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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호셜의 사과 김시우도 했더라면
뉴스| 2021-04-15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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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우가 화를 참지 못하고 퍼터를 내려치는 장면.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아마추어끼리 명랑 골프를 치는데 한 사람이 샷이 안 되면 분을 참지 못하고 코스에서 발끈할 때가 있다. 그 순간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동반자들은 하던 얘기를 멈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욱했던 골퍼는 즐거웠던 분위기를 깬 데 사과한다.

샷 하나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프로의 무대는 명랑 골프가 아니다. 치열한 전쟁터이고 상대방이 못해야 자신의 순위가 올라가는 비정한 곳이라 치솟는 분노를 드러낼 때가 있고 이는 보통 너그럽게 받아들여진다.

엄청난 투자로 선수의 모든 샷이 다 공개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애청한다는 ‘명인열전’ 마스터스에서는 좀 다르다. 예의와 품위, 그리고 매너는 돋보이고 여러 사람에게 칭찬받으며 그러지 않은 행동에는 싸늘한 냉대로 돌아온다.

골프는 용사(勇士)처럼 플레이하고 신사(紳士)처럼 행동하는 게임이다. -데이비드 로버트 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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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호셜이 웨지를 백에 치면서 화를 내는 순간이 수없이 퍼지자 호셜은 정중하게 사과했다.


호셜의 사과:
빌리 호셜이 마스터스 마지막 날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다. 2주 전에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매치플레이에서 우승하면서 기세좋게 오거스타내셔널에 입성했던 호셜은 마스터스 마지막날 뚜껑이 열렸다. 7번 홀에서 어프로치가 제대로 안 되자 웨지를 골프백에 세 번을 찍었다. 13번 홀에서는 래의 개울에 공이 빠져서 바지를 걷고 물에 들어가 샷을 해 트리플 보기를 적어내는 등 이날만 4오버파 76타를 쳐서 공동 50위로 마쳤다.

하지만 웨지를 백에 내려치는 자신의 영상이 트위터 등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자 그는 그날 저녁 트위터에 정중한 사과문을 올렸다. “나는 항상 불같은 경쟁자로 불행하게도 내 안의 화염이 가끔은 분출된다. 어떤 경우에도 그런 내 행동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며 특히 젊은 세대의 롤 모델로서는 더 그렇다. 나는 오거스타내셔널에 사과하며, 클럽의 멤버와 패트론(갤러리)에게 선을 넘은 내 행동을 사과한다. 나는 골퍼이자, 남편, 아버지이자 인간으로서 항상 더 나아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마스터스에서의 잊지 못할 한 주에 감사드린다.”

호셜이 올린 사과의 트윗은 하나도 빼지 않고 골프닷컴, 골프다이제스트 등이 소개했다. 하마터먼 우스꽝스런 별명이 붙을 만도 한 상황에서 선수의 진심어린 사과는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만용처럼 한 플레이는 신사처럼 한 행동으로 면책된 듯하다.

미스 샷의 변명은 당신의 동료를 괴롭힐 뿐만 아니라 본인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 - 벤 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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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엘더 뒤에서 특정 골프볼 한 슬립을 들고 서 있는 플레이어의 둘째 아들. 뒷줄 왼쪽 두번째. [사진=마스터스]


플레이어의 굴욕:
마스터스에서 3승을 하고 2012년부터 매년 ‘명예의 시타자’로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흑기사 게리 플레이어(남아공)의 둘째아들 웨인 플레이어가 오거스타내셔널 영구 출입금지를 당했다. 지난 8일 마스터스 개막을 알리는 시타 행사에 아버지의 캐디를 하면서 TV화면에 특정 골프볼을 의도적으로 홍보했다는 이유였다.

