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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택의 크로스카운터] '입식 여제’ 계보, 전연실-임수정 이어 ‘박성희 시대’ 열리나
뉴스| 2018-11-0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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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FC 여자 밴텀급(-52kg) 챔피언 벨트를 따낸 박성희(가운데).


최근 성황리에 종료된 MAX FC15 대회는 이례적으로 여성부 경량급 챔피언 매치가 메인 이벤트로 진행되었다.

입식격투기 무대로 돌아온 '명승사자' 명현만(33 명현만멀티짐)의 복귀전, 경량급 강자 김진혁(27 인천정우관)의 페더급 챔피언 1차 방어전, 40대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낸 '보험왕파이터' 황호명(39 인포유)의 챔피언전 등 묵직한 매치업이 준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은 과감히 ‘간호사 파이터’ 김효선(39 인천정우관)의 여자 밴텀급(-52kg)1차 방어전을 대진 최상단에 올렸다.

국내 입식 격투기 무대는 K-1이 황금기를 누리던 당시에도 여성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 초중반, ‘금녀의 벽’을 과감히 부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입식격투기와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던 정진체육관(대표 김충구)의 '미녀파이터 3인방'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격투팬 사이에서 속칭 ‘정진 3대천왕’으로 불리던 전연실, 김현성, 신지영의 등장은 거친 남성들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한국 격투기 무대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들은 미모는 물론 뛰어난 실력까지 갖춰 입식격투기 무대에서 체급 챔피언을 휩쓸더니 해외 대회에 꾸준히 문을 두드리며 ‘대한민국 여성파이터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맏언니 전연실이 척박한 국내 여성 파이터 시장을 개척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재능있는 파이터가 등장했다. 바로 ‘파이팅 뷰티’ 임수정이다. 임수정은 뛰어난 실력과 외모, 세련된 경기 매너를 보이며 각종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전연실이 여성 격투기 선수 활약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임수정은 여성 격투기 선수도 스타덤에 오를 수 있다는 실제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전연실과 임수정, 두 선수의 신구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일전이었고 결국 임수정이 쾌승을 거두며 2세대 여성 스타 파이터 임수정의 시대를 여는 듯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K-1의 몰락을 시작으로 격투기 시장은 전세계적인 침체기를 겪었고, 여성 입식격투기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 역시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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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 3대천왕. 좌측부터 신지영, 전연실, 김현성.


전연실, 임수정을 잇는 차세대 입식격투기 여제는?


시간은 10년 가까이 흘러 1세대 전연실, 2세대 임수정 두 선수 모두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즈음, 다시 한 번 입식격투기 무대에 여성파이터가 주목을 받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시작은 입식격투기 단체 MAX FC의 ‘파이팅게일’ 김효선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격투기 도전, 18년차 간호사라는 직업은 세인의 주목을 받기 충분했다. MBC 등 지상파에서 그의 이야기를 다큐프로그램에 다루기도 하고, 다양한 미디어에서 그의 인터뷰와 스토리를 다루며 김효선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MAX FC15 대회를 앞두고도 지상파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김효선에 대한 섭외 문의가 쇄도할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그는 유명세보다는 선수로서 경기를 우선시했다. 김효선의 아성에 도전하는 도전자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MAX FC 무대를 기반으로 무서운 상승세로 성장한 ‘똑순이’ 박성희(23 목포스타)는 최근 4경기에서 3승1패의 호성적을 거두며 맥스FC 여성부 챔피언 벨트를 정조준 했다. 3승 가운데 1승은 일본 선수와 가진 국제전이었고, 여성 경량급 경기에서는 보기 드문 하이킥 KO승도 있었다.

박성희 역시 과거 임수정이 그러했듯 화려한 테크닉은 물론 관중의 이목을 끄는 퍼포먼스, 격투기 대회 리포터를 자처할 정도로 달변과 끼를 갖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노원역 위치한 정진와일드짐 운영을 통해 여성을 위한 다이어트 및 호신술로서 격투기와 무에타이를 지도하고 있는 전연실은 “나의 현역 시절과 비교해 높은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엔터테이너로서 재능까지 갖췄다”며, “앞으로 박성희의 성장이 더욱 기대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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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는 김효선과 박성희(오른쪽).


이번 챔피언 매치는 여타 여성선수들의 시합과는 전혀 다른 치열하고 속도감 있는 격전으로 이어졌다. 5라운드 내내 단 한순간도 쉬어가는 타이밍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체력과 테크닉의 향연이었다. 관중은 열광했고 박성희의 카운터 공격에 김효선이 다운을 빼앗기는 순간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결국 임수정이 그러했듯 박성희는 김효선으로부터 벨트를 쟁취하며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4-1 판정). 1세대 전연실, 2세대 임수정의 스토리라인과 묘하게 닮은 박성희의 등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입식격투기 여성부의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이호택은 국내 종합격투기 초창기부터 복싱과 MMA 팀 트레이너이자 매니저로 활동했다. 이후 국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격투 이벤트의 기획자로 활약했다. 스스로 복싱 킥복싱 등을 수련하기도 했다. 현재는 마케팅홍보회사 NWDC의 대표를 맡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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