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반
[알렉스 에드먼스의 Pieconomics] “위기의 자본주의, 계산기에서 벗어나라”
뉴스종합| 2023-03-09 11:31
케냐 수도 나이로비시내 사파리콤통신사 매장에서 한 시민이 ‘M-Pesa(페사)’를 이용해 모바일 화폐를 전송하고 있다. [로이터]

정치인과 일반 시민 심지어 경영진조차 비즈니스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최고경영자와 주주들은 부자가 되지만 이에 대한 대가로 직원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 고객들은 높은 가격을 지불하며, 환경은 오염된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원칙을 사업과 투자에 적용하는 ‘ESG’가 이런 논란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ESG 투자는 지난 2006년 국민연금공단이 500억원을 배정하면서 시작됐다. 2020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ESG 총투자액은 그로부터 2000배 증가한 100조원 이상에 달한다.

그러나 ESG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많다. ESG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ESG가 기업들을 ‘주주를 위한 수익 창출’이라는 핵심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 비판의 기저에는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를 크기가 고정된 파이로 보는 ‘파이 쪼개기’ 사고방식이 있다. ESG는 사회에 돌아가는 파이 조각의 크기를 키우기 때문에 기업이 받게 되는 조각은 작아진다. 임금 인상이나 소비자가격 인하는 기업의 이윤을 잠식한다. 이처럼 ESG가 기업의 이윤을 해치기 때문에 ESG를 내세우는 많은 기업이 사실 친환경을 추구하는 척하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 ‘그린 워싱(greenwashing)’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ESG를 실천하는 새로운 방식을 소개하는 필자의 책이 얼마 전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필자가 ‘ESG 파이코노믹스(Pieconomics)’라고 부르는 이 방식에는 ‘파이를 키우는 데’에 필요한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이의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이 사회에 투자할 때 주주 몫의 파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파이 전체의 크기가 커져 궁극적으로 투자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게 핵심이다.

A기업은 진정으로 직원을 위하는 마음에서 근무 조건을 개선했는데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져 생산성이 향상됐다. B기업은 공중보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들이 돈을 낼 수 있는가를 따지지 않고 신약을 개발했는데 결국에는 신약 상용화에 성공했다. C기업은 환경에 대한 책임감으로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선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으로 배출량을 줄였는데 고객, 직원 및 투자자들이 이러한 가치를 지닌 기업에 매력을 느껴 결국 기업에 이익이 됐다.

기업과 사회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필자가 직접 진행했던 한 연구에서는 직원 만족도가 높은 기업들이 동종 사 대비 29년 동안 해마다 2.3~3.8% 더 성과가 좋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복리로 계산하면 89%에서 194%에 달한다. 후속 실험을 통해 직원 만족도가 좋은 성과로 이어지는 것이지, 그 반대의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외에 고객 만족, 환경 스튜어드십, 지속 가능성 정책 또한 높은 주식 수익률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밝혀낸 여러 다른 연구도 존재한다.

파이코노믹스와 ESG는 무엇이 다를까? 어떻게 전자는 파이를 키워 궁극적으로 이윤을 높이는데 후자는 파이를 쪼개서 이윤을 낮추는 것일까?

파이코노믹스에 따르면 특정한 ESG활동만이 기업과 사회 양쪽 모두에 기여할 수 있다. 기업들이 모든 ESG와 관련된 시류에 편승하거나 언론에 보도되는 모든 ESG 문제에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SG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회사들은 ‘선언문’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선언문은 ‘우리는 주주에 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고객, 직원, 공급 업체 및 환경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식이다. 이 기업들은 ESG의 목적이 모든 사람, 즉 주주와 기타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목적’이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목적이란 뭔가에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목적 있는 회의는 명확하게 의제가 설정된 회의이고, 만약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뭔가를 한다면 그것은 신중하게 하는 행위다. 목적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다. 즉, 기업이 누구에게 이바지할지, 왜 존재하는지 및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파이코노믹스는 기업이 무엇에 집중할지 결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원칙을 제공한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비교 우위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기업은 해결책에 대한 고유한 전문성을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사회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의 비교 우위를 식별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내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문해보는 것이다.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자원은 무엇이고, 약간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함으로써 이 전문성과 자원을 어떻게 더 큰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쓸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카카오와 네이버의 손에는 기술적 전문성이 있고 코로나19 위기 당시 이 전문성을 이용해 백신 패스를 개발하고 백신 예약 시스템을 개발했다. 삼성은 엔지니어링 분야 전문성을 활용해 마스크 생산업체들의 운영 효율성을 개선했다. LG전자는 적외선을 이용해 표면을 소독하는 로봇을 출시했다.

기업들이 비교 우위를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파이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 그러나 파이를 쪼개는 방식으로 ESG를 실천하는 많은 기업은 보유한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ESG를 실천하는 보편적인 방식 중 하나는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다.

하지만 당신의 회사가 전자제품을 만든다면 암 관련 단체나 동물권리 보호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다. 자선단체에 10억원을 기부하면 이윤은 10억원 줄어들 뿐이다.

따라서 기업은 각자의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가 누구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코코아, 커피, 견과류, 향신료, 쌀 등을 생산하는 싱가포르 농업기업 올람(Olam)에 지역사회와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사회는 노동자와 고객을 제공하고, 땅과 물은 생산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므로 ‘책임감 있는 성장’을 위한 올람의 주요 목적은 환경 보전 및 지역사회 재생이다.

반면에 항공권 비교 예약 서비스인 스카이스캐너와 같은 온라인 서비스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직원을 고용하고, 전 세계에 판매하며, 천연자원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환경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할 수 있다.

이윤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기업들도 전문성을 활용해 중요한 이해관계자를 위해 일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기업들은 그 행위가 궁극적으로 이윤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설 때만 투자할 것이다.

이와 달리 파이코노믹스를 실천하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투자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파이가 커지고 그 부산물로 이윤이 창출된다.

2003년 영국의 통신사인 보다폰(Vodafone)은 케냐인들이 휴대전화로 화폐처럼 통화 시간을 주고받는 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발 더 나아가 휴대전화로 통화 시간이 아닌 진짜 현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 개발까지 연구했다. 당시 케냐에는 1500만명의 사람이 은행 계좌가 없었고, 이들은 위조, 분실, 도난 등의 위험이 있는 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폰이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로 인한 사회적인 영향과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4년 후 보다폰은 ‘M-Pesa(페사)’라는 휴대전화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것은 케냐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사람들에게 금융에 대한 접근을 제공해 줘 출시 후 초기 7년 동안 케냐의 20만가구가 빈곤에서 벗어났다. 기업이 사회를 위한 가치를 창출하면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

보다폰 역시 이 서비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M-Pesa가 기존의 수익계산법으로는 결코 정당화되지 못했을 것이란 점이다. 사실 가장 수익성이 높은 시장은 서구 시장이다. 보다폰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든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시장 법칙과도 배치되는, 솔직히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이코노믹스의 위대한 힘은 책상에 놓여 있는 계산기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이윤을 가져다줄 아이디어를 만들고, 발견하고, 탐색하고, 생각해내도록 자극한다.

결국은 파이를 쪼개는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보다 이윤은 파이를 키우는 과정의 부산물로 보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바람직한 길이 된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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