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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의 음악 여정’ 김범수 “바보 같아도 노래만 하는 사람 되고파” [인터뷰]
라이프| 2024-02-26 14:32
가수 김범수가 10년 만에 정규 9집 앨범을 냈다. [영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곱게 기른 머리카락 만큼이나 말소리도 성격도 차분해졌다. 어깨선을 훌쩍 넘도록 기르자 “주위에서 박해가 심해졌다”면서 “여성들의 고충을 체험하고 있다”는 보컬신(神). 보컬 4대천황 ‘김나박이(김범수·나얼·박효신·이수)’ 중에서도 제일 앞자리에 선 가수 김범수(45)가 돌아왔다. 그가 정규 앨범을 내는 것은 무려 10년 만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범수는 “나의 음악을 성장시키고 깊이 있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만에 들고 온 앨범엔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범수의 이야기가 빼곡하게 담겨있다. 1999년 ‘약속’으로 데뷔한 그는 독보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며 ‘하루’, ‘보고싶다’와 같은 히트곡을 냈다. 2011년엔 ‘나는 가수다’(MBC)에 출연하며 호불호 없이 대중의 사랑을 받은 최정상 보컬리스트로 자리했다.

25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지난 음악 여정이 뗏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편안한 크루즈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참 치열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이슈는 없었지만, 제 내면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기는 갈등이 참 많았어요.”

5년 전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20주년 콘서트 첫 공연 당시 급성 후두염으로 공연을 중단했다. 먼 길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환불과 사과로 마무리했지만, 그날의 일은 오래도록 트라우마로 남아 ‘무대 공포증’이 생겼다.

김범수는 “(그날 이후로) 무대에서 다리가 떨리고,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떨어서 노래할 때 피치(Pitch·음의 높낮이)가 왔다 갔다 했다”고 떠올렸다.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던 노래로 좌절하면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간이 길었어요.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을 맞았고, 원치 않게 찾아온 일상의 변화를 마주하게 되더라고요. 막연함, 막막함, 공허함의 시간을 보내다 결국 내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스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가수 김범수가 10년 만에 정규 9집 앨범을 냈다. [영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번 앨범은 그의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웠던 음악가들과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그는 “가사가 잘 들리고 서정적이며 시적인 노래들을 만들어온 싱어송라이터들”이라고 설명한다. 뮤지션 최유리, 선우정아, 김제형, 이상훈, 임헌일, 작곡가 피노 미노츠,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 등이다. 동명의 타이틀곡 ‘여행’을 비롯해 나태주의 시에 노래를 붙인 ‘너를 두고’, 배우 현빈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그대의 세계’까지 총 11곡이 앨범에 담겼다.

앨범엔 김범수의 상징과도 같은 시원한 고음은 없다. 서정적인 멜로디 위로 담담히 읊조리며 소리의 힘을 들려준다. 그는 “보통 저를 음압이 센 가수로 평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노래를 하는 것이 가사 전달엔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며 “테크닉을 내려놔야 담백하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 고음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아니에요. 보컬리스트라면 언제든지 변화무쌍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제 창법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은 거예요.”

가수 김범수가 10년 만에 정규 9집 앨범을 냈다. [영엔터테인먼트 제공]

익숙한 창법에서 벗어나다 보니 어려운 점도 당연히 있었다. 김범수는 “필요 이상의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초지일관 담백한 결로 가는 것이 큰 고민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김나박이’ 중 하나로 불리는 자신의 별칭에 대해 “‘김나박이’라는 명칭이 붙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고유명사가 돼 감사하다”면서도 “어느 순간 그 수식어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지만 “이것조차 (내가) 뛰어넘어야 할 허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나박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가면 항상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무대를 망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좋은 결과’가 아닌 ‘어떤 좋은 노래를 할 것이냐’에 더 신경쓰면서 불렀어요.”

새 앨범 ‘여행’의 작업은 그에게 ‘치유의 시간’이었다. 타이틀곡 ‘여행’을 통해 김범수는 자신의 길을 떠올렸다. 그는 “여행은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가도 변수가 많다. 나의 음악 인생도 그랬다”며 “계획대로 된 것보다는 되지 않은 것이 많고, 실수하고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아픈 기억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여기까지 왔으니, 툴툴 털고 가보자는 이야기를 해봤다”고 말했다.

“이 시대에 맞지 않더라도, 예전 선배들처럼 전 바보같이 노래만 하려고 해요. 꾸준히 노래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요. 이 앨범이 결핍이나 공허함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들꽃처럼 따뜻하게 안겼으면 좋겠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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