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노래가 뭐길래...진짜 인생은 ‘무대가 끝난 후’ 시작됐다
뉴스종합| 2024-09-19 11:29
연규성 씨는 지난 3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자신의 작업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나를 포기하면 안 된다. 버티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고 했다. 임세준 기자

“소리, 소리가 뭐길래 여기까지 걸어왔나....”(뮤지컬 ‘서편제’ 중 ‘한이 쌓일 시간’ 가사 일부)

2012년 한 케이블 채널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4’에서 이승철의 ‘말리꽃’을 부른 연규성(44) 씨의 말이다. 연씨는 오디션 프로그램 당시 수많은 고비를 넘어 8위에 올랐다. 사람들의 관심과 집중이 쏟아졌다. ‘슈퍼스타’였던 연씨의 진짜 삶은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난 뒤부터였다. 그간 연씨는 희귀질환을 앓게 되며 목숨을 끊을까도 고민했었다. 빚은 억 단위로 쌓였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자신의 작업실에 만난 연씨는 “지난 12년간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터널이었다”고 회고했다.

연씨는 20대 초반의 자신에 대해 “노래 꽤나 하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슈퍼스타K4’에 나가기 전부터라고 했다. 연씨는 “군인 시절 오디션박스(노래를 녹음하면 동영상이 특정 사이트에 올라가는 장치)에 올랐던 노래들이 많이 유명했다. 김경호 ‘희생’, 윤여규 ‘애프터’나 김종서의 노래를 부르면 순위가 1등을 하는 등 반응이 엄청 좋았다”며 “제 팬카페에 가입한 팬도 10만명이 넘었다. 제대하고 나서도 밴드를 직접 꾸려서 홍대에서 공연도 했다”고 말했다.

군대를 제대한 뒤 연씨에겐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취업이냐, 음악이냐였다. 그는 부모님의 기대에 따랐다. 취업이었다. 그러나 연씨의 자유로운 성향과 직장생활은 안 맞았던 탓일까. 2008년 연씨에게 갑자기 연축성 발성장애가 찾아왔다. 후두근육이 수축돼 발성이 어려운 희귀 질환이었다. 노래는 고사하고 말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악몽이 현실이 됐다. 연씨는 하루하루 시들었다. 아내는 당시 연씨를 보고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연씨는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을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길거리에서 음악만 흘러나오면 귀를 막고 지나갔다.

그렇게 4년이 흐른 2012년, 연씨는 우연히 ‘슈퍼스타K4’ 광고를 봤다. 그는 처음에는 발성도 안되는 사람이 어떻게 참가하겠냐며 못 본 척 했다. 노래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도 흘렸다. 연씨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아내였다. “너 바보야? 해보지도 않고 뭐 하는 거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봐야지 왜 해보지도 않고 포기를 해. 당장 지원해. 지원 안 할 거면 나한테 전화하지마.” 아내의 쓴 소리에 연씨는 도전을 결심했다. 그리고 수많은 관문을 거쳐 상위 8명에 들어갔다. 대단한 성취였다.

2012년 한 케이블 채널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4’에 출연했을 때의 연규성 씨.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8위에 오르며 가요계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연축성 발성장애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다. [CJ ENM 제공]

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슈퍼스타K4’에 출연하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병에 차도는 없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 상태가 좋지 않은 연씨가 부를 수 있었던 건 녹음이 가능한 드라마 OST 정도였다. 가수는 공연장에서 관객과 만나며 인지도도 쌓고 돈도 버는데, 그러질 못하니 수입이 거의 없었다. 연씨의 진짜 삶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시작됐다.

“한 10년 동안 수입이 거의 없었습니다. 라이브를 하면서 활동도 하고 앨범도 내야 되는데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니까 관심도 떨어졌죠. 그러게 10년간 진 빚만 억 단위였습니다. 연축성 발성장애를 해결해보려고 안 가본 곳이 없었죠. 유명한 이비인후과는 다 다녔고, 다양한 발성 치료도 다 해봤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한의원에서 대침을 맞고 봉독치료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연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이 안 보이니까, ‘죽었다 다시 태어나면 괜찮아지려나’ 이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때마다 안 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뮤지컬 ‘서편제’에 나온 노래 ‘한이 쌓일 시간’을 불렀다”고 말했다.

연씨는 2019년 뭉친 근육을 푸는 ‘활법치료’ 등을 받으면서 점점 목이 풀리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해 배운 작곡과 믹싱은 프로듀서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목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연습한 시간은 보컬 트레이너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12년이 흐른 2024년. 연씨는 매월 앨범 발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목 상태를 회복했다. 트로트가수 이찬원의 프로듀싱을 맡는 등 프로듀서로도 성과를 냈다. 오는 21일에는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의 스페이스브릭에서 ‘하이연’ 밴드 공연도 진행한다. 결국 터널의 끝에 다다른 것이다.

“저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를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습니다. 딱 하나였어요. ‘네버 기브 업(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마라).’ 저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었죠. 그래도 문제가 있을 때 회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끝까지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연씨는 “인생에서 굴곡은 항상 찾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굴곡도 삶의 한 부분이라 여기고 계속 버티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반드시 다시 좋은 날이 찾아온다. 이 점만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대표하는 노래로는 본인의 삶을 노래한 것 같다며 ‘한이 쌓일 시간’을 꼽았다. “(전략) 소리, 소리가 뭐길래 여기까지 걸어왔나.... 모든 건 시간이 필요하단 걸. 사무치는 시간. 한이 쌓일 시간. 깊어질 시간 (후략).”

박지영 기자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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