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바다가 솟구친 로키산맥, 지구의 숨소리가 들린다
라이프| 2024-11-12 11:14
모레인 호수의 아침풍경
겨울엔 자연 아이스링크와 예술무대가 되는 레이크루이스
밴프 카누호텔 발코니에서 본 10월의 오로라
캘거리 캐나다 선주민 문화·서부 개척·카우보이 시대를 품은 민속촌

캐나다 앨버타주 로키산맥에 가면, 지구의 꿈틀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는 알프스 마테호른이 100개, 앙코르와트·남한산성 닮은 거대 요새가 30개, 일본 나가노의 알펜루트 같은 트레일 코스가 30개 이상 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최고라고 인증한 국가답게 오로라 관측 성공률과 사람이 빙하를 밟아보거나 코앞에서 관찰할 확률은 북유럽의 3~4배다. 또 중생대 바다와 신생대 산악까지 1억년 이상의 지질 현상이 모두 모여있다.

앨버타주 국립공원 면적, 서울 20배

밴프, 재스퍼 등 로키의 태고적 속살을 탐방하고 난 후 캘거리에서 공룡화석, 캐나다 선주민 문명, 유럽 문화, 카우보이 샘센터, 서부 개척 민속촌, 도심빌딩 2층을 모두 연결한 ‘워크웨이’까지 시간여행을 해본 관광객들은 “앨버타주 갔다가 5~6개국 여행을 한꺼번에 했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도 그럴 것이 캐나다와 미국에 걸친 로키의 남북 길이는 4800㎞, 앨버타주 국립공원 2개의 면적은 서울의 20배나 된다. 형성 시기에 대한 견해가 분분하긴 한데 현지에선 약 1억6000만년 전 중생대 부터 긴 세월, 태평양 판이 아메리카대륙을 동쪽으로 밀면서 바다였던 곳을 지상으로 들어올려 형성된 지형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해양생물은 갯바위 구멍에 숨어보았지만, 결국은 켜켜이 쌓인 고산 지층에 묻히면서 화석이 되었다.

19세기에 이곳에 들어온 유럽인, 특히 스위스 사람은 “알프스의 몇 십 배 되는 장관”이라고 유럽에 알렸고, 유럽의 슈퍼리치들은 배에 말과 마차를 태워 밴프 국립공원에 온 뒤, 수개월 머물면서 대자연을 호사롭게 즐겼다. 130년 전쯤 지어진, 유럽의 성(城)을 닮은 밴프 스프링스 호텔이 이들 때문에 생겼다.

밴프 등에 가려진 카나나스키스 등 장관

밴프·재스퍼 국립공원, 그 주변으로 포진한 카나나스키스·캔모어 일대 수많은 주립공원들에는 백두산급 봉우리 수백개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또 ▷서울 면적의 절반인 컬럼비아 빙원과 이곳에서 삐져나와 멈춰버린 푸른 빛의 사스카추완 빙하 ▷황홀한 색감의 모레인-루이스-페이토 호수 ▷캔모어 세자매봉과 너덜(돌무지)길 등산로 너머에 펼쳐진 초원 ▷평화로운 야생동물들 ▷밴프 협곡 위에 수증기를 피우는 온천 등 다채롭고 신비스런 모습들을 보여준다.

지구상 가장 파란만장한 이 풍경을 마주 대하면 태평양판과 북미대륙 간 힘겨루는 소리가 들리는 듯 , 꿈틀거리던 지구의 몸부림이 보이는 듯 하다.

캘거리 국제공항을 출발하면 얼마 가지 않아 감자·소고기·카놀라유·꿀·밀·블루베리·들소 바이슨, 알버타 7대 지속가능 건강식재료를 생산하는 고랭지 농토와 목장을 지난다.

이어 1시간 남짓, 차로 더 이동하면 로키의 초입 카나나스키스 컨트리의 여러 주립공원 진입로를 만난다. 이 컨트리에 속한 캔모어까지는 로키 탐험의 전초전인데, ‘본게임’ 부럽지 않다. 좀 더 호젓하고, 자유로우며,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촬영지인 카나나스키스에서는 G7 정상회담이 2002년에 이어 내년에 두 번째로 열린다.

빙하가 만들어낸 신비한 에메랄드빛 호수

캘거리 동계올림픽 노르딕 경기장 인근에 있는 캔모어의 글라시 호수는 마테호른 몇 개를 겹쳐놓은 듯한 로렌스글래시산(2685m)을 등진 채, 크리스마스트리를 닮은 낙엽송 군락 옆에서 투명한 에메랄드 색감으로 빛난다. 그리고 100m 높이의 글라시 폭포를 렌들댐 저수지로 내리 꽂는다.

