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브레이킹 월드클래스가 짚어준 브레이킹 관전포인트 5가지 [파리2024]
엔터테인먼트| 2024-08-09 15:02
비보이 홍텐(김홍열)이 202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Red Bull BC One 2023 월드 파이널 경기에서 자신의 시그니처 포즈인 ‘홍텐프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홍텐프리즈’는 손바닥 대신 두 손가락만으로 공중에 멈춰선 것이 특징이다.

[헤럴드경제=차민주·정호원 기자] ‘프리즈(Freeze)’.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빠르게 춤추던 비보이의 몸이 공중에서 얼어붙는다고 해서 붙여진 브레이킹 동작을 말한다. 지켜보는 관객마저 ‘프리즈(숨죽이게)’ 하는 브레이킹의 진짜 매력은 경기장의 뜨거운 열기 속 치열한 ‘전략’에 있다.

힙합과 함께 탄생하고 발전한 브레이킹이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춤으로 겨루는 승부의 세계가 한국시간 10일 밤 11시 라 콩코르드 광장에서 펼쳐진다. 국내에선 비보이 홍텐(김홍열)이 유일하게 출전한다. ‘살아있는 브레이킹의 전설’로 불리는 홍텐은 올해 40살로 출전 종목 선수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다.

과연 홍텐은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가져올 수 있을까. ‘브레이킹 세계랭킹 1위’ 역사를 쓴 진조크루의 수장이자 국제댄스스포츠연맹 기술고문 김헌준 부위원장과 브레이킹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 포인트① : “관객·심사위원·경쟁자…삼각 줄타기를 잘해야” = 브레이킹은 스포츠이면서 동시에 공연이다. 관객, 상대 선수, 심사위원까지 고려 대상이 많아질수록 선수의 ‘포지셔닝’이 중요해진다. 선수가 자칫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만 집중하면 정작 승패를 결정하는 심사위원의 마음을 놓칠 수 있다. 일반 관객은 동작이 다이내믹하고 속도가 빠른 동작을 할 때 환호한다. 반면 심사위원은 해당 선수만의 고유한 독창성을 보여줄 때 가장 큰 점수를 준다. 김 위원장은 “관객과 심사위원 사이의 경계를 잘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은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까.

심사위원은 음악성, 다양성, 독창성, 기술, 수행력 등 5가지 항목을 담은 ‘뉴 저징 시스템(New judging system)’으로 선수를 평가한다. 2006년부터 브레이킹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김 부위원장은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심사에 임할 수 있도록 기존의 ‘트리비움 밸류 시스템’을 간소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리비움 밸류 시스템에서는 13가지 평가 항목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1분 내외에 빠른 비트로 진행되는 브레이킹을 평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올림픽 심사위원에 대해서 “홍텐과 동시대에 춤을 췄던 사람들”이라며 “그동안 홍텐이 걸어온 길 자체가 곧 커리어이기 때문에, 홍텐 특유의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비보이 홍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일 ‘홍텐 시그니처 모음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된 게시물. [김홍열 인스타그램]

▶포인트② : “전략적인 주특기 배치는 필수” = 올림픽 브레이킹은 16명의 선수들이 4개의 조로 나뉘어 상위 1·2등이 다음 경기로 진출하는 ‘라운드 로빈’ 방식을 택했다. 이후 1대 1 토너먼트로 순위가 결정된다. 비보이 브레이킹 경기가 있는 10일 하루에 16강부터 8강, 준결승, 결승 토너먼트까지 7개 경기가 모두 진행된다.

하루에 모든 경기가 치러지기 때문에 ‘오늘은 나의 날’이라는 기세를 초장부터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김 위원장은 “처음 기세가 무너지면 심사위원은 그 느낌을 경기 끝까지 가져가게 된다”며 “(동작을) 굉장히 가볍고 날렵하면서도 확실하게 가져간다는 인상을 (심사위원에게) 전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브레이킹에는 ‘리핏(반복동작)’을 하면 감점된다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선수별·라운드별로 반복동작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신의 주특기를 잘 살리는 ‘전략적 배치’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주특기를 잘 살리면서도, 이를 잘 변용하는 것을 ‘스마트 리핏’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주특기는 현명하게 활용해야 한다. 자칫 선수가 흥분하면 자신의 턴이 돌아오자마자 주특기를 쏟아낸다. 하지만 심사위원이 이를 놓친다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다. 턴이 돌아오고 5초 정도를 여유롭게 보내면서 심사위원이 정비할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애써 갈고닦은 기술을 날려 보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텀을 두는 것 또한 중요한 전략”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경기 성향에 따라 내가 더 어필 가능한 부분이 무엇인지도 즉흥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만약 상대가 100% 오리지널리티(자신이 만든 기술)로 승부를 본다면, 나도 같은 분야로 승부를 볼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을 어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테크닉, 음악성 등 다른 분야를 파고들면서 ‘버릴 카드’가 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목표는 메달권이기 때문에 초장에 모든 필살기를 쏟아부어서도 안된다. 적절히, 상대를 봐가면서 전술 배치를 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예선에선 2등 정도로 안착하면서 기술을 아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상대방도 같은 전략을 취할 수도 있다. 상대가 나를 얕본다면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상대가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다면 이에 응수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그래서 브레이킹이 재미있다”며 “현장 상황에 맞춰 선수가 즉흥적으로 퍼포먼스를 펼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6일 프랑스 생투앙에 위치한 파블로 네루다 스포츠 센터에서 연습중인 비보이 홍텐. [AFP]

