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플레이백] ‘흉부외과’ 엄기준, 두 얼굴의 역사
뉴스| 2018-10-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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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흉부외과'(왼쪽) 연극 '아트'의 엄기준(사진=SBS,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배우 엄기준이 두 얼굴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엄기준은 현재 방영 중인 SBS 수목드라마 ‘흉부외과: 심장을 훔친 의사들(이하 흉부외과)’에서 최석한을 맡아 열연 중이다. 석한은 극 중 태산병원 흉부외과의 부교수로, 수많은 사람을 살렸으나 정작 자신의 딸은 잃은 인물이다. 지난해 방송한 ‘피고인’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악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엄기준이기에 ‘흉부외과’ 속 최석한의 모습이 새롭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엄기준의 이중생활이 포착됐다. 바로 무대 위에서다. 지난달 7일 개막한 연극 ‘아트(Art)’에도 출연하며 드라마 촬영과 공연을 병행하고 있는 것. 허영과 오만 때문에 우정이 무너지는 15년 지기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아트’에서 엄기준은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세르주를 연기한다. 잘난 체하고 다소 신경질적인 캐릭터의 성격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덕분에 ‘흉부외과’ 속 엄기준과는 180도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엄기준은 ‘흉부외과’와 ‘아트’에 앞서 줄곧 안방극장과 대학로를 종횡무진 활약해왔다. 이에 엄기준이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각각 선보인 두 얼굴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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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드림하이'(왼쪽) 뮤지컬 '삼총사'의 엄기준(사진=KBS, 엠뮤지컬컴퍼니)



■ 드라마 ‘드림하이’ 속 문제 교사 VS 뮤지컬 ‘삼총사’ 속 청년 달타냥

엄기준은 2011년 초 KBS2 드라마 ‘드림하이’와 뮤지컬 ‘삼총사’를 함께했다.

‘드림하이’에서 엄기준은 4년 연속 교원평가 최하위에 빛나는 기린예고의 문제 교사 강오혁을 맡았다. 학창 시절 가수 데뷔를 포기하고 교사가 돼 독기도, 근성도 없이 살던 괴짜 선생으로 ‘드림하이’의 주인공들이 모인 특별반의 담당 교사가 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학생들의 성장을 도와주며 스스로의 마음가짐도 달라진 것. 이 과정에서 엄기준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가 극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었다.

동시에 무대에서는 ‘삼총사’의 달타냥으로 변신했다. 달타냥은 엄기준의 배우 인생을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하나로, 왕의 총사가 되기 위해 파리에 온 프랑스 시골 청년이다. 엄기준은 여기서 정의감과 의욕이 넘치는 달타냥으로서 ‘드림하이’에서와는 정반대의 에너지를 발산했다. 특히 극 중 삼총사 역의 배우 유준상·민영기·김법래 등과 남다른 호흡을 자랑해 뮤지컬 팬들 사이에 ‘엄유민법’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이들의 인연은 계속돼 올해 ‘삼총사’ 10주년 공연에 함께 오름은 물론, 최근까지도 합동 콘서트를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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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여인의 향기'(왼쪽) 뮤지컬 '잭더리퍼'의 엄기준(사진=SBS, 엠뮤지컬컴퍼니)



■ 드라마 ‘여인의 향기’ 속 츤데레 의사 VS 뮤지컬 ‘잭더리퍼’ 속 미스터리 의사

2011년 여름, 엄기준은 TV와 무대에서 정반대 성향의 의사를 연기했다.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와 뮤지컬 ‘잭더리퍼’를 통해서다.

‘여인의 향기’에서 엄기준은 여자 주인공 이연재(김선아)를 짝사랑하는 종양내과 의사 채은석을 맡았다.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를 지녔으나 지나치게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환자들은 물론, 동료들과도 좀처럼 친해지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은석이 유일하게 호감을 느낀 상대가 바로 연재였다. 연재와의 만남 전 인사말만 수차례 연습하는 은석의 모습은 당시 안방극장에 설렘을 선사했다. 동시에 은석의 순애보를 절절히 그려낸 엄기준의 표현력은 시청자들과 공감대도 형성했다.

