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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28] 다이헤이요고텐바와 한준 사장
뉴스| 2019-01-0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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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헤이요 고텐바 코스 18번 홀은 설봉이 뚜렷한 후지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일본 남자 투어(JGTO) 시즌이 클라이막스에 오르는 11월이면 후지산 설봉이 눈앞인듯 뚜렷하게 조망되는 시즈오카의 다이헤이요(太平洋) 고텐바 골프장에서 미쓰이스미토모비자다이헤이요마스터스가 열린다.

총상금 2억엔의 빅 이벤트인 이 대회는 1972년 창설돼 지난해까지 46회를 맞았다. 특히 지난해는 대규모 코스 리노베이션을 마친 뒤에 열려 일본의 최장타자 누가타 다츠노리가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김승혁이 2타차로 2위, 황중곤은 3타차 공동 3위로 마쳤다.

나는 대회를 마친 다음날 코스를 돌아본 뒤 재일교포 2세인 한준(韓俊) 대표와 인터뷰 했다. 그는 올해 88세로 미수(米壽)를 맞은 한창우(韓昌佑) 마루한 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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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 산기슭의 코스여서 다이헤이요 고텐바는 울창한 침엽수가 홀을 구분한다.


마루한의 새로운 사업 골프
1931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한 회장은 16세이던 1947년 일본으로 밀항해 검정 고시를 거쳐 호세(法政)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매형이 운영하던 파친코 매장에서 경험을 쌓아 교토현 미네야마에서 1957년 마루한을 창업했다. 파친코에서 시작했지만 탁월한 사업 수완을 발휘한 그는 볼링, 은행, 보험, 건축, 광고, 청소용역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오늘날 직원 1만5천 명을 거느린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다. 경영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자산 19억 달러로 일본의 17번째 부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성공한 한 회장은 고향을 잊지 않았다. 사재 50억원을 출연해 고향 사천에 장학재단 ‘한창우·나카코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기업가들 모임인 한상(韓商)총연합회를 창설해 이사장을 맡아 고국과의 협력 사업에도 열심이었다. 지난 2012년부터는 인천 영종도에 20억 달러 규모의 골프장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허브 드림아일랜드를 건설하고 있다.

일본 전역에 걸쳐 파친코홀 321개를 갖추고 1조5509억엔(지난해 3월말 기준)의 매출을 올린 거대 회사지만 마루한은 지난 2013년말 고텐바 코스를 비롯한 다이헤이요 골프장 17개소를 전격 인수해 레저 부문의 사업 다각화를 모색했다. 그리고 한준 사장이 골프장 운영을 맡게 됐다.

골프장 사업을 떠맡은 한 사장은 골프장들의 현황부터 파악했다. 그중에 대표 코스는 지난 2001년11월에 EMC월드컵을 개최했던 다이헤이요 고텐바였다. 당시 세계 제일의 선수였던 타이거 우즈가 데이비드 듀발과 디펜딩챔피언으로 미국 대표팀을 이뤄 일본을 찾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대회에서 어니 엘스와 레티프 구센이 호흡을 맞춘 남아공이 연장 승부에서 덴마크, 미국, 뉴질랜드를 꺾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후지산 산기슭에 자리한 이 코스는 매년 시즌 연말에 총상금 2억엔 규모의 JGTO투어 메이저급 미쓰이스미토모비자마스터스가 열리는 명소이기도 하다. 1973년에 시작한 이 대회는 4회째를 맞은 1977년부터 신설된 고텐바 코스로 옮겨온 뒤로 42년간 매년 늦가을에 열렸다. 이시카와 료가 두 번 우승하고, 일본에서 세계 랭킹이 가장 높은 마츠야마 히데키는 아마추어와 프로로 우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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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입구에 다이헤이요마스터스 우승자들과 스코어보드가 세워져 있다.


다이헤이요의 세 가지 혁신
한준 사장은 세 가지 혁신을 시도했다. ‘좋은 골프장은 국제 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코스에 유명 선수가 와야한다’는 지론을 가졌다. 그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서 두 번째 우승한 버바 왓슨을 초청했다. 이후 왓슨은 이 클럽에 회원으로 가입했고 3년간 내리 출전했다.

두 번째 혁신은 과감한 코스 리노베이션이었다. 모던 코스 설계의 거장인 로버트 트렌트 존스의 둘째 아들 리즈 존스와 이 코스에서 2승을 거둔 마쓰야마 히데키를 초빙해 리노베이션 하기에 이르렀다. 가토 슌스케가 설계해 1977년에 개장한 이 코스는 월드컵을 앞두고 투그린을 원그린으로 개조했었다. 하지만 40년 역사를 지나면서 현재의 투어 경향에 맞게 전략성과 게임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존스는 US오픈 코스 7곳, PGA챔피언십 8곳과 총 225개 코스를 리노베이션하면서 ‘오픈 닥터’라는 별명을 얻은 뛰어난 설계가다. 별명처럼 기존 코스 개조에 뛰어난 그와 마쓰야마의 아이디어가 시너지를 발휘했다. 코스를 돌아본 선수들과 미디어의 평가는 아주 좋게 나왔다.

