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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판 샐러리맨의 신화’ 이유성 단장, 은퇴
뉴스| 2020-09-0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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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말로 38년간의 대한항공 생활을 마감한 대한항공스포츠단의 이유성 단장.


탁구지도자로 입사해, 대기업 임원만 16년. 그 유명한 91년 지바 남북단일팀의 지도자, 구수한 입담의 탁구해설자, 그를 모르는 사람은 있었도 알면서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소문난 마당발...

또 한 명의 체육계 거물이 시대를 뒤로 한 느낌이 든다. 대한항공 스포츠단의 이유성 단장(63)이 지난 8월말로 대한항공에서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단장은 당초 지난 7월말로 사표를 냈으나, 회사 측의 만류가 있었고 본인이 은퇴은사를 고수하면서 8월말로 38년간의 대한항공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한항공스포츠단은 권혁삼 상무가 새 단장이 됐다.

이유성 단장은 “그동안 내 능력에 비해 너무 큰 짐을 져왔다. 한진그룹 임원 중 내가 최고령이었다. 지난해 조양호 회장이 갑작스레 돌아가신 후 회사나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진즉에 사임하려고 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올해 고 조회장님의 1주기와 조원태 회장의 한국프로배구연맹 총재 연임,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들의 결혼(7월 25일)을 치른 후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나겠다고 결심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세 가지를 모두 잘 마무리했기에 이제 해야할 일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탁구선수 출신인 이유성 단장은 명지여고 코치를 거쳐 1982년 탁구코치로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이후 대한항공 여자탁구단을 실업팀 최강으로 키웠고, 국가대표팀 지도자로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복식 금메달(현정화-홍차옥),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북한 단일팀 단체전 금메달 쾌거(이상 코치), 1993년 현정화(현 마사회 감독)의 예테보리 세계선수권 단식 우승,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복식 금메달(이은실-석은미, 이상 감독) 등 명성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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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때 남북단일팀의 여자팀 감독을 맡은 이유성 단장(왼쪽)과 북한의 리분희.


그는 해박한 탁구지식에 구수한 입담을 갖춰, 큰 인기를 끈 ‘탁구최강전’과 각종 국내외대회에서 방송해설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각기 다른 방송사에 탁구 중계 해설을 맡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워낙 방송을 잘해 “탁구가 아니라 올림픽 개회식 해설을 맡겨도 잘 해낼 것”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유성 단장은 대한항공과 체육계에서 행정가로 한 획을 그었다. 2004년 체육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한항공 임원으로 발탁됐고, 2006년 대한항공스포츠단의 수장을 맡았다. 이후 고 조양호 회장(1949~2019)을 보필하며 대한탁구협회,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한국프로배구연맹, 빙상계 등에서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탁구계에서는 2008년 조양호 회장이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연간 10억 원의 지원금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 ‘실세’였다.

체육인 특유의 성실함과 신의로 이유성 단장은 고 조양호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2018년 이 전무는 신장이식 수술을 받으며 장기간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게 되자 사표를 냈다. 그런데 조양호 회장은 사표수리는커녕 “건강을 회복한 후 회사로 복귀해 더 열심히 일을 하라”며 개인돈으로 수술비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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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성 단장은 공부하는 지도자이기도 했다. 2009년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모습.


이유성 단장은 삼성그룹과 한국 체육계에서 큰 노릇을 한 박성인 전 삼성스포츠단 단장에 이어 두 번째로 ‘체육인의 샐러리맨 신화’로 불린다. 흥미롭게도 박성인 전 단장도 탁구인 출신이며, 그는 이유성 단장을 유독 아껴 38년 전 “대한항공으로 가라”고 추천한 바 있다.

이유성 단장은 “과분한 자리에서 너무 오래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나니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원래는 딸의 미국집에서 장기간 머물며 쉬려고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딸이 한국에 와 있는 까닭에 지금은 집에서 손주와 함께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음 주 대한항공의 배구단과 탁구단을 들려 선수들에게 인사하려고 한다. 배구와 탁구가 겨울스포츠인 까닭에 그동안 겨울에 동남아골프를 한 번도 못해봤다(웃음). 앞으로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후배들에게 밥 잘 사주는 따듯한 원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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