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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중독의 편파야구 Just For Twins!] ‘목런’은 가고, '김잠실'이 온다!
뉴스| 2014-10-28 22:57
29일 경기 결과: 넥센(1승 1패) 2-9 LG(1승 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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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닝 1실점 10K의 눈부신 역투를 보여준 신정락. 그는 이날 20승 투수 벤 헤켄과 서로 10개씩 탈삼진을 주고받는 명품 투수전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겼다!

INTRO - 강인한 혼이 육체를 지배한다

8회 초 대거 6득점에 성공하며 스코어 차이를 8-1로 벌린 상황. 타석에는 포수 최경철이 들어섰다. 최경철은 이미 이 회 선두타자로 등장해 안타를 날리며 대량 득점의 발판을 닦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대주자를 냈어야 했으나, 양상문 감독은 최경철을 1루 주자로 밀어붙였다. 한 점 차 박빙의 상황이었지만 빠른 주자로 얻는 이득보다 주전 포수 최경철을 잃는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한 듯했다.

하지만 8회 최경철이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을 때의 상황은 앞선 타석과 많이 달랐다. 트윈스는 8회를 빅 이닝으로 만들며 점수 차이도 넉넉해졌다. 최경철이 편하게 아웃 돼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정도의 분위기였다.

상대팀 투수 김영민이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최경철 몸 쪽에 붙였다. 순간 필자는 ‘어, 위험한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때 필자의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벌어졌다. 최경철이 꿈쩍도 하지 않고 그 공을 허벅지에 맞아버린 것이다.

투혼이 있는 선수들이 몸쪽 공을 피하지 않고 맞는 일은 종종 있다. 하지만 8회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불같은 강속구가 허벅지를 향해 직통으로 날아온다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움찔이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몸의 반응이다. 하지만 최경철은 그 조금의 움찔도 하지 않았다. 그는 태연히 강속구를 ‘퍽’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하게 맞았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1루를 향해 뛰었다.

인간의 정신이, 강인한 혼이 육체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최경철의 정신, ‘살아나가겠다’는 혼은 이미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져야 하는 반사신경마저 억누른 듯 보였다. 그의 강한 이기겠다는 열망이 TV화면을 뚫고 나왔다. 이런 선수가 안방을 지키는 한 트윈스의 홈 플레이트는 절대 약할 수 없다. 꼴찌에서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참 많은 선수들이 열정과 노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필자의 마음에 2014시즌 트윈스의 MVP는 강인한 혼으로 육체마저 지배하는 이 서른 네 살의 노장 최경철이다.

최고의 선수 - 기다림으로 꽃피운 두 명의 영웅
기다린다는 것.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기다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지만 야구선수에게는 ‘터지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 계기를 찾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갖춰도 그 재주를 채 꽃 피우지 못하고 사라진다.

기다림의 과정은 혹독하다. 1, 2년 기다리는 것 정도는 참을 수 있는데 그 기간이 3년을 넘어가면 보는 이들이 지친다. 팬들의 비난이 가중되고 그 선수를 기용하는 감독도 싸잡아 욕을 먹는다. 선수는 위축되고, 터지는 계기는 더 찾아오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좋은 감독은 ‘이 선수는 터진다’는 확신이 있을 때 뚝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야구감독은 때때로 비상식적인 일도 서슴지 않고 해야 한다”는 김성근 감독의 주장도 이런 맥락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기다릴 수는 없다. 그래서 감독에게는 뛰어난 자질의 선수를 간파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

29일 트윈스의 승리는 신정락과 스나이더 두 선수가 이끌었다. 신정락은 2010년 전체 1순위로 입단한 기대주였다. 사이드 암 투수이면서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공과, 마구에 가까운 커브 궤적을 가진 신정락은 누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신정락은 쉽게 터지지 않았다. 지난해 비로소 선발투수로 9승을 올리며 제 자리를 찾나 싶었지만 올해 또 다시 부상 악몽에 시달리며 단 1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29일 신정락은 그 오랜 기다림의 결과를 눈부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날 신정락은 마치 우주에서 온 괴물처럼 공을 던졌다. 그의 커브 궤적은 놀라울 정도로 홈플레이트 좌우를 휘저었고, 뱀처럼 꿈틀대는 직구는 포수 미트에 ‘펑펑’ 소리를 내며 꽂힐 정도로 힘이 있었다. 이날 그가 7이닝을 던지면서 맞은 안타는 고작 두 개. 삼진은 무려 10개나 솎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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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스의 가을 사나이로 등극한 스나이더. 그는 이날도 극단적인 '스나이더 시프트'를 뚫고 두 개의 안타와 두 개의 타점을 올리며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연일 놀라운 맹타로 포스트 시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브래드 스나이더도 마찬가지다. 조시 벨의 대체 선수로 7월 한국 땅을 밟은 그는 타율이 ,210에 머무르는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은 그를 기다렸고 그는 포스트 시즌에 홈런 두 개를 포함해 연일 장타를 터뜨리며 그 기다림에 보답했다. 그 오랜 인고의 시간들이 마침내 트윈스에게 승리의 열매를 선사하고 있다.

OUTRO - 목런 VS 김잠실, 우리의 고향으로 가자!
목동과 잠실, 두 야구장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선수들에게 ‘경기장의 영향’을 가장 크게 미치는 곳이다. 목동은 ‘목런’이라 불릴 정도로 홈런이 많이 쏟아지는 타자 친화형 구장이다. 반면 잠실은 가장 적은 홈런 개수를 자랑하는(응?) 투수 친화형 구장이다.

목런의 위력은 29일에도 실감했다. 7회 넥센 유한준이 때린 홈런은 잠실이었으면 충분히 중견수가 잡을 수 있는 공이었다. 하지만 구장은 구장일 뿐, 외부 환경을 변명의 여지로 삼아서는 안 된다. 넥센이 리그 최고의 대포 군단이 된 것에 목동 구장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반대로 트윈스가 리그 최고의 불펜을 보유하게 된 것 역시 최강의 투수 친화형 구장인 잠실의 덕이 없지 않다.

넥센에게 최강의 거포타자 ‘목런’이 있다면, 트윈스에게는 최강의 구원투수 ‘김잠실’이 있다. 목동에서 1승 1패를 하고 돌아온 것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이제 트윈스는 히어로즈를 홈인 잠실로 부른다. 목동에 비해 트윈스의 투수들이 상대팀 거포들을 한결 편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자! 잠실로! 이제 우리의 홈에서 다시 시리즈를 시작한다.

*수은중독: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만루 홈런을 보고 청룡 팬이 된 33년 골수 LG 트윈스 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두 자녀를 어여쁜 엘린이로 키우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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