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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이겨낸 두아이 기특”… ‘2+1’ 임신부의 당당 육아기[0.7의 경고]
뉴스종합| 2024-05-23 15:00

오는 7월 셋째 출산을 앞두고 있는 김도연(가명)씨는 ‘애국자 칭찬’이 힘들다고 했다. 나라를 위해 아이를 낳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관점에서다. 육아 휴직 후 복직 했을 때 누군가가 던진 ‘잘 쉬었다 왔느냐’는 환영 멘트는 비수였다. 결국 김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김도연 씨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하루에 ‘애국자네. 애국자야’ 소리. 10번은 들어요.”

오는 7월 셋째 출산을 예정하고 있는 만삭의 김도연씨(가명)는 최근 4세, 2세 아이 둘 손을 잡고 동네 마트 가는 것이 싫어졌다. 길거리를 오며가며 듣는 주변인들의 ‘애국자 칭찬’이 너무 과도해서다. 한번 두번은 칭찬이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애국자 칭찬’은 좋아하던 마트 쇼핑의 또다른 부담이 됐다. 김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4세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2세 유아의 엄마다. 아이들이 하원하는 오후 4시께에 만삭으로 아이 둘 손을 잡고 외출하면 주변에서 ‘애국자’ 칭찬을 열번은 넘게 듣는다고 했다. 이는 김씨 하루 일과 가운데 최대 고역이다.

김씨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칭찬해주시는 분들, 주로 어르신들의 마음도 이해해요. 하루가 멀다하고 ‘저출생’ 문제가 TV와 신문에 보도되는데 ‘투 플러스 원’ 자녀 계획을 한 나를 보면 ‘애국’이란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죠”라면서도 “그러나 같은 소리를 하루 10번씩 들으면 힘이 들어요. 두 아이 손을 잡고 마트 다녀오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김씨에겐 또다른 난관도 있다. 아이들 체육활동을 위해 매일 하원 후 동네 놀이터에서 한시간씩을 보내는데 그곳에서도 주민분들의 ‘애국 칭찬’은 반복된다고 했다.

김씨는 “세상에 ‘애국’을 하려고 아이를 낳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첫째를 낳아보니 너무 예뻤고, 둘째를 낳아보니 더 예뻐서 셋째까지 계획한 것인데 다들 ‘애국’으로만 바라보네요”라며 “진짜 출생율을 높이려면 ‘나라를 위해 아이를 낳는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애국 프레임’부터 걷어 내야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처절한 개인주의 시대에 그냥 남을 돕는다는 ‘이타(利他)’도 아닌, 눈에도 안보이는 ‘국가’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 아닐까요”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국가적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부처 신설을 위한 입법에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촉구했다. 사진은 10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연합]
‘2020 원더키디’ 대신 ‘코로나 키드’

김씨의 첫 아이는 2020년생, 둘째는 2021년 생이다. “어렸을 때 ‘2020 원더키디’를 보며 자랐어요. 멸망한 지구에서 어린아이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악당들과 싸우는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2020년에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이 확정된 후 그 만화가 떠올랐지요. 그러나 현실은 ‘코로나 키드’였어요. 코로나 사태가 전지구를 강타했던 2020년에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김씨는 “아이들은 어른의 입모양을 따라하면서 말을 배우는데, 다들 마스크를 써서 이 때 태어난 아이들은 언어발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올해 4살인 아이는 요새는 말이 너무 많아 문제”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코로나 창궐 탓에 첫째 출산도 순탄치 않았다. 김씨는 “코로나 때문에 전국이 떠들썩하던 2020년 4월에 첫 아이가 나왔다. 당시 코로나 음성이 확인이 돼야 입원이 가능했는데, 사태 초기였던 당시엔 코로나 감염 여부 테스트 결과에 반나절이 소요됐다”며 “결국 코로나 사태 때문에 아이의 생일이 하루 늦어졌다”고 말했다. 둘째 출생 때 역시 코로나 사태가 진정이 안돼 고역을 겪었다. 김씨는 “2021년 때 역시 코로나가 진행중이었다. 모든 병원 이용에 코로나 감염 여부를 체크해야 했다”며 “아이를 낳고 면회도 안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코로나 시대’를 정면으로 맞은 두 아이는 다행히 잘 크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20년 2월에 대구 ‘신천지 사태’가 터졌어요. 마스크가 부족해서 나라가 떠내려갈 듯 시끄러웠던 때”라며 “그런 일이 있을 후 두달만에 첫 애가 태어난 셈”이라고 했다. 출산을 전후해 유독 병원을 다닐 일이 많았던 것도 이제는 추억이 됐다. 김씨는 “둘째 아이가 100일도 안돼 고열이 발생했었는데 중병이라고 하더라고요. 피를 뽑아야 진단이 가능했는데, 혈관을 못 찾아 10여차례 주사바늘을 찔러댈 때마다 자지러지던 아이 생각을 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했다.