▶포인트③ : “프랑스 선수는 홈경기 베네핏? 위기는 기회다” = 조별리그 예선 C조에 속한 홍텐은 제프리 루이스(Jeffro·미국), 레이라우 데미러(Lee·네덜란드), 가에탕 알린(Lagaet·프랑스)과 8강 진출을 겨룬다. 홍텐은 “가에탕 알린은 홈인 만큼 그에겐 환호성이, 내겐 야유가 쏟아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 홈경기에서 프랑스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열쇠는 ‘매너’다. 김 위원장은 “펜싱에서 오상욱 선수가 쓰러진 상대 선수를 일으켜 세웠을 때 경쟁국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처럼, 매너있는 경기를 하면 (홈 경기여도) 프랑스 팬심을 잡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배틀 형식으로 치뤄지는 브레이킹에서는 상대의 약점과 실수를 꼬집는 스킬도 있지만, 그보다는 관객의 마음까지 울리는 경기를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의견이다.

▶포인트④ : “경기 돋보이게 만드는 ‘패션’도 중요한 무기” = 브레이킹은 선수의 기술 뿐만 아니라 예술성과 개성도 평가한다. 브레이킹에서도 예술성을 드러내는 측면에선 선수의 패션이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 주프림 브레이킹(Zoopreme·네덜란드)은 파리 올림픽 브레이킹 홍보 영상에서 “(브레이킹에서) 패션은 중요하다. 선수가 어떤 사람인지 시각적으로 대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텐은 특히 신발에 예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텐은 “신발 착화감에 따라 퍼포먼스가 확연히 달라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홍텐은 이번 올림픽에 ‘나이키 잼(Nike Jam)’을 착용할 예정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퓨추라(Futura)와 협업해 브레이킹 선수만을 위해 특별 제작한 모델이다. 지난 6년간 나이키 스포츠 연구소(NSRL)가 브레이킹 선수들의 피드백을 거쳐 콘크리트부터 매끄러운 경기장까지 어떤 곳에서도 선수의 기량을 최대로 펼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나이키는 한국·미국·일본을 위한 국가대표팀 키트(Kit)도 제작했다. 키트에는 나이키잼과 브레이킹 전용 의류가 담겼다. 마모가 쉬운 후디 부분은 탄탄함을 유지하기 위해 원단을 추가했고, 선수들의 활동성을 강화하고자 소매와 바지 길이를 길게 수정했다. 홍텐은 “컬렉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나이키 잼의 밑창 부분에 적용된 뒤집힌 모양의 스우시”라며 “자유롭고 다양한 표현을 중시하는 브레이킹 댄스 선수의 개성을 고려한 독특한 디자인”이라고 했다.

나이키가 7월 선보인 ‘나이키 잼(Nike Jam)’ 컬렉션. [나이키코리아 제공]

▶포인트 ⑤ : “관객이 자신만의 브레이킹 스타일 찾는 계기가 되길” = ‘우리팀 이겨라’도 좋지만, 승부에서 벗어나 브레이킹이라는 종목 자체를 즐겨보면 어떨까. 김 위원장은 “관객 자신이 좋아하는 브레이킹 스타일을 찾게 되면, 경기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나만의 최애’를 발견해보길 바란다”고 했다.

주목할만한 외국 선수들도 많다. 홍텐과 같은 C조에 배치된 레이라우 데미러는 올림픽 출전권을 두고 펼쳐진 OQS(Olympic Qualifier Series)에서 1위에 오른 강자다. OQS에서 2위를 차지한 홍텐의 뒤어 3위를 한 히로텐(Hiro10·일본)은 김 위원장과 같은 진조크루 멤버다. 이제 막 20살이 된 어린 선수지만, 스킬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올림픽에서의 브레이킹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에 채택되었지만,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선 볼 수 없다.

파리올림픽 이후,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가장 부족한 게 후진 양성”이라며 “한국 브레이킹을 이끄는 리더로서 부끄러운 부분”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어린 아이들이 브레이킹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경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관과 기업 후원 유치를 위해서도 앞장서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일본과 중국은 (상대적으로) 어린 후학 양성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며 “한국이 앞으로 가야할 길”이라고 했다.

w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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