1975년에 흑인 선수로는 처음 마스터스에 출전했던 리 엘더가 사상 처음으로 마스터스에서 명예의 시타자로 소개되는 장면에서 엘더 뒤에 서서 볼 한 슬립을 카메라에 정면으로 비췄다. 어떤 이들은 무심코 보고 지나쳤고, 어떤 이는 기발한 홍보 전략에 감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난이 늘어났고 그는 “아버지가 어떤 볼을 쓰는지 보이겠다는 생각이었다”면서 의도적인 행동이었음을 시인했다. 해당 골프볼 브랜드 대표도 성명을 내고 웨인에게 로고를 노출하라는 부탁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어리석은 아들과 그의 구차한 변명으로 인해 플레이어로서는 말년에 굴욕을 당한 셈이다.

골프에 어느 정도의 기품이 없으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윌리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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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에 인사하는 마쓰야마의 캐디.


캐디의 경의:
마쓰야마 히데키(일본)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것과 함께 그의 2년 후배인 선수 출신 캐디 하야후지 쇼타의 행동이 주목받았다. 쇼타는 마쓰야마가 마지막날 18번 홀에서 한 타차로 우승을 확정하자 18번 홀 깃발을 챙겼다. 그리고 핀을 다시 홀에 꽂은 뒤 코스를 향해 모자를 벗어 정중하게 인사했다. 이 영상은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의 트위터, 중계방송사인 CBS, 미 PGA투어 등에 수백만 번 공유되었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캐디가 홀 아웃하면서 다음에 오는 이들을 위해 자주 목례를 한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없는 서양인들은 그 장면에서 감동을 받았다. 미국 골프의 성지인 오거스타내셔널에서 아시아에서의 첫 챔피언의 캐디가 코스에 대해 정중하게 예의를 표현하는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캐디는 당시 행동에 “단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 코스를 향해 머리를 숙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그 행동으로 인해 미국인들은 영어를 못하는 이방인이 그린 재킷을 차지하고 일본어로 인터뷰하는 것에도 박수갈채로 호응했다.

화가 나서 클럽을 내던질 때는 앞으로 던져라. 그래야 주우러 갈 필요가 없으니. -토미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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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2라운드를 마치고 인터뷰하는 김시우. [사진=마스터스]


김시우의 인터뷰:
김시우는 2라운드까지 선두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5 15번 홀에서 서드샷으로 한 칩샷이 홀을 지나 그린 가장자리까지 흘렀다. 퍼트 차례를 기다리던 김시우는 참았던 화를 분출했다. 퍼터를 들고 지면을 세게 내리쳤다. 그리고 퍼터가 휘어졌다. 잠시 후 그는 캐디를 손가락질하며 불렀다. 그 장면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

마스터스는 모든 선수의 모든 샷을 다 보여준다. 당시 장면은 수없이 리플레이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장면이 사라지고 3번 우드로 퍼트하는 모습만 나왔다. 골프룰에 따르면 선수가 고의로 클럽을 변경시켰다면 쓸 수 없다. 김시우의 행동에 대해 골프다이제스트는 다음날 메인 기사로 소개하면서 ‘마스터스 85년 역사상 가장 와일드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골프미디어 사이트에서도 다음주 월요일까지 가장 많이 본 기사에 올랐다.

라운드를 마친 뒤 김시우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과보다는 경기력에 대한 내용만 있었다. 웨지 대신에 왜 3번 우드를 사용했는지를 소개했고, 소망하던 대회에서 일요일에도 경쟁하고 싶다는 말로 맺었다. ‘여분의 퍼터가 있는가?’는 질문에 대해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죄송하다”고 끝맺었다.

올해 26세인 김시우는 가장 어린 나이인 17세에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합격했다. 올해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까지 투어 3승을 거뒀다. 투어에서는 결코 적은 경력이 아니다. 손가락질로 캐디를 부르고, 홀아웃하면서 공을 물에 던져버리는 행동도 보기에 민망했다.

호셜의 과격한 행동처럼 김시우의 화난 행동은 대회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호셜은 그날 바로 정중하게 사과하면서 잘못된 행동은 상당 부분 면책받았을 것이다. 김시우는 전통과 예의와 매너를 중시하는 마스터스에서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고 애매하게 넘어간 듯하다. 그 결과일지 모르나 김시우가 얻은 ‘스푼 김’이란 별명과 함께 마스터스 흑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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