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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택 관전평] 고기 좀 더 먹으면 대성할 이재도, 진정해 로드
뉴스| 2015-02-06 06:57
5일 경기 결과: 부산 kt(20승 23패) 91-92 울산 모비스(32승 11패)

일곱 번째 관전평 만에 첫 연장 승부였습니다.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든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는데요. 함께 지켜보신 농구팬 여러분도 즐거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승패를 떠나 열심히 뛰어준 양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모르긴 몰라도 45분 풀타임을 소화한 양동근이나 상대의 집중 견제 속에 43분 이상 코트를 누빈 조성민 같은 선수들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체력 부담이 상당할 겁니다. 현역시절 고려대와의 농구대잔치 4강전(94-95시즌)이 생각나는데요. 당시 서른이 넘었던 제가 파릇파릇한 현주엽, 전희철 같은 후배들을 상대로 치열한 승부를 마치고 나니, 그 데미지는 꼬박 일주일을 가더군요. 도저히 힘들어서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보통 그정도 나이가 되면 젊은 선수들보다 회복 속도도 더디고 훨씬 힘들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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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결정적인 3점포 두 방으로 케이티와의 연장 접전에 마침표를 찍은 모비스 양동근.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이날 3쿼터까지 근소한 리드를 유지하던 모비스는 달아날 수 있는 상황에서 kt의 끈끈한 수비에 당황해 턴오버를 남발했고, 결국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막판 어려운 상황에서 양동근(21득점) 송창용(5득점) 등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3점포를 터뜨리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연장전에서도 역시 양동근이 3점슛 2방을 적중시키며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이 있죠. 어려운 상황에서 베테랑들의 활약은 결국 구력의 산물입니다. 양동근뿐만 아니라 비록 패하긴 했지만 kt 조성민(30득점 3점슛 6개 포함)이 승부처마다 상대의 견제에 아랑곳않고 외곽 득점을 터뜨릴 수 있었던 건 그만큼 큰 경기를 여러 번 치르며 쌓인 경험 덕분이었습니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비스라는 팀 역시 ‘고기 좀 먹어본 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연장 초반 연속 4득점을 내주고도 끝내 경기를 뒤집은 건 결국 모비스의 저력입니다. 모비스는 참 경기를 착실히 운영하는 팀입니다. 턴오버가 적고 항상 팀 평균기록과 견주어 큰 편차 없이 기복 없는 플레이를 펼치죠. 유재학 감독이 “우리 팀은 냉정히 말하면 4-5위권 전력”이라고 말했다지만 모비스가 이날처럼 막판까지 집중력을 요하는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고, 지금과 같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만큼 그의 지도력과 선수단 장악능력이 빚어낸 끈끈한 수비, 조직력, 성실함이 팀에 굳건히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김승현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모비스 선수들은 상대 스크린에 대처할 때 ‘파이트 스루’ 수비를 널리 사용합니다. 공격자와 스크리너 사이의 좁은 공간을 빠른 스텝으로 따라가는 이 수비는 얼핏 보기에는 쉬워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엄청난 훈련량을 필요로 합니다. 선수 입장에서 비교적 편한 ‘슬라이드’ 수비(스크리너 뒤로 쫓아가는 수비)는 두세 번 가르치면 곧잘 해내는데 반해 파이트 스루는 10번 가르쳐도 잘 못따라가는 선수들이 많죠. 그만큼 모비스 선수들은 훈련이 잘 되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잘 싸웠다 kt, 고기 좀 더 먹으면 대성할 이재도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이날 케이티 선수들, 정말 잘 싸워줬습니다. 전창진 감독이 입원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정신무장을 단단히 한 듯, 김승기 코치의 지휘 아래 명승부를 연출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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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기량이 급성장한 케이티 이재도는 경험이 더해지면 발전 가능성이 큰 선수다.

특히 이재도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득점은 많지 않았지만(9득점) 승부처에서의 가로채기(이날 총 5개), 전체적인 경기 운영 등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해줬습니다. 만약 이날 경기가 kt의 승리로 끝났다면 단연코 영웅은 이재도였습니다.

자꾸 고기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연장 막판 양동근과 이재도의 플레이를 비교해보면 결국 승부를 가른 ‘한끗’ 역시 고기를 많이 먹어본 선수인가, 아닌가의 차이였습니다. 이재도는 마지막 공격에서 돌파에 이은 레이업을 허공에 날렸고, 이전 수비에서는 작은 실수로 양동근에게 결승 3점포를 헌납했습니다. 김승기 코치도 경기 후 “(이)재도가 헬프 수비를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가는 바람에 3점슛을 맞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죠.

하지만 아직 2년차에 불과한 이재도에게 이날 경기는 분명 보약이 됐을 겁니다. 구력은 결국 경험입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것보다 한번 해봤던 게 쉽듯, 이날처럼 큰 경기를 자꾸 겪어봐야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게 됩니다. 위기관리능력을 갖춘 선수는 분위기에 휩쓸리기보다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섭습니다. 올시즌 기량이 급성장해 자신감을 얻은 만큼 기죽지 말고 꾸준히 경험을 쌓는다면 분명 이재도는 대선수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Calm down(진정해), 로드
모비스가 2연패 뒤 3연승으로 공동선두에 복귀한 반면 kt는 이날 아쉬운 패배로 6위 전자랜드에 한 게임 차 뒤진 7위로 주저앉았습니다. 최근 5경기 1승 4패로 분위기 반전이 절실한데요. 오는 20일까지 오리온스-인삼공사-LG-인삼공사-전자랜드-SK와의 그리 쉽지만은 않은 6연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즌 막판 체력적인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만만치 않은 일정을 맞게 된 케이티, 결국 얼마나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이 6연전을 잘 치러내느냐가 6강행을 결정짓는 키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특히 득점 루트의 다양화가 시급합니다. 조성민이 막혔을 때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비책이 필요하죠. 상대의 집중 견제 속에서 조성민 혼자 득점을 만들어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윤여권-오용준 등 슈터들이 지원사격에 나서야 하고 에너지가 좋은 김현민도 계속 궂은일을 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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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m down, 로드' 케이티의 6강행을 위해 로드의 꾸준한 활약은 절실하다.

오코사가 기대만큼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찰스 로드의 꾸준한 활약 역시 절실합니다. 이날 로드는 36분22초를 뛰며 25득점 7리바운드로 제몫을 해줬습니다. 라틀리프와의 매치업에서 꽤나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줬죠.

다만 한 가지, 승부처에서 마인드 컨트롤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날 로드는 3쿼터부터 파울트러블에 걸리고도 잘 버텨줬지만 결국 연장전 승부처에서 불필요한 파울로 코트를 비우고 말았죠.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 장면이었다는 점에서 ‘옥에 티’라 할만한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신장, 탄력, 기동력 등 흠잡을 데 없는 운동능력을 가진 로드입니다. 조금만 진정하면 더 할 나위 없겠네요. [전 중앙대 감독] (정리=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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