세 번째는 회원 서비스의 확대였다. 다이헤이요 클럽에 가입하면 16개의 다른 다이헤이요 코스에서도 똑같이 회원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클럽의 모토가 ‘우리 클럽, 우리 코스(Our club, our course)’다. 17개 코스 중에 남녀 프로골프 대회를 개최한 곳이 10곳이며, 골프 아카데미는 4곳을 갖추고 있다. 이중에 호텔을 통해 숙박과 연계되는 곳이 3곳이고 나머지는 골프장이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해외에 제휴를 맺은 코스는 23곳에 이른다. 말레이시아의 고급 회원제 코스인 쿠알라룸푸르G&CC, 싱가포르아일랜드CC, 태국의 아마타스프링스, 호주의 더내셔널GC, 홍콩의 클리어워터베이CC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부킹할 수 있다.

대회를 마친 다음날의 코스는 완벽한 토너먼트 세팅이 특징이었다. 그린은 빨랐고 군데 군데서 후지산이 큼지막하게 배경처럼 보였다. 후지산이 지척에서 보이는 클럽하우스 별실에서 한준 사장이 코스 개조에 설명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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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헤이요클럽의 개혁을 설명하는 한준 대표.


마쓰야마와 존스의 시너지
유명 설계자인 리즈 존스와 선수인 히데키 마쓰야마가 합작한 코스 리노베이션이라는 점이 특이한데 서로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했나?
- 국제 대회를 개최하는 표준에 맞춘 개조였다. 마쓰야마는 PGA투어 5승을 거둔 선수여서 좋은 의견을 주었다. 특히 마쓰야마는 2011년에는 아마추어로 2016년에는 프로로 이 코스에서 2승을 했다. 코스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그는 ‘후지산이 예쁘게 보여서 좋지만 시합의 해저드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견을 주어 존스의 개조에 적극 반영됐다.

한창우 마루한 회장이 골프장의 운영위원회 회장으로 되어 있는데 역할은?
- 2014년부터 일반사단법인 태평양클럽의 명예회장이다. 사회갱생법을 신청해 어려움을 겪던 태평양클럽을 인수하면서 회사를 구해준 은인이다. 사원과의 신뢰 관계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위임해주고 있다.

예전 한일 여자골프 팀매치 대회가 양국을 오가며 매년 개최됐다. 한국에선 핀크스컵이었고 일본에선 마루한컵이었다. 혹시 다른 이름의 마루한을 건 대회를 개최하고 있나?
- 아쉽지만 한일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던 대회는 지금은 열리지 않고 있다. 마루한 이름을 건 대회는 일본프로골프협회(JPGA)가 주관이 된 마루한컵태평양클럽시니어가 2014년부터 매년 8월초에 효고현 고베의 다이헤이요클럽 로코 코스에서 개최하고 있다. 우리는 그 코스를 차후의 고텐바코스처럼 챔피언십 코스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업계의 활성화와 지역 사회 공헌에도 솔선수범하고 싶다.

17개 골프장이면 상당히 큰 규모인데 현재 일본에 아코디아나 PGM 등 대형 골프장 위탁체인 기업들이 성업중인데 다이헤이요는 어떤 차별된 비즈니스 전략을 가지고 있나?
- 모든 코스들이 하나같이 고급스럽다. 회원들에 한 하지만 회원이 되면 17개 골프장의 회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호텔, 쇼핑, 이벤트를 다각적으로 연결하는 점이 장점이다. 게다가 이를 해외의 유명 골프장과 연계 활용할 수 있다.

다이헤이요 고텐바 코스만의 특징이라면?
- 세계문화유산인 후지산 인근에 위치해 경관미와 전략성이 높은 코스다. 태평양골프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고 이를 대표하는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어떤 홀이 가장 마음에 드나?
- 파3 17번 홀은 그린에서 후지산이 바로 조망되어 좋고, 마지막 18번(파5)홀도 후지산과 홀이 어울려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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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이스미토모비자마스터스 다음날 17번 홀 그린. 후지산 설봉 중심으로 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고텐바 코스 18번 홀은 유명 골프 작가 조지 페퍼가 지은 <세계 500대 홀>에도 꼽혔다. 페어웨이 양옆으로 벙커가 있고, 그린 오른쪽에는 해저드를 두르고 있어 장타와 정확성을 모두 요하는 까다로운 홀이다.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바라보는 18번 홀은 후지산 정상의 설경과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한 사장은 “한국에서 10여 곳의 골프장에서 라운드한 적이 있는데 골프장 수에 비해 경영자와 골퍼들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면서 한국에서의 골프 경험도 잠깐 거론했다. 그는 많은 일본 기자들이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멀리서 온 나에게 먼저 시간을 할애해주었다.

하지만 최근 꽁꽁 얼어붙은 한일관계 탓인지 한국과 관련된 말을 조심했고 코스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나 역시 많은 것을 물어보지 못하고 이심전심, 마음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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