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한계 없는 우정’ 과시한 중러, 중앙아시아선 영향력 경쟁
뉴스종합| 2024-07-04 10:51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 중 양자회담을 갖고있다. [EPA]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지정학적 대결 상황에서 손을 잡고 ‘한계 없는 우정’을 과시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중국이 경제 개발 원조를 통해 공세적으로 접근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안보와 테러 억제 등 정치적 의제에서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3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정치·경제·안보 협의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열렸다. 3일 양자회담 등 부대행사를 시작으로 본행사가 열리는 4일까지 이틀 일정으로 진행된다.

특히 3일에는 이번 회의의 하이라이트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이 이뤄졌다. 양국 정상은 지난 5월 16일 베이징 정상회담에 이어 1개월 반 만에 만났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국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평가하면서 “SCO가 공정한 다극 세계 질서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양국관계가 높은 수준에 있다”고 화답했다. 이어 “요동치는 국제 상황과 외부 환경에 직면해 양측은 다가올 세대들을 위해 우정에 대한 당초 열망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이 돈독한 중러 관계를 강조했지만 이번 행사가 열리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두고 보면 양국간 영향력 경쟁이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입장에서 중앙아시아는 소련 시기부터 전통적인 앞마당으로 여겨지며 인도 등 남아시아 시장으로 접근하는 통로다. 반면 중국 입장에서도 이곳은 중국을 유라시아 대륙의 나머지 지역을 다양한 육로와 해로로 연결하는 시진핑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핵심 지역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전통적인 영향력을 잠시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전쟁 수행 능력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묵인할 수 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중국과 중앙아시아 간 교역액은 890억 달러로 증가했다. 특히 중앙아시아 5개국 중 가장 인구가 많고 산업화가 진전된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국은 지난해 러시아를 제치고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섰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러시아의 라다 자동차를 중국산 자동차들이 밀어내고 있다. 지난해 우즈바케스탄이 수입한 7만3000대의 차량 중 약 80%가 중국에서 수입됐다.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고향인 지작스에 세워진 새 공장에서 연간 5만대의 차량 생산을 시작했다.

중국은 이 지역 인프라 건설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의 동부와 나머지 지역을 연결하는 최초의 직통 철도 노선 중 12마일 길이의 새로운 터널을 건설했고 타지키스탄에서는 남북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지어 이동 시간을 8시간 단축했다.

나아가 중국, 키르키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3국을 연결하는 새로운 철도 노선 건설을 위한 합의에 서명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도 중국으로부터 유럽으로 이동하는 거리가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부문에서도 중국은 러시아에 도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일련의 정전 사태를 겪으면서 2023년 러시아산 가스를 대량으로 구매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우려에 2030년까지 전력 생산의 최소 4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기업 롱기(LONGi)와 골드윈드(Goldwind) 등이 태양광 모듈과 풍력 터빈을 대거 공급하고 있다.

테무르 우마로프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 연구원은 “중국은 중앙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반면 러시아는 전략적 목표는 등한시 하는 근시안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중앙아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여전히 중요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앙아시아 중개업자들을 통해 수십억 달러 상당의 서방 상품을 확보해 왔다.

또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을 재건하고 전쟁 중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이주민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늘면서 2022년 145만명이었던 러시아 내 우즈베키스탄 이주민이 1년 새 130만명으로 줄어든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 방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타지키스탄 출신이 대거 포함된 IS-호라산이 모스크바 콘서트홀 테러사건을 겪은 만큼 이슬람 국가가 대부분인 중앙아시아의 정부들과 테러 억제를 위한 협력을 이어갈 필요성도 크다.

뉴욕타임스(NYT)는 “크렘린 궁은 아스타나 정상회의와 같은 상징적인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포함해 국익을 지키기 위해 이전 위성 국가에 대한 정치적 지렛대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 참석한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등 아시아 국가 정상들과 연쇄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why37@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