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상권 명동·홍대 상가공실 여전
고금리에 임차인 보증금 감당못해
“손해 뻔하니 아무도 안 쳐다봐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돌아왔지만 고금리 영향으로 명동과 홍대 등 이른바 황금상권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시 중구 명동 1번가 상가 매장들이 비어 있는 모습 박지영 기자 |
“언젠가 상권이 살아날 거 아니까 임대인들은 그때까지 월세 내리지 않고 버티려고 하는 거고, 임차인들은 금리까지 야금야금 올라간 상황에 보증금까지 다 까먹고 나갔어. 월세가 너무 세니까 손해가 뻔하지. 공실을 누가 쳐다보겠어?” (명동 공인중개사 70대 박모 씨)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돌아온 명동·홍대지만 그곳에도 일부 구역은 ‘유령상가’가 남아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급증했던 상가 공실이 엔데믹 이래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채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로는 고금리가 꼽히고 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늘면서 상권은 회복 추세가 뚜렷하다. 컨설팅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가 서울 6대 가두상권을 대상으로 통계청 자료와 신용카드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홍대와 명동은 코로나 전인 2019년 1분기에 비해 각각 115%, 74%의 상권 회복률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68만6430명이었던 중국인 관광객은 올해 9월 기준 129만4797명으로 88.63% 증가했다. 지난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중국 내 여행사들의 한국 단체여행 상품 판매를 금지해오다 올 8월 11일부터 이를 허용했다.
그러나 헤럴드경제가 명동·홍대상권을 둘러보니 채워지지 않은 ‘유령상가’가 몇몇 남아 있었다.
유커들이 자주 찾는 명동.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명동 공실률은 2022년 52.5%에서 14.3%로 3분의 1 이상 감소했다. 다만 메인거리에서 왼쪽으로 100m 정도 꺾으면 보이는 명동 1번가라고 부르는 곳은 유커가 돌아왔음에도 한산했다. 4층, 3층 건물이 통으로 비어있는 경우가 다수였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떼보니 쌓인 먼지 때문에 손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공실 건물 근처 자영업자 A씨는 “코로나 전에는 여기는 다 차있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공실이 됐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온 관광객 리시(17)씨는 “메인 거리랑 여기랑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며 “메인 거리는 활기차고 바빠 보이는데, 여기는 으스스한 분위기”라며 걸음을 옮겼다.
홍대도 사정은 비슷했다. 홍대는 매출 회복세가 무색하게 공실률은 2022년 13.4%에서 2023년 15.9%로 오히려 상승했다. 유커들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홍대도 그 수혜를 제대로 못보고 있는 것이다. 홍대 정문부터 청춘마루까지 300m 정도 길이의 거리에 있는 일부 건물들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4층짜리 건물이 통으로 남아있는 곳, 3층만 영업 중이고 1,2층이 비어있는 곳도 보였다. 통으로 비어있는 건물 입구에는 통행을 제한하는 주차콘이 세워져 있기도 했다.
밤이 되자 이 부근은 불 켜고 영업하는 상점이 없어 어두컴컴했다. 인근을 지나가던 50대 중반 최정희 씨는 “경제난이라는 말이 와 닿는다”며 “발 디딜틈 없었던 2019년이랑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했다. 인근에서 카페를 하는 A(32) 씨는 “유명 브랜드가 입점했었는데 코로나 초반까지 버티다가 결국 나갔다”고 했다.
인근 부동산들은 유커가 돌아오고 상권이 회복되고 있어도 고금리 때문에 공실이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홍대 근처 공인중개사 이모(48) 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홍대라는 이미지를 보고 들어와서 공실이 거의 없었다”라며 “지금은 유동인구 유입도 적은 상권에 빚을 내면서까지 들어와서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까 공실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대인들도 고금리에 임차인을 받기 위해 임대료를 30% 정도 낮췄지만, 버틸 여력이 있는 임대인들은 건물 매매를 생각해서 더 이상 낮추지 않는 것도 공실로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공인중개사 B 씨는 “홍대 정문 앞 상권은 따지면 그다지 수익이 높지 않은 곳인데 (임차인이) 빚 내서 굳이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며 “한 번 들어오면 10년이고, 월세도 5% 이상 못 올리는데 임대인도 쉽게 월세를 내려서 받으려 하지 않는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이라고 했다.
명동도 상황은 비슷하다. 인근 공인중개사 70대 박모 씨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만 해도 명동 1번가에 공실이 없었다”며 “비싼 곳은 30평짜리가 보증금 15억원에 월세 1억5000만원 받고 있는데 금리도 올랐는데 누가 선뜻 들어와서 장사를 하겠냐”며 “임대인들은 지금 월세를 싸게 내면 나중에 올릴 때 힘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건물을 몇 채 가지고 있는 돈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고금리라고 짚었다. 부동산119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임대인은 고금리에 임대료라도 많이 받아야 자신의 레버리지, 감가상각, 유지보수 등 비용을 다 빼고 실익을 가져갈 수 있는데, 임대료가 낮아지면 임대 수익률도 낮을 뿐 더러 임대료 수준이 건물 가치를 좌우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건물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임대료를 유지하려는 입장이 있다”고 했다. 또 “임차인들은 생각보다 금리, 물가가 높으니까 자기가 가져갈 수 있는 마진이 별로 없는데 임대료도 만만찮으니 임차인과 임대인의 기준이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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