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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타타라타] 프런트(front)
뉴스| 2014-11-08 06:50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런트로 불리는 MLB의 브랜치 리키(미국, 1881~1965)는 1947년 메이저리그에 재키 로빈슨을 사상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데뷔를 시켰다. 이뿐 아니다. 스프링캠프의 체계적 훈련, 배팅 케이지, 피칭머신을 정착시켰고, 배팅 헬멧 보급화도 이끌었다. 팜 시스템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고, 새로운 통계법을 제시하고, 어린이에 대한 무료입장 마케팅도 처음으로 시도했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많은 야구문화가 그에게서 비롯됐다. 선수(포수)로는 한 경기에 13번의 도루를 허용하는 등 신통치 않았으나 프런트로는 위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구단 경영자로 1967년 명예의 전당(HOF)에 헌액됐고, 1992년부터 그를 기리기 위한 '브랜치 리키'상이 제정됐다(지난해 LA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가 역대 최연소로 이 상을 받았다). ‘야구계의 링컨’, ‘야구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별명이 괜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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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래프트 데이>(2014)에서 성공적인 드래프트를 위해 열변을 통하는 NFL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단장 써니(케빈 코스트너). 미국에서는 이런 사람이 프런트다.

#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롯데 프로야구단에 대해 조사를 착수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선수단이 묵는 호텔의 폐쇄회로(CC)TV를 통해 소속 선수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끝에 드디어 국가 기관까지 나선 것이다. 롯데의 ‘프런트 야구’가 스포츠 영역을 넘어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됐다. 이에 앞서 롯데 야구단의 주요 간부들이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리스트에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롯데 내분은 시끄러웠다. 몇몇 야구기자에게 물어보니 한국형 프런트 야구는 롯데만의 문제도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현실의 일부라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정도의 '프런트 야구 해프닝'도 지천이란다. 따지고 보면 스포츠, 그리고 그 돈줄인 기업문화는 정치 영역에 비해 훨씬 더 권위적인지 모르겠다.

#같은 날 KLPGA 대회가 열린 김해의 한 골프장. 한 골프단의 프런트(그래 프런트다!)가 남몰래 소속선수의 캐디를 맡았다. 골프선수 출신도 아니고, 캐디 노릇에 대한 남다른 전문성이나 열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단지 로프 안으로 들어가 캐디를 한 번 해보면 보다 선수나 캐디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도전한 것이다. 퍼팅 조언 등 기술적인 것은 아예 하지도 못했고, 혹시나 다른 선수나 캐디에게 폐나 끼치지 않을까 사전에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수건을 페어웨이에 흘린 채 50m를 지나쳐 왔다가 급하게 뛰어가 다시 주어오는 과정에서 하늘이 노래졌다는 소감이 실감나게 들렸다.

#알고 보니 이 골프단은 이전에도 감독이 선수들의 백을 많이 맸다고 한다. 그리고 스카우트도 유명 선수들보다는 전성기를 지난 고참이나 신예 위주로 뽑았다. 또 한 번 뽑은 선수는 시드만 유지하면 계약을 연장한다. 심지어 캐디를 위해서도 캐디백을 정가보다 50~80% 비싼 맞춤형 제품을 쓴다. 처음에 골프계는 ‘너희들이 언제까지 그렇게 열정 하나로 잘 하나 보자’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데뷔 후 유독 우승운이 따르지 않았던 선수가 마침내 우승해 눈물을 쏟고, 흘러간 스타의 은퇴식까지 국내 최초로 열었다. 만 4년이 조금 못 됐지만 소속 선수도 20명을 넘겨 용품회사를 제외하면 국내 최대 규모가 됐다.

#사실 프런트(front)라는 말 자체가 한국에서는 좀 엉뚱하게 쓰인다. 원래는 호텔업 등 비즈니스 영역에서 ‘프런트 오피스 스태프’를 의미한다. 이것이 유독 미국에서는 프로스포츠계에서 '단장 등 주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In professional sports, the term refers to upper management of a club, such as the General Manager and other player personnel decision-makers. 위키피디아의 front office 설명 중). 그런데 이 프런트라는 말이 한국에서는 그냥 프로스포츠의 구단직원으로 널리 쓰인다. 하지만 콩글리시라고 멋쩍어 할 필요는 없다. 고맙게도 2004년 국립국어원이 ‘명사 <운동> 프로 축구나 프로 야구 따위에서, 구단의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신어(新語)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초급 영어단어인 이 프런트(구단직원)의 원래 뜻은 ‘앞[前]’이다. 프런트 수난시대를 맞아 ‘꿈보다 좋은 해몽’을 어설프게 시도한다. 프런트의 노릇은 경기에 간섭하거나, 선수들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고 원어 뜻 그대로를 살려 ‘스포츠의 좋은 문화를 맨 앞에서 선도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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