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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가을, 숨은 의재미술관 찾기..‘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함영훈의 멋·맛·쉼]
라이프| 2024-09-04 07:55

[헤럴드경제(광주)=함영훈 기자] 광주,전남,전북 지역은 호국 의병, 충무공의 활약, 한민족 식량안보 지킴이, 상생정신 대동사상의 진원지, 문화예술을 통한 한국의 미(美) 발현, 바다와 산의 조화로운 절경, 이웃나라 일본 야요이-아스카-야마토 시대 발전의 견인차 등 다방면의 자랑스러운 면모 때문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이같은 정신문화, 물질문명을 형성케 한 대표 아이콘은 무등산이다. 의병과 열사들은 무등산의 이름으로 살신성인했고, 문화예술인들은 무등산을 소재로 다양한 호남 문학, 예술을 꽃피웠다.

무등산 서석대

무등산은 광주광역시와 전남 화순군, 담양군이 공유한다. 서석대, 입석대, 화순적벽 등 절경과 고찰을 품은 국립공원이다.

무등산에 가을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무등산 증심사 등산로에 접어드니 습한 기운은 물러가고, 초가을 공기가 목구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계곡물은 청아한 소리로 재잘거리며 등산객을 맞는다.

1200년 고찰 증심사 등산로는 봉황대, 천제단, 중머리재, 중봉을 거쳐 정상인 서석대, 입석대 절경지대에 이른다.

무등산 3부 능선쯤 숲속에 숨은 듯이 자리한 의재미술관이 가을 정취에 예술 힐링이라는 선물을 덤으로 안긴다.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해 20여분 지났을 무렵, 숲에 가려져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던,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곳에 산속미술관이다.

의재 허백련

한국관광공사 광주전남지사(지사장 김완수)로부터 강소형잠재관광지로 선정된 이곳은 자연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 속에 숨어, 미술과 자연이 교감토록 설계돼 있다. 이 미술관 건축물은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1등상(대통령상)을 받았다. 그해 2등상은 인천국제공항이었다.

대지 1824평 연면적 471평인 미술관은 무등산 새인봉에 이르는 등산로에 길게 면하여 있고, 건물의 뒤쪽은 소나무, 참나무, 오동나무 수림이 울창하다.

1층 부분의 입구 홀과 휴식공간은 투명한 유리를 통해 계곡 건너의 무등산 경치를 끌어들인다. 실경 6폭 병풍이다.

의재미술관 통창은 자연을 끌어들여 실경 6폭 병풍이 된다.
무등산 자연 속에 숨은 의재미술관

두 개의 층이 뚫린 전시동과 지하층엔 기획전시, 상설전시실(2층)이 들어서 있다. 마당은 자연스럽게 오동나무숲, 대숲으로 연결되어, 자연의 가치와 의미를 늘 기억하도록 꾸며져 있다.

건물 내부는 가능한한 많이 자연과 연결될 수 있도록 투명 혹은 반투명의 장치를 마련했고, 자연채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자연과 예술의 연결을 도모하면서, 전시공간 속 작품의 배치를 여유롭게 함으로써 비움과 고요함의 서정을 극대화했다고 한다.

이곳은 한국전통미술 남종화(문인화)의 거두 의재 허백련(1891~1976) 화백과 후진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문인화는 김홍도,신윤복 등과 같은 직업 미술가와 구분지어, 그림에 정신, 사상, 철학, 시문을 담는 인문학미술이라 하겠다. 그래서 미술 뿐 만 아니라 시문과 철학에도 능한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의재는 미술가,법률가,다도(茶道)인,식물학자,농업교육인으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인 ‘전인(全人)’이다. 한 문화예술인은 의재 허백련을 ‘무등산 도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는 그의 모토는 ‘예술은 늘 우리 삶속에 존재한다’는 아르누보의 정신을 닮았다.

