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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래퍼 루피, 아직 보여주지 못한 100%의 결과물
뉴스| 2018-03-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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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사진=메킷레인 레코즈)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칠(Chill)한 음악을 하는 래퍼 루피입니다”

루피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레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만화 속 고무인간인 루피는 피부처럼 삶도 질기다. 그 어떤 위기도 “고무 고무”라는 한 마디와 함께 튕겨낸다. 힙합계도 고무인간인 루피처럼 유연한 래핑의 소유자가 있다. 바로 동명 래퍼 루피다. 원피스 루피는 바다를, 래퍼 루피는 무대 위를 항해한다. 그것도 폼 나게.

아직 대중에겐 낯선 래퍼인 루피는 힙합계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LA출신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메킷레인 레코즈의 든든한 맏형이자 자신만의 랩 플로우가 독보적인 래퍼다. 지난해 서태지가 직접 리메이크 앨범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했을 정도다.

“대중들이 랩이나 힙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대충 이해하기로는 ‘저항의식’ ‘삐뚤어진’ 이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보다 칠(Chill)한 음악을 하고 있어요. 산들바람 같은 음악이라고 보시면 돼요. 힙합 안에서 좀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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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킷레인 레코즈 아티스트(사진=루피 SNS)



■ “메킷레인 음악,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게끔 방법 찾을 것”

루피의 최근 곡들엔 어딘가 쓸쓸한 감성이 묻어난다. ‘지금 어디야’부터 ‘MOLLA’까지 방황하는 이를 포용하는 뉘앙스의 가사가 주다. 자세히 듣다 보니 이 모든 곡들에서 루피는 포용의 주체가 아닌 방황자로서 자신을 이입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쓸쓸한 감성을 사랑해요. 예전부터 그런 것들을 탐닉했죠. 슬픈 노래를 좋아하고 슬픈 영화를 좋아했어요. 슬픈 생각이 들었을 때 그걸 즐기기도 했죠. 그러한 먹먹한 감정을요. 그리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맞춰주는 거에 익숙하니까 혼자 있는 게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느꼈던 상실감이 있었어요. 한국이 어떠한 곳인지 이해하고 미국에 갔기 때문에 ‘철이 들지 말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자마자 모든 상황들이 나를 철들게 하더라고요”

메킷레인의 맏형으로서 루피의 책임감은 막중했다. 동생들을 책임져야겠다는 압박은 혼자만의 고민이자 숙제였다.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성에 대한 고민도 자연히 따랐다. 그에겐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나 많다.

“곡에 욕을 쓰면 19세 제한이 걸리잖아요. 그런데 저희의 주소비층은 어린친구들이에요. 그 친구들이 못 듣게 되면 수입이 절반으로 떨어지게 되는 거죠. 이런 고민을 하던 시기에 만든 노래가 이번 EP에 담겨있어요. 나플라가 EP를 듣더니 ‘되게 대중적이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디스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더라고요(웃음). 그런데 그걸 타이틀로 넣었어요. 내 음악성이 다른 노래에 숨겨져 있어도 타이틀이 다르면 그게 내 얼굴이 되잖아요. 최대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고민했어요. 회사 아트디렉터가 뻔하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노래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내 곡과 메킷레인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게끔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나 싶어요”

루피는 메킷레인을 위해 자신의 슬픈 감성도 일부러 삭혀야 했다. 자신의 행동이 메킷레인 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 놀라울 만큼 책임감과 생각이 멋진 아티스트다. 맨 땅에 헤딩하듯 한국에 입성한 그가 금세 언더그라운드 힙합계를 주도할 수 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타인이 루피라는 아티스트에 대해 네 가지 요소로 정리를 할 수 있다고 봤을 때 메킷레인 맏형이라는 게 떠오르잖아요. 그걸 벗어나려고 해보지 않았어요. 위로를 해주는 방법이 지인마다 달라요. 메킷레인 멤버들은 힘을 북돋아 주면서 이겨내라고 위로해주죠. 그래서 대놓고 울고불고 그러지 말자는 생각이 저변에 있어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슬픈 걸 배제하게 돼요. 정규앨범 때는 저 자신을 보여주려고 하는 생각을 하긴 해요. 이전 곡들은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시도해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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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사진=메킷레인 레코즈)



“여태껏 소리 위해서 가사 버려…정규앨범서 100%로 보여줄 것”

루피는 가사 지적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알고 보면 언어 1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다. 시 쓰는 게 취미일 정도다.

“소리를 위해서 가사를 버리는 스타일이었어요. 100%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곡을 만들면 소리와 가사를 동시에 챙기는 게 맞긴 해요. 그런데 여태껏 소리를 위해서 가사를 버렸죠. 가령 어젯밤에 맥주를 마셨는데 소주 어감이 좋으면 소주를 마셨다고 써요. 이런 걸 보면 힙합하는 분들이 뭐라고 해요. 그런데 난 내가 들었을 때 좋은 소리가 중요해요. 그래서 다른 래퍼들과 의견이 안 맞을 수 있어요.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영어를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노래가 좋아서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소리가 이런 발음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 그렇게 집어넣었죠. 또 그 소리를 내기 위해 일부러 가사를 끼워 넣기도 했어요. 그래서 가사를 못 쓴다는 평이 많아요. 사실 가사에 자신 있어요. 원래 좋아했던 아티스트가 타블로였어요. 나도 글 쓰고 시 쓰는 걸 좋아했죠. 미국에 가서 변했어요. 외계어로 가사를 써도 올바른 리듬을 가지면 흑인친구들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만들 때 들려지는 소리에 집중하게 됐어요. 정규앨범을 통해 소리, 가사까지 완벽한 내 음악을 들려드릴 거예요. 올해 가을 쯤 발매할 예정입니다”

루피는 아직 자신의 100%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로 넘친다.

“노래가 좋아서 남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랩을 잘하는 래퍼보다 음악이 좋은 아티스트요. 사실 스스로도 루피라는 아티스트의 궁극이 궁금해요. 내가 정말 좋은 음악을 만들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해요. 얼마 전에 나플라와 유재하 노래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한국말을 할 줄 알아서 이 노래를 한국인 정서로 100% 이해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댓글이 있더라고요. 그런 말을 듣고 싶어요. 누군가한테 그런 음악을 남기고 싶습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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