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게임중독, 학폭당한 약골…지금은 체육관장” 주지떼로 안태영[우리사회 레버넌트]
뉴스종합| 2024-07-11 10:01
[우리사회 레버넌트]

‘바닥’에서 ‘반전’은 시작됩니다. 고비에서 발견한 깨달음, 끝이라 생각했을 때 찾아온 기회. 삶의 바닥을 전환점 삼아 멋진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 레버넌트(revenant·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반전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한 안태영 관장이 인천 연수구 ‘오리진주짓수’ 도장에서 샌드백을 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인천=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 20년도 더 넘은 겨울, 중학교 졸업식을 치른 안태영 소년. 부모님 몰래 방바닥에서 팔굽혀펴기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한 번도 채 성공하기 어렵다. ‘약골’이었던 안씨 인생의 첫 운동이었다. 그때 안씨에겐 점심시간에 축구라도 함께 할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친구는커녕, 쉬는 시간이면 안씨를 학교 뒤편으로 불러 얼굴에 멍이 들 정도로 때리고 발로 차는 이들뿐이었다.

#. 격투기 선수가 되기 위해 아마추어 경기에 처음 출전한 고등학생 안군. 상대 선수의 발차기를 우선 손으로 막아낸 뒤, 겁에 질려 링에 쓰러졌다. 그리고 기절한 척을 했다. 눈을 감고 심판이 경기를 끝내주기를 기다렸다. 안씨는 자신이 운동 선수로서 체격도 자질도 전혀 타고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37세 안씨는 이렇듯 학창 시절 또래의 폭력에 시달리고, 경기에선 겁에 질려 쓰러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종합격투기(MMA) 프로선수 출신의 주짓수 체육관 관장이다. 지독했던 학교폭력으로부터 벗어나보고자 안씨가 팔굽혀펴기를 시도한 날은 주지떼로(주짓수 선수)로서 20년 주짓수 인생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두려웠던 안씨는 그렇게 운동과 만났다.

현재 안씨는 학생과 성인을 포함, 현재 100여명의 관원을 가르치고 있다. “주짓수는 사람을 때리지 않는 운동이라서 좋다”는 안씨에게 주짓수란 상처를 극복하도록 도와준 수단이다.

“어떻게 해야 학교 안 갈까” 이유 없던 학교폭력
도복 양깃을 잡아펴며 포즈를 취한 안태영 관장. 인천=임세준 기자

안씨의 학창 시절은 쉽지 않았다. 남들보다 작은 체격에 또래 무리에서 늘 소외됐고, 친구 대신 게임중독에 빠져 지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15세엔 학교폭력이라는 시련까지 겹쳤다. “게임 아이템을 달라”는 동급생의 협박을 거절한 것이 폭력 피해의 시작이었다. 이후론 쉬는 시간이며 점심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불려가 수시로 온몸을 맞았다. 안씨는 “사실 맞아서 아팠던 것 자체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에 친구 없이 혼자였던 수치심이나 외로움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놨다.

도저히 학교에 가고 싶지 않던 어느 아침엔 창가에 섰다. 안씨는 “약간만 다치면 학교를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 집이 있던 14층 창가에 섰는데 너무 무서워서 10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5층으로, 결국 1층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며 “부모님이 출근하실 때까지 집 근처에서 기다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학교를 나가지 않았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렇게 안씨가 무단 결석을 했지만 당시 담임 교사에게도 뚜렷한 해결책은 없었다. 안씨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궁여지책으로 안씨 부모가 친척을 동원해 가해자들에 경고를 하기도 했는데,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안씨는 “그날 이후 폭력은 없어졌지만, 오히려 공공연하게 왕따가 되어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숨통 찾으려” 시작한 격투기…“재능 없나” 방황도
안태영 관장. 인천=임세준 기자

학교폭력으로 뒤덮인 중학생 시절을 어렵사리 지난 안씨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생각을 굳힌다. 집앞 고등학교가 아닌 1시간 떨어진 학교에 진학해, 학교 근처의 복싱 체육관이 시작이었다. 안씨에겐 아직도 고등학교 입학 첫날인 3월 2일, 하교 후 바로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안씨는 “긴장도 됐지만 중학교 때의 기억만으로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숨통을 찾아 들어가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안씨는 이후 모든 운동을 섭렵했다. 복싱부터 공수도, 특공무술, 합기도, 격투기까지.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격투기 선수라는 꿈이 생겼다. 안씨는 “운동에 몰입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선수들도 동경하게 됐다”고 했다. 고등학교에선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막상 선수 데뷔를 하기 위해 몇 차례 아마추어 경기에 나가보며 안씨는 자신이 ‘격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번째 출전한 경기에선 상대방의 공격을 맞기도 전에 기절한 척 링에서 쓰러졌다. 안씨는 “맞기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때리고 싶지도 않다는 걸 깨달았다”며 “상대방을 가격해야 하는 격투기나 무술 대회에 나가서는 주먹을 한 번도 뻗어보지 못하고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때리지 않는 스포츠” 주짓수 빠져 30대 프로선수 데뷔
안태영 관장. 인천=임세준 기자

꿈과 재능 사이에서 방황하던 안씨가 선택한 분야가 ‘주짓수’였다. 무술의 일종인 주짓수는 상대를 때리지 않고 제압하는 데 초점을 둔다. 안씨는 “주짓수는 타격 없이 조르기나 꺾기 등의 기술로 상대방의 항복을 받아내는 운동”이라며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로 다가오는데, 주짓수는 상대방을 때리지 않으면서도 교류하면서 승리를 할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주짓수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안씨는 전국 단위 주짓수 대회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1등을 해보게 된다. 격투기와 주짓수를 병행해 안씨는 끝내 31세 때인 종합격투기 프로선수 데뷔에 성공했다. 안씨는 “작고 약했던 사람도 뭔가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대회에서 처음 우승하며 하게 됐다”며 “격투기에서도 주로 주짓수 기술을 사용해서 선수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후 안씨는 선수 생활을 이어오며 4년 전인 2018년, 인천에 체육관을 차렸다. 가끔은 안씨의 과거를 꼭 닮은 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오기도 한다. 안씨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관원으로, 학창 시절의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찾아온 20대 직장인 청년을 꼽았다.

안씨는 “폭력을 당한 지 1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큰 소리가 나면 공황 상태에 빠질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한 분이었다”며 “나도 학교폭력 피해가 있었지만 극복하지 않았느냐,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응원을 했는데 사실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안씨는 “조금씩 그분이 즐겁게 운동을 나오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고 했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망설이던 안씨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은 너무 뻔하고 형식적이라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고, 솔직히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며 “상처를 극복하는 경험을 각자 해보면 좋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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