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K-팝 공연장이 없다
라이프| 2024-01-30 11:40
세븐틴은 지난해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세븐틴 팔로우 투 서울(Follow to Seoul)’로 3만7000여명의 캐럿과 만났다.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정말 오랜만의 한국 공연이네요. 요즘 진짜 (공연장이) 많이 없잖아요. 다음 달에도 공연을 잡아보려 했는데, 대관이 안됐어요.”

단일 앨범 음반 판매량 600만장. 명실상부 최고의 K-팝 스타로 자리한 그룹 세븐틴의 멤버 호시는 지난해 고척돔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관련기사 2면

‘코리아 패싱’에 ‘대관 전쟁’까지…. K-팝 종주국은 지금 ‘공연장 기근’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계적인 팝스타들은 회당 4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이 없어 한국 공연을 건너 뛰고, 수십년 활동한 ‘거장’은 물론 거대한 팬덤의 K-팝 그룹도 공연장 대관이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렵다.

공연업계 관계자들은 “K-팝은 세계 시장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국내 대중음악 공연 시장의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이런 공연 환경은 K-팝의 글로벌 위상과 대조된다”고 말한다.

▶잠실 주경기장 보수 공사 돌입에…연쇄 ‘대관 전쟁’=지난해 8월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간 후 ‘공연장 기근’ 현상이 본격화하며 대중음악계에 최악의 ‘대관 전쟁’을 불러왔다.

현재 서울에서 1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은 케이스포돔(KSPO돔·옛 체조경기장, 1만5000석)이 유일하다. 고척돔이 3월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긴 하지만 야구 시즌(4~10월)엔 대관을 하지 않아 소용이 없고 조용필, 방탄소년단(BTS), 아이유처럼 회당 3만5000명 이상의 관객이 드는 대형 가수들의 공연이 가능한 주경기장 역시 리모델링이 완료되는 2026년 12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김은성 비이피씨탄젠트 대표는 “잠실 주경기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이후 연쇄 작용으로 케이스포 돔, 고척 스카이돔 등 다른 공연장들의 대관 또한 어려워졌다”며 “공연장 부족으로 K-팝 메카인 서울시에 해외 관광객이 방문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손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상황은 심각하다. 업계에 따르면, 기획사가 계획한 콘서트 날짜에 맞춰 서울 시내 체육시설 대관을 입찰하면, 같은 날짜에 가수들이 몰려 원하는 날짜에 대관을 하기가 힘들다. K-팝 그룹이 다수 소속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세계적인 K-팝 스타부터 거장 뮤지션까지 10여팀 이상이 동시에 입찰해 경쟁을 하다 보니 원하는 날짜엔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특히 케이스포돔이 2주 연속 대관을 허용하면서 가수들에게 기회가 더 줄어들었다. 공연기획사인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최윤순 이사는 “대형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늘어나다 보니 다른 아티스트의 대관 기회는 더욱 줄게 됐다”며 “특히 해외 톱 아티스트들이나 K-팝 가수들의 대관 공연은 1~2년 전에 미리 대관을 신청해야 하나 공연장이 부족해 사전 대관 신청을 잘 받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서울에서 1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 줄어들면서 K-팝 종주국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있다. 사진은 샤이니 태민이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공연하는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

▶토트넘은 되는데 상암은 안되네…‘잔디 훼손’문제 민감=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중음악 공연장은 객석 수에 따라 ▷홀(5000석 안팎) ▷아레나(1만~2만석) ▷슈퍼아레나(3만석 안팎) ▷돔(5만석 안팎) ▷스타디움(7만명 안팎) 등으로 나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름엔 ‘돔’이 붙어있지만, 케이스포돔과 고척돔은 ‘아레나’ 급이다.

국내와 달리 해외는 아레나 급 이상 공연장의 천국이다. 일본은 1만명 이상 수용 가능한 스타디움, 돔, 아레나가 40곳에 달한다. 도쿄돔, 삿포로돔, 나고야돔, 오이타뱅크 돔, 후쿠오카 돔은 일본의 5대 돔으로 꼽힌다. 최윤순 이사는 “지하철과 연결된 요코하마, 지바, 사이타마만 해도 20곳 이상의 베뉴(경기장)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중 전문 음악 공연장으로 분류된 아레나도 11개나 된다.

