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이게 K-푸드라고?” 정작 한국인은 몰랐다…외국인들 홀딱 반한 서울 음식 [퇴근 후 부엌]
라이프| 2024-07-13 09:51
2020년 스티븐 비건 미국 전 국무부 부장관이 서울 광화문의 닭한마리 식당을 방문한 모습. [연합]
퇴근 후 부엌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가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직접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 원이 훌쩍 넘는 식비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인문학 이야기도 한술 떠 드립니다.

한국인들의 닭고기 사랑은 남다릅니다. 국민 절반은 닭고기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을 정도죠. 지난해 성인 남녀가 1인당 일년에 먹었던 닭고기는 16.5㎏. 2020년보다 0.74㎏ 늘었습니다. 4년 전보다 닭 한마리를 더 먹는 셈입니다. 배달 치킨 수요가 늘었나 싶지만 그건 아닙니다. 닭고기의 가정 내 배달 소비량은 2020년 3.29㎏에서 올해 3.10㎏으로 약간 줄었습니다.

반면, 가정 내 간편식 소비량은 2020년 1.91㎏에서 올해 2.19㎏으로 증가했습니다. 치킨뿐 아니라 삼계탕, 로제 찜닭, 마라닭볶음탕 등 밀키트 종류가 다양해진 것도 한몫했습니다. 닭 요리가 화려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 사람, 심지어 서울 사람들도 잘 모르는 로컬 요리가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사대문 안에서 시작된 ‘닭한마리’입니다. 지방 사람을 비롯해 서울 원도심에 사는 사람들도 닭 한 마리를 처음 들어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히려 명동 등 서울 도심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2019년 미국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닭한마리를 먹었다는 뉴스를 보고 “그때 닭한마리를 처음 알았다”는 한국인들도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의 닭한마리 사랑은 남다릅니다. 다른 한국음식과 달리 맵지도 않은 데다가 세계 어디나에 있는 닭 국물 요리와 맛이 비슷하니 친숙한가 봅니다. 실제로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만 해도 2019년 2월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를 시작으로 5월, 8월, 12월 방한 일정 때마다 닭한마리를 찾았습니다.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과 서울 종로구 ‘닭한마리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 제공]

이듬해 5월에는 ‘어머니의 날’을 맞아 미국에서 아내에게 닭한마리를 직접 끓여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20년 7월, 코로나19 검사로 밤 10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향한 곳은 닭한마리 식당이었습니다. 그해 12월 현직으로서는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았던 고별 방한 일정 때 식당을 통째로 빌려 만찬을 즐겼습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2년간 7번입니다. 이제는 기사에 보도될 때 그의 이름 앞에 ‘닭 한 마리’ 스티븐 비건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습니다. 폴란드계인 비건 전 부장관은 이 식당의 닭한마리 요리가 할머니가 해준 치킨 수프와 비슷해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이번 퇴근 후 부엌에서는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사랑받는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과 요리법을 전해드립니다.

[음식썰]

닭 한 마리는 이름부터가 생소합니다. 대개는 재료 또는 조리법이 요리 이름으로 굳어지기 마련인데 ‘한 마리’라는 수량을 나타내는 단위가 고유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독특한 이름이 붙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동대문종합시장에 얽힌 서울의 현대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70년에는 종로 6가 전차 차고지에 동대문종합시장이 들어섰습니다. 당시 동대문평화시장은 국내에서 거래되는 원단의 80%가 거쳐갈 만큼 물류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때문에 시장 상인, 손님, 미싱사들이 급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이 뒷골목에 생겨났습니다. 시장이 있는 곳에 교통망이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1973년 4월 통합 이전의 동대문고속터미널 전경. [중앙고속 홈페이지]

2년 뒤인 1972년 이곳에 동대문종합터미널이 건립되며 물류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터미널이 들어서니 자연스럽게 먹자골목이 형성됐습니다. 이즈음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는 ‘닭칼국수’가 인기를 끌면서 골목에 닭칼국수 집들이 생겨났는데 닭 한 마리의 시초도 이때 탄생했습니다. 가게에서는 닭칼국수 외에도 여럿이 안주로 먹을 수 있는 삶은 닭을 안주로 같이 팔았다고 합니다.

