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공학 전환’ 반대한 학생들, 강경 시위
동덕여대 측 “폭력시위…엄중한 책임 물을 것”
동덕여대 설립자 조용각 전 이사장의 흉상이 오물로 범벅이 됐다. 박지영 기자.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김도윤 수습기자] “학생 의견 반영 않는 학교 수업 거부한다! 공학 전환 반대한다! 명예롭게 폐교하라!”
12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에서는 학생 약 200명이 검은색 옷을 입고 운동장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학교의 일방적인 남녀공학 전환을 반대한다”며 이날 오전 11시 30분부터 시위를 진행했다.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며 건물 입구를 의자로 막아놨다. 건물 외벽에는 락커로 ‘공학반대’가 쓰여있다. 박지영 기자. |
학생들은 지난 11일부터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와 필리버스터를 진행, 오후 8시부터는 본관 앞을 점거하고 ‘수업 거부’를 외치며 인문관, 숭인관 등 건물 입구를 의자로 막았다. 동덕여대의 한 교수는 “뭐하는 거냐”며 건물 출입문을 벽돌로 치는 등 학생과 교직원과의 마찰도 있었다. 학교 측의 신고 등으로 서울 종암경찰서. 성북소방에서도 출동했다.
학생들이 학교 곳곳에 락커로 남녀 공학 전환 반대 메시지를 쓰고 있다. 김도윤 기자. |
학교 곳곳에는 남녀 공학 전환을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락커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공학 전환 입시 사기’, ‘동덕 주인 학생이다’, ‘총장 사퇴’ 등 건물 외벽 뿐 아니라 인도, 학교 시설물 곳곳에 문구들이 가득했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할 정도로 학교 안은 어지러웠다. 학생들은 마트카트에 페인트와 스프레이를 가득 싣고 교문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학교 정문에는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학생들이 설치한 근조화환 수십 개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박지영 기자. |
본관 앞 학교법인 설립자 조용각 전 이사장의 흉상은 케첩과 밀가루, 계란 등으로 오물 범벅이 됐다. 항의의 의미로 본관 앞에 학과 과 점퍼를 놓았는데, 400벌을 넘어서기도 했다. 학교 정문에는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설치한 “공학 전환 완전 철회”, “민주 동덕은 죽었다”는 문구가 쓰인 근조 화환 수십 개가 줄지어 세워져 있기도 했다.
학생들이 이토록 강경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총학생회 등 학생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미 학교측과 학생들 사이의 원만한 의사 소통이 불가능할만큼 불신이 누적돼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학교측이 학생들과 아무런 소통없이 ‘남녀공학 전환’ 안건을 추진하려 하자, 이것이 기폭제로 작용해 일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불신은 ‘요구사항’이 제대로 학사 행정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2018년 한 용역업체 직원이 교내에 침입해 음란 사진을 찍은 이른바 ‘알몸남’ 사건과 지난해 동덕여대생 한명이 교내 쓰레기 수거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교내 외부인 출입 단속, 학내 시설물 보수 등을 요구했으나 학교 측이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학생들은 2022년 독일어과와 프랑스어과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학생 측과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 소통국장 엄모(21) 씨는 “학과 통폐합의 경우 총학생회에서 면담을 시도하고 반대를 해보았는데도 학교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라며 학생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다. 실제로 올해 동덕여대는 외국인 유학생 전형으로 올해 신설된 한국어문화전공 과에 남학생 6명을 입학시켰다. 이번 남녀공학 전환도 마찬가지로 학교는 학생의 얘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며 건물 입구를 의자로 막아놨다. 건물 외벽에는 락커로 ‘공학반대’가 쓰여있다. 김도윤 기자. |
학생회의 설명에 따르면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이 학생들 사이에서 공론화된 이후 총학생회는 ‘절대 반대’라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 지난 11일 오후 5시에 면담이 예정돼 있었지만, 면담을 약속한 처장들은 2시간30분 뒤에 나타났고 이에 학생들은 학교가 학생의 주장을 수용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후 본관 등을 점거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총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여대’라는 정체성을 뒤흔드는 결정인데도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학생들이 화가 난 이유 중 하나다. 동덕여대 재학 중인 윤모(22) 씨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양질의 교육을 받기 위해 여대가 생겼는데, 이런 중대한 결정을 통보식으로 학교가 결정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컴퓨터학과 재학 중인 A(21) 씨는 “만약에 학교의 주장처럼 인원수가 모자라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려고 한다면 여성을 더 뽑으면 된다. 지금도 경쟁률이 10:1은 넘어가고 있다”며 “학생에게 꼭 필요한 교원 등을 충원해주기는커녕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을 없애겠다는 것이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동덕여대 측은 12일 총장명의의 입장문을 밝혀 공학 전환이 회의에서 나온 것은 맞으나 아직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상황은 아니며, 모든 구성원들과 의견 수렴 절차를 계획 중이었다고 밝히며 “학교가 밀실에서 공학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는 건 잘못된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성인으로서 대화와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는 대학에서 이와 같은 폭력사태가 발생 중인 것을 매우 비통하게 생각한다”며 “대학에서는 본 사안에 대하여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동덕여대 뿐 아니라 성신여대에서도 12일부터 시위에 나섰다. 2025학년도에 신설되는 국제학부에 외국인 남학생 입학을 허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성신여대 총학생회는 대자보를 게재하고 “여대 존립 이유를 해치는 남성 재학생 수용을 중단하라”며 학생과 소통할 것을 요구했다.
성신여대 측은 공학 전환을 위해 국제학부 남학생 입학을 허용한 게 아닌, 한국 문화를 공부하는 학부로 더 많은 학생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성별과 관계없이 신입생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남은 4년제 여대는 동덕여대, 이화여대 등 7곳이며, 전문대를 포함하면 모두 14곳이다. 상명여대는 1996년 남녀공학으로 전환돼 상명대로 바뀌었고, 성심여대는 가톨릭대와 통합된 바 있다.
이날 온라인에는 “동덕여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작성자 추적에 나섰다. 작성자는 소셜미디어 X(엑스·옛 트위터)에 도끼를 손에 든 사진과 함께 “다 찔러 죽여버릴테니 이딴 X같은 시위하지 마라. 저승에서나 해라”며 칼부림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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