의재의 작품 ‘대풍.’ 시가 있어 더욱 깊은 서정을 안기는 문인회(남종화)

이곳에 가면, 의재의 대표작인 산수팔곡병풍, 대풍, 의재가 그린 모란에 손자 허달재가 출품작인줄 모르고 붓칠한 것을 다시 의재가 완성한 뒤 낙관을 찍지 않은 작품, 서양화느낌이 섞인 동양화 ‘섬’, 추상화 기법이 가미된 ‘돌’ 등 의재의 손자 허달재의 작품, 의재 허백련의 삶과 예술 자료전’(~10월27일), 시가적힌 춘설차 찻잔, 무등산 단군신전 상상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조선전람회의 상을 받은 뒤 일제의 입맛에 맞추기를 거부한 채, 1937년 한국 전통서화 발전과 후진양성을 위해 연진(鍊眞)회를 발족하고, 당시 우리나라의 주된 산업이었던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농업학교를 세우고 차밭을 가꾸었다. 과학영농의 개념을 실천한 선구자적 행보였다.

이곳의 춘설차 맛은 여느 발효차에 비해 조금 더 진한 듯 하지만, 청태전 처럼 담백하거나 불회사 처럼 톡 쏘지 않고, 구수하다.

의재가 스님한테서 제다법을 배워 손님들에게 권했던 춘설차는 지금도 의재미술관에 가서 요청하면 옆 건물 다도실로 안내받아 음미할 수 있다.

이 무등산 차를 맛본 노산 이은상은 ‘무등산 작설차를 곱돌솥에 달여내어 초의선사 다법대로 한잔들어 맛을 보고, 또 한잔은 빛깔 보고, 다시 한잔 향내 맡고, 다도를 듣노라니 밤 깊은 줄 몰랐구나’라고 노래했다.

이곳에는 나치를 고발하던 루마니아 작가 ‘25시’ 콘스탄틴 게오르규, 육당 최남선 등도 방문했다. 춘설헌은 소록도의 오스트리아 두 천사 이전에 나환자를 돕던 최흥종이 기거하다 친구인 의재에게 넘겼다.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와 의재 허백련

등산하는 길에 한숨 돌리러 들러도 좋고, 이곳만을 위해 20여분 등산해도 좋다. 등산 보다는 전통한국화에 관심이 많은 미술애호가와 노약자들은 등산로 입구에서 미술관 까지 미니셔틀버스를 두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미술관을 품고 있는 무등산국립공원은 국가지질공원 및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해발 1186.8m로 산세가 유순하고 둥그스름한 모습이다.

전체적인 모양새와는 다르게 무인들의 용맹함이 느껴지는 무악(武岳), 무진악(武珍岳) 불린 이유는 정상에 있는 입석대, 서석대 주상절리 기둥이 우렁차기 때문이다.

의재 미술관에서 가까운 증심사 외에 원효사, 약사사 등 고찰이 있다. 9세기에 창건되고 고려시대엔 국사가 직접 나서 중수한 증심사는 겸손하게도 여염집 생활재료인 철로 만든 철불(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무등산 입석대
광주 송정에 가면 떡갈비골목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울주, 담양과는 달리 대형 동그랑땡 쿠키형이다.

미식이 함께하는 가을 남도여행은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키운다. 용의 해 가을과 겨울을 강건한 체력으로 매조지할 수 있게, 광주 대인, 양동시장, 송정 떡갈비거리, 남광주시장에선 민어회, 삼합, 떡갈비, 육전, 건더기 가득한 광주식 순대국, 영암산 무화과, 고흥산 유자,석류차를 내어온다.

남도여행 때 늘 주의해야 점은 누구든 남도미식 앞에서 식탐을 이겨낼 수 없으니, 충분한 아웃도어 발품 여행으로 영양분을 에너지로 전환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국민에게 기증한 피카소의 도예작품 ‘큰 새와 검은 얼굴’
양림동 제이홉 벽화와 신여성의 묘한 눈빛. 제이홉은 다음달 제대한다.

무등산 산행도 좋고, 이건희 기증작 피카소 도자기전 등 발품팔며 즐길 전시가 많은 아시아문화전당(ACC) 탐방, 양림동 버들숲 청년창작소 ‘미광의상실’에서 빌린 옷 입고 신여성-모던보이 코스프레 산책, 호랑가시나무 언덕 인문학 예술 여행 등은 남도미식 폭풍흡입으로 인해 쌓인 칼로리를 사용해서, 심신 에너지를 키우는 좋은 방법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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