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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칼럼] 한국민 불굴정신, 3.1운동-4.19혁명-5.18항쟁
뉴스종합| 2024-06-05 11:02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읽어보면 4.19와 동학농민혁명을 중요한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다는 정서가 느껴진다. “껍데기는 가라. 四月(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동학년) 곰나루터,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그는 장편 서사시 ‘錦江(금강)’에서도 4.19와 3.1운동과 동학 때 “잠깐 빛났지만 영원의 얼굴을 보았다”고 노래했다. 시인의 가슴에 남은 그 영원의 얼굴이란 한국민의 불굴의 정신인 것으로 읽힌다.

신동엽 시를 음미하면서 한국민의 불굴정신에 착안하여 고도 경제성장을 분석한 연구서가 떠오른다. 미국의 동아시아 연구 권위자인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교수가 저술한 ‘네 마리의 작은 용 : 동아시아에서 산업화의 확산’이다. 1990년대 학계와 지식인층에 풍미했던 책이다. 나는 1995~1996년 하버드대 니만펠로우 언론연구과정을 이수하던 때 보걸 교수의 자택에 찾아가 졸저 ‘군 1 : 정치장교와 폭탄주’를 증정했다. 군사독재 정권의 실체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답례로 자신의 저서 3권에 영어와 한자를 섞어서 사인해 나한테 주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연구 권위자인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교수가 저술한 ‘네 마리의 작은 용 : 동아시아에서 산업화의 확산’ 표지.[김재홍 서울 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제공]
1995년 10월께 필자를 만난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네 마리의 작은 용 : 동아시아에서 산업화의 확산’에 한 사인 [김재홍 서울 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제공]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교수가 필자에게 사인해 제공한 책 중 한 권인 'One Step Ahead in China(원 스텝 어헤드 인 차이나)'의 표지. 중국 문화대혁명 이후 변화에 관한 매우 중요한 역사서이다.[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제공]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교수가 필자에게 자신의 저서인 'One Step Ahead in China(원 스텝 어헤드 인 차이나)'을 선물하며 한 사인.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제공]

‘네 마리의 작은 용’은 대만, 한국, 홍콩, 싱가포르가 공통적으로 일본 식민지배 시기 건설된 인프라 덕택으로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경제성장 배경에 대해선 한국민의 투지를 강조해 실증적 분석력을 높이 평가할 만했다. “일본인들은 고도 경제성장기에 주당 근로시간이 50시간을 넘지 않았으나 한국민의 경우 이것이 60시간에 달한다”고 놀라워했다. 한국민은 1980년대 말에도 주당 55시간으로 다른 개발도상국들보다 평균 10시간 이상 더 일했다고 주목했다. 이같은 한국민의 투지는 혹독한 열사의 땅 중동 건설현장에서도 장시간 노동을 견디어내며 다른 경쟁자들을 따돌렸다는 것이다.

보걸 교수는 이같은 한국민의 불굴의 정신에 대해 “일본 식민주의의 억압과 참혹한 6.25전쟁를 겪은 결과”라고 평가하고 “3.1운동과 4.19혁명의 경험이 그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일본 식민지배 인프라나 군사정권의 개발독재 덕택이라고 주장하는 국내 일부 인사들에게 ‘확대 복사’라도 해서 보내고 싶은 대목이다. 더구나 군사정권 종식과 민주화 이후 K팝, 영화, 드라마, 게임 등 한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것은 안팎의 저항 대상을 극복한 불굴정신이 창의력으로 재탄생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전문은 역사적 사건 두 가지를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3.1운동과 4.19혁명이다. 사건사로 보면 종료됐지만 그 정신사가 살아 있는 것이다. 현실과 정신은 그 지배 종속 관계에 논쟁이 게속돼 왔지만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5.18정신을 헌법전문에 명기하라는 목소리가 올해 5월 유난히 크게 메아리쳤다. 5.18민주항쟁을 헌법전문에 명기하면 불굴정신의 역사가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3.1운동과 4.19혁명과 5.18민주항쟁은 불의의 권력으로 한국민의 불굴정신을 결코 억누를 수 없으며 묵과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다. 미래 세대에게 전수해야 할 소중한 헌법 정신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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