만삭 임신부 자료 사진
‘두아이’에 맞벌이 양립 불가… “다들 그렇듯 그만 둘 밖에”

현재는 전업주부인 김씨도 한 때는 남들이 부러워하던 직장을 다녔었다. 그러나 ‘코로나 종료’와 복직, 어린이집 전원 등 이슈들이 맞물리면서 결국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2020년 중반 복직하게 됐는데 당시가 ‘코로나 종료’로 다들 마스크를 벗을 때였어요”라며 “사흘이 멀다하고 두 아이가 40도에 이르는 고열이 반복되는 상황이라 결국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에 처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출산 휴직’에 대해 ‘놀다 왔다’는 직장 내 인식 역시 직장을 그만두게 원인이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출산 휴직을 했다가 복직했더니 이전에 없던 새로운 부서에서 근무를 하라고 인사가 났어요. 신생 부서여서 모든 일처리 업무를 처음부터 다시 다 세팅을 해야됐어요. 팀장도 없는 신생 조직에 저를 배치한 것이었어요”라며 “해당 직장을 10년 가까이 다녔으나, 업무가 새롭게 떨어지니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 하는 느낌으로 일을했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아침에 아이 두명을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까지 1시간여를 차를 몰고 가야하는데 매일 아침이 전쟁이었습니다. 직장엔 또 직장대로 눈치가 보였고 일은 일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 상태였어요”라며 “하루 일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집에 와서까지 일을 해야하는데 회사에선 ‘육아기 단축근무’를 쓰니 월급도 깎더라구요. 해야 하는 일은 똑같은데 월급만 깎이는 상황이 되자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힘들게 자리잡았던 일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 계기를 꼽으면 ‘직장 내 인식’이었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맞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던 시기 가장 부러웠던 건 등원이든 하원이든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조부모 댁이 집 근처에 있는 가정”이었다면서 “아이들의 친가도 외가도 모두 지방이어서 제가 아니면 아이를 돌볼 수가 없었어요. ‘등원도우미’도 써봤지만 아이와 트러블이 생겨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둘을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저나 남편 두명 중 한명인 결국 제가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돌아봤다.

“이쁠 때 금방 지나간다” 주변 조언 실감… ‘내친 김에 셋’

김씨는 결혼 전에는 아이를 셋을 낳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다만 대학 때 만난 친한 친구들 가운데 4명이 자녀 셋을 둔 친구들이었어요. 아이셋을 갖겠다고 마음 먹는데 주변 분위기도 영향을 줬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친구들 영향”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에는 첫째 아이가 크는 모습을 보면서 제일 이쁠 때는 ‘3살 갓 말하기 시작할 때’라고들 하던데 맞는 것 같아요”라며 “제일 이쁠 때가 금방 지나간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다시 아이가 생기면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 아이 하나 더 갖겠다고 생각했습니다”고 했다.

‘인간의 가치’는 ‘출생아 수’에 반비례 한다는 남편의 주장도 김씨가 아이를 세명 가지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김씨는 남편이 오늘 한국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가 ‘시급 1만원’에 불과한 이유가 ‘공급이 넘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김씨의 남편은 또 유럽 얘기를 하면서 농노들의 몸값이 수직상승하며 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된 것도 사람들이 모두 죽어 나간 흑사병 이후였다고 주장한다면서, 낮은 출생율은 거꾸로 아이 낳을 최적기라고 한다고 했다. 김씨는 “미래의 일을 어찌 장담하겠냐만, 어느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봐요”라고 했다. 실제로 김씨의 첫 아이가 태어난 2020년은 한반도에서 인류가 살기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인구 감소가 시작된 해기도 하다.

김씨는 최근 눈에 띈 광고 얘기도 꺼냈다. 김씨가 꼽은 광고는 공익광고협의회가 만든 ‘아이러니’ 편이다. 해당 광고는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상황과 아이를 키우면서 보람찬 상황을 교차 편집, 아이 때문에 힘을 내고, 아이 때문에 살 맛이 나는 현대인들의 육아전쟁을 다뤘다. 김씨는 “너무 공감가는 광고였어요. 밥 안먹는 아이, 떼 쓰는 아이 때문에 화를 내다가도 잠깐 방긋 웃는 모습, 귀여운 행동 하나에 행복이 밀려오는 장면을 잘 연출해 넣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금 인류가 80억명이 넘는데, 육아 고통이 육아 행복보다 컸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지구에 살지 못했겠죠”라고 말했다.

‘그것 준다고 낳겠어’ 냉소는 ‘푸념’… “받아보세요. 생각 달라져요”

김씨는 자녀 양육·보육비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는 각종 지원 정책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출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그것 준다고 낳겠냐’는 냉소는 아이를 낳을 생각 없는 이들이 내뱉는 ‘푸념’이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다만 대부분의 지원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 간접지원 되는 방식이기에 실제로 부모가 받게 되는 액수는 크지 않아 지원 실감을 기대킨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첫아이를 낳은 이후 최근까지 받은 지원금을 모두 합했더니 4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중앙정부가 지원한 아동수당 등 양육비 총액이 3700만원 가량되고,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대략 200만원 안팎이었다고 계산했다. 김씨는 “지원금 대부분은 아이의 보육·교육비용으로 지급이 된다. 중앙정부 지원이 비교적 크고 지자체는 아직은 액수는 크지 않다”면서 ”그래도 지원을 해주지 않을 때에 비해선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서울시가 시행중인 ‘난임비 전액지원’ 정책에 대해 만족도가 컸다고 했다. 서울시는 현재 소득 및 자산 규모와 관계없이 아이를 갖는 데 어려움이 있는 예비부모들을 위해 모든 난임부부에게 시술비를 지원한다. 시술 종류와 상관없이 총 22회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난임 시술별 횟수제한도 폐지했다. 김씨는 “소득 제한과 횟수 제한 요건을 삭제해 아이를 가지려하는 모든 사람을 지원 대상으로 넓힌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원이 적다, 부족하다. 그것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겠느냐는 반응들이 많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고 지원을 받아보면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도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변하기 힘든 ‘임신·육아’에 대한 사회 인식”이라며 “출산·육아 휴직을 다녀오면 ‘잘 쉬었다 왔느냐’는 회사 내 누군가의 한마디가 가장 큰 상처가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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