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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대기 슈퍼 에이스가 되다-LAA 개럿 리차즈
뉴스| 2014-11-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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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에인절스의 개럿 리차즈

[헤럴드스포츠=김중겸 기자] 지난 8월 21일(한국시간). 보스턴과의 경기에 선발로 나선 개럿 리차즈는 2회말 브록 홀트를 1루 땅볼로 유도했다. 타구를 잡은 푸홀스는 2루 송구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아냈고, 1루 승부가 늦었다고 판단한 아이바는 1루가 아닌 3루로 공을 뿌렸다. 그런데 중계 카메라가 3루 베이스의 동향을 살피는 사이 펜웨이 파크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던 리차즈가 속도를 늦추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진 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들것에 실려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다음날 리차즈에게는 왼 무릎 슬개골 파열이라는 진단과 함께 6-9개월의 재활 기간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때는 8월, 사실상의 시즌 아웃 판명이자 올 시즌 에인절스의 운명을 바꾼 순간이기도 했다.

리차즈는 2009년 드래프트 1라운드 42순위로 LA 에인절스에 입단했다(FA 자격을 얻어 뉴욕 메츠로 이적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즈에 대한 샌드위치 픽이었다). 대학 입학 당시 팀의 마무리 투수로 기용될 만큼 빼어난 구위를 지니고 있었으나, 제구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또한 디셉션 동작에 약점을 안고 있어 상대 타자가 구질을 알고 칠 것이라는 혹평이 따르기도 했다. 리차즈의 오클라호마 대학 시절 통산 평균자책점은 6.57이었으며, 대학시절 3년간 단 한 차례도 6.00 이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에인절스가 1라운드 샌드위치 픽을 리차즈에게 사용했던 것은 대학 시절 막판의 활약과 더불어 빠른 팔 스피드에서 나오는 최고 구속 98마일의 강속구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드래프트 당시 189cm, 98kg의 다부진 체격도 에인절스가 그의 성장가능성을 높게 본 배경이었다(현재 그의 키는 조금 더 자란 192cm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과 일치한다). 2009년은 스트라스버그가 드래프트에 나와 1순위로 지명됐던 해(25순위-트라웃). 이듬해 메이저리그에 데뷔 한 스트라스버그가 이미 완성형의 투수였다면, 리차즈는 미완의 대기였던 셈이다.

리차즈는 구단의 기대에 부응하며 승승장구했다. 드래프트 지명 후 루키리그에서 3승 1패 평균자책점 1.53을 기록했으며, 이듬해인 2010년 딜리버리 과정에서의 디셉션 동작을 보완하며 싱글 A와 상위 싱글 A에서 12승 5패 3.5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듬해 더블 A에서 시즌을 시작한 리차즈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메이저리그 데뷔전의 기회를 잡았다. 2011년 8월 10일은 당초 팀 내 에이스 제레드 위버의 등판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소시아 감독은 닷새 전 127구를 던진 위버에게 휴식일을 더 챙겨주기로 결정했고, 로테이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리차즈를 마이너리그에서 콜업 시켰다. 리차즈의 데뷔전 무대는 양키스타디움. 결과는 그랜더슨에게만 홈런 2방을 허용하는 등 5이닝 6실점 패배였다. 리차즈는 한 차례 선발등판에 더 나선 후 마이너리그로 강등됐지만, 9월 확장 로스터 때 다시 메이저리그로 올라와 시즌을 마감했다. 첫 해 성적은 7경에 등판해 2패 5.79. 하지만 그 해 더블 A에서 12승 2패 평균자책점 3.15를 기록한 리차즈는 미래를 기약하고 있었다. 시즌 후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그를 팀 내 유망주 3위에 올려놓았다(1위-마이크 트라웃).

2012년, 트리플 A에서 시즌을 시작한 리차즈는 14경기에서 7승 3패 4.2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뒤 5월 말 메이저리그에 재 입성했다. 두 경기 만에 선발 기회를 얻었으나, 선발로 나선 마지막 5경기에서 무려 26실점을 내주는 부진 속에 불펜으로 강등된 뒤 시즌을 마감했다. 9이닝 당 4.3개의 볼넷 개수에서 알 수 있듯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제구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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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아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리차즈


2012년 푸홀스, 윌슨에 이어 지난해 해밀턴을 영입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한 에인절스는 시즌 초반부터 추락을 거듭했다. 시즌 첫 10경기에서 단 2승에 그치며 출발부터 삐걱댔으며, 전반기의 마지막 날 선두와의 격차는 이미 10경기 이상 벌어져있었다. 일찌감치 포스트시즌 경쟁에서 뒤쳐진 가운데, 현지에서는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는 리차즈에게 기회로 다가왔다. 리차즈는 당시 최악의 부진에 빠진 조 블랜튼을 대신해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메이저리그의 신성이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선발로 나선 17경기에서 기록한 성적은 6승 6패 평균자책점 4.18이었다(시즌 47경기 7승 8패 4.16). 압도적인 활약은 아니었으나,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는 성적이었다. 리차즈는 올 시즌 스프링캠프부터 소시아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풀타임 첫 선발 시즌을 준비했다. 팀 내 에이스인 제레드 위버는 리차즈를 젊은 시절의 A.J. 버넷을 보는 것 같다는 말로 표현하며 그의 활약을 예고하기도 했다.