미국과 유럽의 인프라는 더 어마어마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1만석 규모의 공연장이 40여개에 달한다. 축구장, 농구장, 미식 축구장 등의 체육 시설을 포함한 숫자다. 해외에선 한국과 달리 스포츠 구장을 대중음악 공연장으로 적극 활용한다. 방탄소년단(2021년 11~12월 4회)과 트와이스(2023년 6월 1회)가 공연한 미국 LA 소파이 스타디움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빌보드 어워즈가 열렸고, 트와이스가 공연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홈구장인 트루이스트 파크(4만명), 국가대표 축구선수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 훗스퍼 구장(6만명), LA다저스 스타디움(5만6000명), 파사디나 로즈볼 스타디움(9만명), 웸블리 스타디움(9만명) 등의 경기장이 공연장으로 쓰이며, K-팝 가수들에게도 적극 개방하고 있다. 국내에도 상암 월드컵경기장 등 체육 시설들이 공연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상암 경기장은 2012년 싸이, 2016년 빅뱅 이후 대중가수에게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다. 지난해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의 폐막식과 K-팝 콘서트가 열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경기장 대관이 쉽지 않은 것은 ‘잔디 훼손’ 문제 때문이다. 상암월드컵경기장은 K리그 FC서울의 홈구장이자 국가대표 대항전이 열리는 대표 구장이다. ‘잔디’ 문제는 스포츠 업계는 물론 팬덤 사이에서도 민감한 사안이다. 축구장에서 대중음악 공연을 열게 될 경우 스포츠 팬과 음악 팬이 맞붙으며 갈등 조짐까지 보인다. 해외와 달리 스포츠 구장에선 스포츠만 해야 한다는 인식이 큰 탓이다.

김은성 대표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은 소음 민원이 엄청나고 잔디 보호를 이유로 대관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커져가는 대중음악 시장...공연장 개발 필수=전 세계 대중음악 공연 시장은 해마다 규모가 커지고 있다. 2023음악산업백서 플스타의 발표에 따르면, 라이브 음악 티켓 판매액은 무려 30조3000억원에 달한다. 전년도 글로벌 상위 100개 투어의 판매액 및 판매량은 각각 62억8000만달러(한화 8조원), 5900만장이다. 전 세계 2위 음악 시장인 일본은 6조~6조5000억원, 7위인 한국은 지난해 공연 시장 전체 티켓 판매액이 1조원(공연예술통합전산망)을 넘어섰다.

공연 시장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코리아 패싱’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현대 음악 산업 자체’(블룸버그)다. 스위프트가 공연을 여는 곳마다 교통, 항공, 숙박, 식음료의 판매가 급증하다 보니 ‘스위프트노믹스’(스위프트와 이코노믹스(경제학)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실제로 스위프트가 지난해 11월 한 달간 개최한 공연으로 올린 매출은 10억4000만달러(1조3000억원). 미국 대중음악 콘서트 투어 사상 매출 10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스위프트가 처음이다.

국내에선 K-팝 가수들의 스타성에도 ‘스위프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만큼 공연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연장 개발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안이 되면서 전문 공연장이 속속 건설되고 있기는 하다. 지난해 문을 연 모히건 인스파이어 아레나를 시작으로 카카오의 서울 도봉구 창동 서울 아레나, CJ ENM의 CJ 라이브 시티, 경기 하남시가 국내 유치를 추진 중인 미국 스피어 등 향후 전국에 6~7개의 공연장이 추가로 생길 예정이다. 다만 서울 아레나는 지난해 11월 착공, 2027년 하반기 완공이 목표로 시간이 더 필요하다. CJ 라이브 시티는 공정률 17%에서 공사가 멈췄다.

최윤순 이사는 “공연장 개발은 필수이나, 완공까지 걸리는 시간과 3000억~4000억원에 달하는 비용 탓에 한계가 있다”며 “서울 인근 경기장과 공원에서 대관 조건을 완화하는 한편 인허가 협조,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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