밴프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는 레이크루이스(1661m)-모레인 호수(1884m)-페이토 레이크(1860m), 밴프의 3대 호수가 각각 끼고 있는 비하이브, 템플산, 라치(Larch)밸리, 아이스필크 파크웨이(전망대), 파커릿지다.

이들 3대 호수의 물빛은 글라시와는 달리, 청색 물감이 좀더 들어간 청록색에 우유를 옅게 뿌려놓은 듯 하다. 빙하의 푸른 빛에다, 호수에 빙하가 유입되기까지 미세하게 가루가 된 암석미립자(rock flour)가 뿌옇게 뜬 상태로 푸른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빛의 호수가 된 것이다.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신비로운 색감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해저를 고산에 올려놓고는 수천만년 빙하를 쌓이게 하더니, 조금씩 흘려보낸 끝에 빚어낸 신(神)의 작품, 지구의 파란만장한 족적이다. 호수 위에서 빨간 카누를 즐기는 중년 부부의 미소가 싱그럽다.

모레인·페이토 호수에서 보는 절경

모레인 호수에서 미네스티마호수(2443m)까지 15.8㎞에 달하는 라치밸리 트레일에서는 10월 서설을 맞은 노랑잎 자작나무 군락지를 10개 봉우리가 호위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도시락을 먹으려고 백두산 높이의 미네스티마 호수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여행객을 3000m 넘는 에펠탑 피크, 피나클산, 촛대바위가 흐뭇하게 내려다 본다. 맞은편 앙코르와트를 닮은 산도 여행객들의 점심시간을 즐겁게 해준다. 모험을 더 즐기는 부류는 고난도인 센티널 루트로 트레일을 이어가고, 중급자들은 호변 산책을 즐긴다.

밴프-재스퍼를 연결하는 아이스필드파크웨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페이토 호수다. 세계 10대 절경엔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딸 이름을 딴 루이스 호수가 들어있지만, 한국인들은 모레인과 페이토 호수를 각각 1·2위로 꼽는다.

모레인이 미시적 경치라면, 페이토호수는 거시적 풍광이다. 해발 2000m 전망대에서 페이토호를 중심에 두고 로키를 병풍처럼 감상할 수 있다. 시시각각 느낌이 다르니, 3자의 우열을 논하는 게 부질없다.

조랑말로 각 고을 물건을 운반·택배하는 물물교환 거간꾼이던 페이토 아저씨가 이 호수의 존재를 유럽발 이주민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호수 빛과 보색인 빨간 집을 짓고 살았다는 그의 스토리도 정겹다.

이곳을 지나 비하이브를 향해 가파른 길을 오르면, 초대 총리의 부인 이름을 딴 아그네스 호수 옆에 해발 2100m의 산중 다방 ‘티 하우스’가 반긴다.

우람한 로키, 겨울 되면 아기자기해져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 있는 컬럼비아 빙원으로부터 사스카추완 빙하가 막 삐져나온 모습은 파커리지에서 조망한다. 이 ‘괴물(Saskatch)’은 흐름을 멈춘 것 같지만, 계속 움직이면서 빙퇴석을 갈고 옥수를 빚어내고 있다.

마릴린 먼로의 ‘돌아오지 않는 강’, 오마 샤리프의 ‘닥터 지바고’, 브래드 피트의 ‘흐르는 강물처럼’ 등 많은 명작 영화를 촬영했던 밴프에 겨울이 오면, 우람한 로키는 ‘키다리 아저씨의 탭댄스’처럼 귀여운 매력을 발산한다.

11월 중순부터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마켓과 맥주 축제를 즐기고, 스키, 온천, 개썰매, 스노슈잉 레저를 한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방문했던 루이스 호수는 아이스링크가 되고, 얼음 성벽예술이 빙판을 장식하는 아이스 매직 축제도 열린다. 그리고 숙소 발코니에서도 보이는 오로라가 제철을 맞는다.

‘액체로 된 금(liquid gold)’이라는 메이플시럽은 로키 자락 마을의 겨울을 달달하게 해준다. 곤돌라를 타고 8분 만에 설퍼산에 올라 흰색 병정처럼 도열한 설산을 굽어보면 귀엽다는 느낌마저 든다.

자연주의 여행가들은 고요한 강변 숲속 휴양지에 누워 지구의 자전 소리를 숨죽여 듣지만, 알버타 로키에 서면 고요함 속에서도 최고의 자연예술을 빚어내려는 지구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밴프(캐나다 앨버타)=함영훈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앨버타주관광청·웨스트젯]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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