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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영의 골프장 人문학] - 올림픽 코스와 설계가 길 핸스
뉴스| 2016-01-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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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11월에 최종 완공된 올림픽 코스.


올림픽이 오는 8월 브라질 리우데자니이루에서 열린다. 여러 종목 중에서도 올해로 112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부활하는 골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여자 골프의 경우 세계 랭킹 2위인 박인비는 올해 최대 목표를 올림픽 출전에 두고 있을 정도다.

세계 여자 랭킹 톱10에 너덧명이 포진해 있는 만큼 한국이 메달을 딸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대한골프협회에서는 대표팀 사기 진작을 위해 금메달에 3억원, 은메달 1억5천만원, 동메달 1억원의 포상금을 걸었다.

대회 개최 9개월 여를 남겨두고 지난해 11월23일 완공된 하라 다 치추카 골프 코스는 리우 시 서부에 위치한 바람 많이 부는 해안가 코스다. 엄청나게 큰 워터 해저드를 2개나 품고 있고 페어웨이와 그린 주변에 벙커가 가득하다. 전 세계 골퍼들의 관심을 모을 이 코스를 설계한 이는 길 핸스(Gil Hanse 52)다. 그는 어떤 인물이고 이 코스는 어떻게 조성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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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 자연주의 코스 설계가 길 핸스.


자연주의적 미니멀리스트 설계가
길 핸스는 덴버 대학에서 예술 프로젝트로 학사(85년), 코넬대학에서 지형설계로 석사(89년)를 마쳤다. 코넬대에 다닐 무렵 돔 도크의 미시간주 트래버스시의 르네상스골프디자인에서 디자인 파트너로 일했다. 그러다가 설계 관련 아이디어 제전에 응모해서 큰 상(윌리엄 프레데릭 드리어상)을 받으면서 영국에서 1년간 공부할 수 있는 장학 혜택을 받게 된다. 핸스는 그 기간 영국에서 유럽 최고의 설계 명성을 가진 호트리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미국의 톰 도크와 유럽의 마틴 호트리는 현대 코스 설계의 가장 대표적인 거장들이다. 그들과 함께 지내며 경험을 쌓은 한스는 93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멜번에서 핸스골프코스디자인을 독립해 설립했다. 그리고 2년 뒤에 지금은 부사장으로 있는 짐 와그너가 합류했다.

핸스는 캐슬 스튜어트 골프링크스, 러스틱 캐년(Rustic Canyon), 중국에는 TPC베이징, 멕시코에서는 케렌시아 등 유명 골프장을 설계했고, 리노베이션은 보스톤 골프클럽, LA컨트리클럽 등 전통 코스를 주로 했다. 부동산 재벌로 대통령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인수한 캐딜락챔피언십 개최지인 플로리다주 도럴의 블루몬스터 코스도 리모델링 했다.

핸스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국내에는 에머슨골프클럽(옛 중앙CC)의 코스 리노베이션을 맡았고, 안면도에는 계획상으로는 내년 완공 예정인 코스를 설계하고 있다.

핸스가 기존의 유명 선수 출신 설계가와 다른 점은 디테일에 있다. 불도저로 큰 틀을 조성하면 삽으로 세부작업을 다듬는 것까지 감리한다. 그렇게 파이널 터치를 통해 설계자의 작품이 드러나게 된다고 믿는 설계의 미니멀리스트다. 그래서 벙커의 끝처리 하나도 예사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벙커 에지의 거친 듯한 모습을 살려내는 데서 자연스러움이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한 체계다. 그래서 나의 코스 디자인은 반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모든 코스는 같은 홀이 하나도 없다.”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그의 철학이다.

미니멀리스트인 핸스는 전통주의자이기도 하다. 핸스가 이상으로 여기는 코스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다. “올드 코스는 자연친화적이면서 골프의 재미와 도전정신을 모두 느끼게 하는 곳이라서 라운드 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또한 ‘골프 설계의 아버지’로 불리며 오거스타내셔널을 설계한 알리스터 매킨지, 파인허스트 리조트코스의 설계자 도널드 로스, 초창기 미국 코스의 토대를 닦은 찰스 블레어 맥도널드에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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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올림픽이 열리는 리우의 코스 맵


우여곡절 거친 올림픽 코스
골프가 올림픽 종목으로 개최된다고 발표되면서부터 설계가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설계 유치전이 벌어졌다. 골프 황제 잭 니클라우스와 안니카 소렌스탐이 손을 잡았다. 그러자 호주의 백상어 그렉 노먼은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와 팀을 이뤘다. 남아공의 게리 플레이어와 호주의 피터 톰슨은 캐리 웹, 로스 프렛과 공동으로 설계 신청을 냈다. 선수 출신 설계가 뿐만 아니라 톰 도크, 마틴 호트리,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 등 명성 있는 전문 코스 설계가들은 올림픽코스 설계에 응모했다.

내로라하는 선수와 설계가들이 응모한 것은 올림픽 코스 설계가로 선정되면 설계비 이상의 프리미엄을 보장받는 것은 물론 2020년 올림픽 코스 설계에서도 우선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길 핸스가 최종 선정됐다. 그의 자연주의적 코스 조성, 미니멀리즘적 친환경 설계 등이 IOC 운영진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2년 올림픽 코스에 응모할 때 그의 설계철학은 IOC위원들을 움직였던 자연미의 극대화에 있었다. 그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원래의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연은 바꿀 수 없으니 그 안에서 골프를 즐기는 재미와 적당한 도전 욕구, 그리고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코스를 만드는 게 내 목표다. 올림픽 코스 선정위원들 앞에서의 프리젠테이션에서 나는 ‘핸즈 온 매니지먼트(모든 과정을 직접 지휘하는 방식)’를 한다는 걸 강조했고, 결국 심사위원들은 기존 환경을 많이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자연친화적인 미니멀리즘을 인정해준 것 같다.”

