳이 많은 지역에선 전세 유통 매물이 급감했다. 부동산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매물은 2020년 7월 초 4만3900여건이었으나 임대차법 실시 이후 계속 감소해 그해 9월이 되면서 8000건대까지 줄었다. 전세 공급이 단기간 크게 감소하니 전셋값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임대차3법이 시행된 2020년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에만 9.73% 뛰었다(KB국민은행 시세 기준). 직전 5개월(2~7월) 상승폭(1.67%)의 6배 수준의 폭등이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2012년 이후 연간 3~4% 수준의 변동률을 기록할 정도로 안정됐으나 임대차3법 시행 이후부턴 완전히 달라졌다. 2020년 12.25%, 2021년 11.86% 등 매년 10% 이상씩 급등했다.

전셋값 폭등은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매매 가격 대비 대폭 오른 전세 가격으로 ‘갭투자’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됐고, ‘영끌족’이 대폭 늘어났다. 당시 정부가 임대차 서민을 위한다며 확대한 전세자금 대출 정책은 갭투자 증가에 일조했다. 갭투자비율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서울 아파트 매매의 14%였지만 2021년엔 43%까지 폭증했다.

‘전세사기’도 극성을 부렸다. 당시 젊은 층에선 전세금이 매매가와 같거나 높은 집을 사는 ‘무자본 갭투자’가 유행했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 드러난 ‘빌라왕’ 같은 전세사기꾼이 활동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전세 피해물량이 2019년부터 2022년 초까지 집중돼 있다. 이념적으로는 서민을 위한 임대차3법, 전세대출이었지만 결과는 조직적인 사기집단에 먹잇감을 던져주고 다수 서민은 전세사기 피해자로 전락했다”고 말한 건 이런 배경에서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리인상이 본격화하면서 전세시장은 또 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던 전셋값은 고금리와 입주물량 증가로 빠르게 하락했다. 세입자들은 더 이상 높은 이자의 전세 대출을 하지 못하고, 월세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전세매물은 다시 늘어났다.

[연합]

전세 하락폭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금리인상이 본격화한 지난해 8월부터 6개월 연속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11월 –2.19%, 12월 –3.29% 등으로 최근 들어 하락세가 더 가파르다. 특히 올 들어 1월 한 달에만 3.98% 떨어졌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5월(-6.74%)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이런 상황은 영끌족, 갭투자자에게는 악몽이 된다. 세입자는 이젠 수억원의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거나 상급지 또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할 지를 재고 있다. 집주인은 나가겠다는 세입자에게 급전을 마련해야 할 처지다. 차라리 손해 보고라도 집을 팔려는 집주인도 생긴다. 매매시장에 거래절벽이 심각해 그마저 잘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급전세와 급매물이 동시에 증가하는 상황이다.

전세와 매매가 동시에 급락하면 무리하게 투자한 영끌족을 중심으로 파산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내놓은 악성 갭투자 매물은 경매시장에 흘러 들어가면서 급락 분위기를 더 부추길 수 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시장 참여자를 집주인은 강자, 세입자는 약자라는 식의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한쪽을 배제하거나 벌주는 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이념적’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임대차3법은 무주택자를 위한다는 이념적 명분으로 시장 기능을 무시하고, 인기영합으로 추진했다가 시장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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