1973년 6월 11일자 경향신문 기사.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시켜놓고 술 마시기에 제격인 메뉴였던 셈입니다. 어느덧 버스 시간에 쫓기던 손님들이 주문할 때 “닭 한 마리”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이것이 닭 한 마리라는 음식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마치 오늘날 고깃집에서에서 ‘물냉(물냉면) 하나, 된장(찌개) 하나!’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요리도 진화했습니다. 떡사리와 감자, 마지막으로 끓여먹는 칼국수까지 나와 안주와 끼니를 해결할 만큼 푸짐해졌습니다.

한편, 1977년 터미널은 사라지고 닭한마리 골목만 남게 됐습니다. 1977년 교통부에서 200㎞ 이상 되는 고속버스 노선을 강남으로 옮기는 결정을 내리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강북과 사대문 인근 교통 혼잡과 인구 집중 문제가 원인이었습니다. 동대문, 종로 등 서울 도심에 있던 버스터미널은 지금의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자리를 옮겼죠. 그리고 서울시는 종합터미널 부지를 주차장 지역으로 고시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JW메리어트 호텔이 들어서 있습니다.

닭한마리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서도 등장합니다. 군입대를 앞둔 주인공이 지인들과 함께 동대문 식당에서 닭한마리를 먹는 장면이 나오죠.

[게티이미지 뱅크]

닭한마리를 주문하면 닭 한 마리와 맑은 육수, 파와 감자, 떡사리가 큰 양푼에 담겨 나옵니다. 칼국수 사리도 필수입니다. 닭 속에 인삼, 대추, 찹쌀 등이 들어가는 백숙과는 다르죠. 국물 맛도, 먹는 방법도 삼계탕과는 딴판입니다. 삼계탕은 걸쭉하고 진한 맛이 특징이라면 닭한마리 국물은 삼삼하고 맑습니다. 칼칼한 맛을 원할 때는 같이 나온 김치를 국물에 넣고 끓여먹기도 합니다.

또 닭한마리는 살코기를 소금장에 찍어먹는 대신 간장과 겨자, 식초와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장에 찍어 먹습니다. 소스가 닭의 느끼함을 잡아줍니다.

재료도 간단해 백숙보다 만들기 쉽습니다. 양파, 파, 후추 등 집에 있는 기본 식재료로도 똑같은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료 : 닭볶음탕용 닭고기, 양파 1/2, 파 2단, 감자 2개, 통후추. 다진마늘 2T, 통마늘 4알(생략 가능)

양념장 재료: 다진마늘 1T, 진간장 2T, 식초 2T, 고춧가루 1T, 알룰로스(또는 설탕) 1t

1. 냄비에 물 1.5ℓ를 넣고 생닭, 후추, 파 흰 부분을 넣고 끓입니다.

2. 물이 끓기 전 감자와 양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냄비에 넣습니다. 다진 마늘 2T도 넣습니다.

3. 약 15분 가량 끓으면 냄비 위에 떠오르는 거품과 후추, 닭기름을 건저냅니다.

4. 간장, 식초, 고춧가루, 알룰로스를 넣고 섞어 양념장을 만듭니다. 부추를 곁들이면 더욱 맛있읍니다.

초복을 앞두고 가족들과 함께 닭한마리를 해먹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서울에 사신 부모님도 닭한마리를 처음 들어 봤다고 합니다. 재밌게도 닭한마리로 한국을 찾은 일본인들에게 더 유명한가봅니다. 일본에서도 ‘지도리(토종닭) 나베’, ‘미즈타키(닭전골요리)’라는 비슷한 음식이 있는데다가 다른 한국 음식과 달리 맵지 않아 인기가 많습니다. 또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까지 진출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유일한 닭한마리 음식점으로 치킨 등 한국의 닭요리와 함께 닭한마리를 판매중이라고 합니다.

jooh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