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시론]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北 도발 억제 위한 조치
뉴스종합| 2024-07-04 11:16

프로이센의 위대한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 말미에 이렇게 결론 맺었다.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가능한 것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바보다” 그의 현실주의적 안보사상은 냉엄한 힘의 국제질서가 지배하던 시기 독일통일(1871년)의 자양분이 됐으며 전후 독일의 실용주의적 세계관으로 연결됐다.

현실주의 안보전략은 한반도 안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은 전술핵무기와 다양한 미사일을 전력화해 우리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협상용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며 기술적으로도 군사적 사용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북한의 핵은 실전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정은은 아예 핵무기를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을 준비하라며 헌법조항 반영을 지시했다. 노골적인 무력통일 선언이자 협박이다.

최근에는 오물풍선을 날려 보내 우리 사회와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저급한 방식의 도발이다. 쏟아 붓는 말도 천박하기 짝이 없다. ‘괴풍선’에 생물무기도 탑재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정말 염려스러운 대목은 북한이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도발한다는데 있다. 북한은 늘 계산과 기대를 넘어서는 비대칭적 방식으로 싸움을 걸어왔다. 도발 수위를 조절해가며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사회를 교란하면서 조롱까지 한다. 마치 한국 사회를 훤히 내려다보듯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했다는 의미다.

이렇게 작정하고 덤비는 상대를 억제하는 최상의 방법은 거부에 있다. 상대가 아예 나쁜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우리 전략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도발 기회가 허용되지 않을 때에는 하고 싶어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전략학에서는 공격 의지를 가진 측이 기다리는 기간을 ‘군사적 정지’라 부르고, 그 지속시간만큼 평화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지극히 현실주의적 해석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자위권을 구속하는 일체의 제약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행동의 자유를 확보할 때 비로소 위협을 거부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 구비된다.

그런 점에서 9·19 군사합의 전부 효력정지는 자위권 행사 보장과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지금 북한은 2018년 군사합의 체결 당시와 너무도 다르다. 전술핵무기는 실전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고, 김정은은 연일 ‘2개 민족’과 ‘영토 평정’을 부르짖는다. 핵 사용을 위한 포석으로도 보인다. 군사분계선(MDL)을 국경선이라 부르며 지뢰 매설과 방벽 보강을 한다. 북방한계선(NLL)은 ‘불법 무법’이라 선포하고 군사도발을 예고한다. 무엇보다 9·19 군사합의 이후에도 진정성을 보인 적이 없다. 군사합의를 통해 북한의 위협이 실질적으로 감소됐는지도 의문이다.

평화는 소중하다. 하지만 국민의 존엄한 생명보다 더 중요한 국가이익은 없다. 지금처럼 아슬아슬한 평화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무엇이 국민 보호를 위해 더 현실적인지 따져봐야 한다.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는 “환상을 가진 자는 의사에게 가야 한다”며 이상주의적 편향성에 일침을 가했다. 그의 대담한 실용주의적 접근은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적 인식이 묻어난다. 북한의 위협이 목전에 있는 현 상황에서 적어도 불가능한 것은 잠시 접어 두고 가능한 것부터 확실히 챙기는 지혜가 요구된다.

김태현 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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