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초엔저에 亞 통화가치 최저...日, 美국채 매각시 금융 불안↑
뉴스종합| 2024-06-28 11:16
이례적인 엔화 가치 하락이 지속되면서 엔/달러 환율이 지난 26일 오후 외환시장에서 한때 달러당 160.39엔까지 올랐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일본 거품(버블) 경제 시기인 1986년 12월 이후 약 3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넘어선 것은 올해 4월 29일 이후 2개월 만이다. 사진은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의 모습. [연합]

일본 엔화 가치가 달러당 160엔대로 37년여만에 최저 수준으로 고꾸라진 가운데 강 달러에 밀린 아시아 통화 가치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미국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성장을 이어가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일본 금융당국이 미국 국채를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미 국채 금리까지 뛰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 아시아 달러 인덱스는 27일(현지시간) 89.98로, 2022년 11월 3일(89.09)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아시아 달러 인덱스는 한국 원화, 중국 위안화, 싱가포르 달러화, 인도 루피화, 대만 달러화, 태국 밧화 등 9개 아시아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준다.

블룸버그는 “필리핀 페소화와 인도 루피화가 최저치 수준을 보이고 한국 원화도 달러당 1400원 부근까지 오르면서 지수가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105.91를 나타내 전날 대비 소폭 감소했다. 전날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초 이후 처음으로 106선을 넘었다.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의 통화 가치도 급락 추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멕시코 페소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9.0% 떨어지면서 신흥시장에서 가장 약한 흐름을 보였고, 콜롬비아(-6.3%), 브라질(-6.3%), 칠레(-5.3%)가 바로 뒤를 이었다.

슈퍼엔저에 국내외 투자자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엔화 급락이 미국 국채금리 상승(채권값 하락)을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일본이 환율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매도할 수 있다는 우려다. 4월 말 기준 1조1500억달러(약 1600조원)를 보유해 2위인 중국(7710억달러)을 약 4000억달러 웃돈다.

WSJ에 따르면 글로벌 국채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26일 연 4.334%로 전 거래일 대비 0.082%포인트 올랐다. CNBC는 “일본이 외환시장 개입을 위해 미 국채를 매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올라갔다”고 보도했다. 다만 27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287%로 다소 하락했다.

일본은행이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고조되고 있다. 일본은행은 올 3월 단기 기준금리를 연 -0.1%에서 연 0~0.1%로 인상하며 2016년 1월 이후 유지해 온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폐기했다. 하지만 연 5.25~5.5%인 미국 기준금리와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일본은행의 금리 조절 폭은 0.1%포인트 정도로 미국(0.25%포인트)보다 적어 큰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에 엔저를 멈추기 위해선 일본의 금리인상보다 미국의 금리인하가 더 필요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다는 미국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준금리 인하 시기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도 금리 인하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매파’ 인사로 꼽히는 미셸 보먼 연준 이사는 최근 “우리는 통화정책 결정이 어떻게 진화할지 고려할 때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면서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멈추거나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반등한다면 기준금리를 인상할 의향이 여전히 있다”고 발언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엔화 약세와 관련해 “연준 인사의 말 한마디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대규모 시장 개입 효과가 두 달 만에 사라진 것”이라며 일본 당국이 환율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한편 연일 엔저가 이어지면서 일본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떨어지고 있다.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최근 일본 회전초밥 가게에서 연어가 저품질 생선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엔저 가속으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서 노르웨이산 연어가 3년 만에 40% 올랐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소고기 덮밥(규동)도 가격 압박이 심해졌다. 주요 재료인 미국산 소고기가 1년 사이 약 30% 상승했다. 가격이 높아지자 일본 내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이 올해 1월~4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소지쓰 식료축산사업본부의 코아나 유타카 본부장은 닛케이에 “다른 나라가 (물건을) 가져가 버린다”고 하소연했다.

국제결제은행(BIS)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2020년=100)은 지난달 기준 68.65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 경제가 호황이었던 1995년 4월 정점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실질실효환율은 교역국과의 물가 변동을 반영한 환율로 한 나라의 통화가 상대국 화폐에 비해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지녔는지를 나타낸다. 김영철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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