핸스는 올림픽 코스를 설계하면서 이후의 활용도까지도 중시했다. 통상 올림픽이 열리는 스타디움이나 각종 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난 뒤 크게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골프코스는 올림픽 이후에도 일반인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코스 조성에 역점을 둔 것이다. 따라서 이 코스는 대회용 남녀 컴피티션(Competition) 코스와 나중에 일반인들이 사용할 레가시(Legacy) 코스로 나뉘며 티잉그라운드는 총 5개씩 조성된다.

리우시 서부의 바하 다 치주카 지역에 조성된 면적 97만㎡의 올림픽 코스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환경단체들은 골프장 건설로 근처에 있던 5만8500㎡ 넓이의 공원이 사라졌다면서 ‘누구를 위한 골프장인가?’ ‘골프장을 점령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채 수개월째 시위를 벌였다.

환경단체들은 골프장이 건설되면 오·폐수가 흘러나와 인근 과나바라 만의 수질을 더욱 오염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리우 올림픽에서 요트와 조정 등 수상 경기가 열리는 과나바라 만은 그렇지 않아도 수질오염 문제 때문에 논란이 돼 왔다.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뤄졌다. 땅이 걸려 있으니 부동산 등 매매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공사 허가도 제때 나오지 못했다. 환경단체와 이권단체들의 반대도 심했다. 설계도안을 마치고도 설계변경의 요구와 늦어지는 공사 부진에 시달렸다.

나중에 핸스는 “디자인을 두고 많은 변화를 요구했기 때문에 완벽하게 진행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온전하게 지켜낸 것이 자랑스럽다”고까지 했다. 한 때 지방 환경 단체는 생태 보호지역에 불법적으로 골프 코스가 세워지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이들은 골프장 설계를 변경해 12, 14, 15번 홀을 옮기고, 400m 넓이의 야생동물 통행로 확보를 주장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브라질 법원은 “이미 1개 홀의 위치를 변경했기 때문에 생태계 보호가 충분히 이뤄진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골프장 건설을 중단할 만한 사유가 더 이상 없다”며 건설 중단 요구 소송을 기각했다. 판결 직전 70%였던 공사 진행률은 급물살을 탔고, 마침내 대회를 9달 앞둔 지난해 11월 말에야 완공됐다. 그리고 지금은 솜털같은 잔디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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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파3 인 17번 홀.


후반 15~17번에서 버디 싸움
올림픽 코스는 곳곳에 수많은 벙커가 자리잡고 있으며, 페어웨이도 전체적으로 좁은 편이다. 바닷바람까지 강하게 불어온다. 전장은 그리 길지 않다. 남자들이 경합할 홀은 파71에 7226야드 전장이고, 여자는 파71에 6494야드다.

코스는 가운데 큰 호수를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레이아웃이다. 2, 3, 5번 홀에서는 바람 부는 옆으로 그린이 들어 있어서 난이도가 높다. 15, 16번 홀은 파4 홀이지만 전장은 413야드, 306야드라서 원온을 시도할 수 있는 이른바 드라이버블(Drivable) 홀이다. 파3인 17번 홀도 챔피언티에서 143야드에 불과하다. 각 나라의 최고 선수들이 출전하는데 올림픽 코스치곤 너무 쉽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올림픽이 열리는 코스는 포용성이 있어야 한다. 가장 난이도를 어렵게 코스 세팅해서 선수들을 괴롭히는 게 US오픈이고, 한 여름에 무더위와 싸우도록 하는 게 PGA챔피언십이고, 바닷바람이 늘 불어오는 자연과의 싸움이 브리티시오픈이고, 유리판처럼 빠른 그린으로 선수들을 쩔쩔 메도록 하는 게 마스터스다.

올림픽은 전 세계 다양한 기량의 선수들이 나라별로 한정되어 출전한다. 기량이 좀 떨어지는 나라의 선수도 출전할 것이다.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100타 가까운 아마추어 타수를 낸 나라의 선수도 있었다. 올림픽이라서 뛰어난 선수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선수들까지 포용해야 한다.

또한 112년만에 열리는 만큼 멋진 버디를 잡아내면서 갤러리와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해야 한다. 후반 홀에서 전장이 줄면서 다소 쉬워지는 것처럼 보여도 이런 홀들이 중요하다. 메이저 대회에서처럼 기량 차이가 미세한 최고의 선수들이 파를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다양한 기량의 선수들이 버디를 꼭 잡아야 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선수 출신이 아닌 길 핸스가 이 코스를 세팅하고 후반 홀에 전장이 짧은 홀을 많이 배치한 것은 그런 걸 노린 게 아닌가 싶다.

올림픽 코스가 상징하는 것은 버디를 잡으면서 사람들의 환호를 불러오는 데 있다. 112년만에 정식 종목으로 들어온 골프가 앞으로 쭉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영웅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다. 올림픽 코스는 누가 영웅인지 가리는 전장이다. [헤럴드스포츠=남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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