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의대정원 확대]안과 한번 갈때마다 1박2일...지방 의사도 “서울 가라”
뉴스종합| 2023-10-18 11:11

“의사도 서울에 있는 병원 가보라며, 여기는 치료할 만한 환경이 부족하다고 했다. 한 번 안과 갈 때마다 최소 1박 2일은 서울에서 지내고....”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모(56) 씨는 4년 동안 어머니의 병원 치료를 위해 전북 익산과 서울 영등포구를 수시로 오갔다. 올해 90세인 이씨의 어머니는 2019년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노화성 눈 질병인 황반변성을 진단 받았다. 고령의 어머니가 사는 익산에는 해당 질병을 치료할 만한 병원이 없었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공기업에 근무하는 이모(35) 씨는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광주를 간다. 이씨는 “나주에 종합병원이 들어오긴 했는데, 대형 수술은 못하는 거 같고, 장비도 최신 장비를 쓰는 것 같진 않다”며 “제대로 된 진료를 받으려면 광주 전남대병원이나 조선대병원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주에 간다고 진료가 쉬운 건 아니다. 그는 “직장 동료를 이야기 들어보면 (지방대병원 측에서) 수술 못한다고 서울 가라는 경우가 왕왕 있다더라”며 “광주에 있는 일반 병원은 전문의가 아니라 의원인 경우도 있어서 의료 시설이 늘 아쉽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남의 경우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75명으로 서울 3.47명에 비해 현저히 적다.

‘상경 진료’가 익숙한 지방 시민에게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 확대는 초미의 관심사다.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특히 정부가 비(非)수도권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내세운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방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 시민들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의대 입학 정원 확대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경북 경주에 거주하는 정모(29) 씨는 “의대 입학 정원이 확대되는 것이 의료의 질적, 양적 측면에서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정씨는 “지방 의대에 진학하면 의무적으로 몇년 이상 지방 근무 해야 한다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듯 하다가 의무 근무 기간이 끝나면 대도시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지방 간 의사 수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로 1000명당 3.74명이었다. 가장 적은 지역은 세종은 1.29명이었다. 지방 대도시의 경우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대부분 지방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명대에 못 미쳤다. 전남 지역은 1.75명, 경남 지역은 1.74명, 충북 지역은 1.59명, 충남 지역은 1.53명으로 대부분 1명대를 기록했다.

지방 의료가 악화하면서 대규모 병원도 적자를 보는 상황이다. 이형민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일부 응급실의 경우 적자 상태라 자생력이 없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월급 줄 수 없는 상태인 것”이라며 “그럼에도 응급실은 언제 발생할 지 모르는 환자를 위한 곳이라 문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방 의대 정원이 확대되고, 지역 인재 유치가 병행된다면 의료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일부는 정원 확대가 지방까지 영향을 미치는 낙수효과가 없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지역 학생이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경우 해당 지역에 어느 정도 남는 건 증명됐다”며 “가능하면 지방 의대를 늘리고, 지역 인재 선발 전형을 활용해 그 지역 출신이 그 동네 의대를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약 의료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의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지역의사제는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복무를 하도록 하는 제도를 뜻한다. 독일에서도 시골 지역이 의사 부족난을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지역의사제를 도입했다.

김빛나·안효정·정목희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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