‘잭더리퍼’의 외과의사 다니엘은 은석과 정반대의 캐릭터였다. 장기이식 연구용 시체를 구하던 중 시체브로커 글로리아와 사랑에 빠진 다니엘은 이로 인해 살인마 잭과 거래한다. 이로써 런던을 공포에 빠트린 연쇄살인사건의 키를 쥐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다니엘은 글로리아와 함께할 때는 로맨티스트 면모를,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카리스마를 보여야 했다. 엄기준은 이러한 인물의 이중성을 제대로 소화하며 ‘잭더리퍼’의 초연부터 가장 최근의 2016년 공연까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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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유령'(왼쪽)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엄기준(사진=SBS, 샘컴퍼니)



■ 드라마 ‘유령’ 속 냉정한 살인마 VS 뮤지컬 ‘CMIYC’ 속 귀여운 사기꾼

2012년 상반기의 엄기준은 SBS 드라마 ‘유령’과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통해 극명한 온도 차를 보여줬다.

‘유령’의 조현민은 엄기준의 드라마 대표 캐릭터 중 하나로, 그의 악역사(史) 시초가 된 인물이다. 극 초반 냉철한 사업가로 그려졌던 현민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점 실체가 드러나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유령’ 속 사이버 수사대가 쫓았던 모니터 뒤 살인마 팬텀이 바로 현민이었던 것. 이 같은 설정이 더욱 반전으로 다가왔던 데는 엄기준의 공이 컸다.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잔혹성을 대외적으로 완벽히 숨기며 살아가는 현민의 철두철미한 모습을 완벽히 소화한 덕분이다. 특히 ‘유령’은 현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을 그리며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드라마 밖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무대에 오르면 엄기준은 발랄한 사기꾼이 됐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1960년대 실존한 희대의 사기꾼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이다. 엄기준의 역할은 주인공 프랭크였다. 상대를 홀리는 말재간과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성격이 특징인 인물. 이에 엄기준은 ‘유령’과는 정반대로 연기에 한결 힘을 덜어내며 프랭크의 매력을 제대로 표현했다. 당시 프랭크 역에는 슈퍼주니어 규현과 키가 캐스팅됐는데, 엄기준 역시 아이돌 못잖은 귀여움으로 무대를 사로잡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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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피고인'(왼쪽)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엄기준(사진=SBS, '몬테크리스토' 공식 홈페이지)



■ 드라마 ‘피고인’ 속 뒤바뀐 운명 VS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속 뒤바뀐 인생

지난해 초 SBS 드라마 ‘피고인’과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 출연한 엄기준은 두 작품에서 한순간에 뒤바뀐 인생을 사는 캐릭터로 열연을 펼쳤다.

‘피고인’은 엄기준의 도전정신이 빛난 작품이다. ‘피고인’을 통해 1인 2역에 나섰기 때문이다. 극 중 엄기준이 연기한 쌍둥이 형제 차선호·민호는 재벌 2세 캐릭터들로,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장남 선호가 예의바르고 겸손한 인물로 자란 반면 차남 민호는 형에 대한 열등감으로 어긋나 버린 것. 이에 민호는 원하는 것을 얻고자 형을 죽이고 그의 인생을 대신 살기까지 한다. 이에 따라 엄기준은 극 초반 선호와 민호를 각각 연기함은 물론 중반부터는 선호인 척하는 민호까지 소화해야 했다. 특히 잘못된 선택 이후 피폐해지는 민호의 복잡한 내면을 실감나게 그리며 악역이지만 시청자들의 연민을 부르기도 했다. 엄기준에게 ‘2017 SBS 연기대상’ 올해의 캐릭터상을 안겨준 캐릭터이기도 하다.

한편 ‘몬테크리스토’에서는 누명으로 뒤바뀐 인생을 사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엄기준은 타이틀 롤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맡았는데 그는 과거 전도유망한 선원이었다. 원래 이름은 에드몬드 단테스로 연인 메르세데스와 결혼을 앞두고 억울한 누명을 써 지하감옥에 갇히게 됐다. 14년이 흐른 뒤 감옥에서 탈출한 에드몬드 단테스는 신분을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바꾼 뒤 복수를 시작한다. 약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엄기준은 변화무쌍한 매력을 보여준다. 극 초반 희망찬 에드워드 몬테스를 연기하는 엄기준은 부드럽다. 그러나 악당들의 음모에 좌절하고 감옥에 갇히면서 급격히 돌변한다. 자칫 이질적일 수 있는 캐릭터의 변화를 매끄럽게 느껴지게 만드는 이가 바로 엄기준이었다. ‘몬테크리스토’의 초연부터 자리를 지킨 비법이기도 하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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