4선발로 올 시즌을 시작한 리차즈는 첫 두 경기에서 12이닝 1실점의 호투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그의 질주는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됐다. 리차즈의 올 시즌 성적은 13승 4패 평균자책점 2.61. 지난 2년간 거둔 자신의 통산 승수인 11승보다 2승을 더 챙겼으며, 한 달 일찍 시즌을 마감했음에도 규정이닝을 채우며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메이저리그 전체 10위에 올랐다. 168.2이닝을 던지는 동안 허용한 피홈런은 단 5개로, 9이닝 당 피홈런 0.3개는 메이저리그 전체 1위 기록이었다. 좋은 신체조건과 수준급의 구위를 지니고 있던 그의 활약은 많은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상황. 그렇다 해도 올 시즌의 성장은 당초 기대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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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패스트볼 평균 구속 2위를 기록한 리차즈


올 시즌 리차즈는 포심, 투심, 슬라이더 그리고 커브의 기존 레퍼토리를 고수했다. 특별한 구종 추가 없이 에이스 반열에 올라 선 것이다. 일단 눈에 띄는 변화는 패스트볼의 구속 증가다. 올 시즌 그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6.3마일로, 요다노 벤츄라에 이어 메이저리그 전체 2위에 올랐다. 흥미로운 점은 불펜으로 훨씬 많은 경기를 소화한 지난해에 비해 평균 구속이 증가했다는 점으로, 지난해 리차즈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4.8마일 이었다.

구속 상승은 자연스레 슬라이더의 위력 배가로 연결됐다. 지난해까지 리차즈를 둘러싼 가장 공공연한 평가는 겉으로 드러난 성적이 그의 스터프에서 비롯되는 구위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은 그의 미천한 경험과 불안한 제구 그리고 강력한 패스트볼-슬라이더 조합에 어울리지 않는 숫자인 9이닝 당 6.3개의 탈삼진 개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본인의 구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약 1.5마일의 구속 상승은 리차즈의 고민을 한결 덜어줬다. 올 시즌 리차즈의 9이닝 당 탈삼진 개수는 8.8개. 지난해에 비해 약 40%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특히 전체 개수의 50%가 넘는 삼진을 슬라이더로 잡아냈으며, 슬라이더 피안타율 역시 지난해의 .212에서 .155까지 떨어뜨렸다. 패스트볼의 구속 증가로 상대적으로 타석에서의 여유가 짧아진 타자들은 리차즈의 슬라이더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슬라이더는 리차즈의 최대 약점인 좌타자 상대에 관한 해법을 제시해줬다. 여기에는 투구판의 위치를 변경한 것도 도움이 됐다. 그동안 대부분의 우투수처럼 3루 쪽 투구판을 밟고 투구에 임했던 리차즈는 지난 시즌 중반 이후 밟는 투구판의 위치를 1루로 옮긴 후 올 시즌에도 같은 위치에서 투구를 시작했다. 통상 슬라이더의 횡적 무브먼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좌타자를 상대하는 우투수는 3루쪽 투구판을 밟고 투구에 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리차즈의 슬라이더는 횡과 종적 움직임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해 슬라이더의 횡적 움직임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좌타자의 몸 쪽을 보다 집중 공략함과 동시에, 커맨드에 약점이 있는 본인의 상황을 인정하고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파고드는 과정에서의 실투를 줄이기 위해 투구판을 밟는 위치를 바꾼 것이다.

실제 지난해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 .281을 기록했던 리차즈는 올 시즌 .188라는 대단히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좌타자를 상대로 기록한 .114의 슬라이더 피안타율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리차즈의 슬라이더에 대한 좌타자들의 헛스윙율은 지난해 33.1%에서 올 시즌 45.4%로 수직 상승했다. 이에 결정구에 자신감이 생긴 리차즈는 지난해와 비교해 2스트라이크 이후 삼진율은 높이고(35.9%→45.4%), 피안타율은 낮추는(.212→.151) 파생 효과까지 만들어냈다. 이와 더불어 투구판 위치의 변경으로 우타자 몸 쪽으로 파고드는 투심은 그 궤적이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올 시즌 비중을 높인 커브는 패스트볼과 최대 23마일의 격차를 보이며 상대 타자들의 타이밍을 손쉽게 빼앗았다(커브 피안타율 .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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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밖의 부상, 하지만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에인절스는 디비전시리즈에서 캔자스시티에 3연패를 당하며 허무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리차즈의 공백이 아쉬웠으나 완패의 이유는 철저히 타선의 침묵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즌 내내 에이스 역할을 해낸 그의 공백은 소시아 감독이 3인 로테이션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됐으며, 이는 팀 내 선발진뿐만 아니라 로스터에 합류한 모든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리차즈 본인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한 해였다. 유망주의 틀을 깨고 최고의 한 해를 만들어 나갔으나, 마지막 순간 예기치 못한 부상은 포스트시즌 경험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빼앗아 갔다. 다행스럽게도 내년 시즌 초반 결장도 예상됐던 리차즈는 시즌 개막과 함께 그라운드로 돌아올 수 있을 전망이며, 그의 올해 나이는 불과 스물 여섯으로 본인의 잠재력을 꽃 피울 시간은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물론 리그에서 가장 많은 22개의 폭투를 기록하는 등 특급 투수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제구를 보완해야 하는 난관도 남아있다. 올해가 풀타임 첫 선발 시즌이었음을 감안하면, 올 시즌 성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내년 시즌 올해 못 다 이룬 꿈을 펼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LA 에인절스의 떠오르는 신성, 내년이 더욱 기대되는 슈퍼 에이스 개럿 리차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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