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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49] 세계 100대 코스를 찾을 이유
뉴스| 2022-07-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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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대 18위 턴베리에서는 풀카트를 끌고 혼자서도 라운드할 수 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지난 스코티시오픈-디오픈 주간에 스코틀랜드를 찾아 디오픈 개최 코스와 세계 100대 코스들을 다수 돌아보았다.

필자가 세계 골프장의 위키피디아 격인 ‘톱100골프코스닷컴(top100golfcourses.com)’ 한국 패널로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올해로 150주년을 맞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의 디오픈을 찾기로 몇 년부터 지인들과 벼른 여행이었다.

‘골프 600년 역사’라고들 말하는 데 스코틀랜드는 골프의 발상지이자 역사다. 오늘날 전 세계 3만4천여개 골프장이 있지만 스코틀랜드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서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향유하는 골프의 규칙와 방식과 코스 형식들이 시도되었다. 그렇기에 세계 100대 코스 여행의 출발점은 스코틀랜드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9홀 규모 골프장인 머슬버러에서 골프장의 컵 규격의 기준이 정해졌다. 초창기에는 골프장마다 홀 규격이 달랐으나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1893년 머슬버러의 홀을 공인했다. 이 골프장은 1829년부터 해안가에서 파이프를 잘라 홀로 사용했는데 지름이 108mm(4.25인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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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트윅에서는 블라인드 홀인 5, 17번 홀에서 홀아웃하면서 징을 울려야 뒤 팀이 샷을 하게 된다.


1860년에 디오픈을 시작한 서부 해안 에어셔의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에서 챔피언에게 수여한 게 챔피언 벨트와 클라렛 저그가 오늘날 챔피언이 들어올리는 트로피다. 1851년 해안 언덕 옆에 12홀 3799야드로 개장한 프레스트윅은 1882년에 6홀을 추가해 18홀 코스로 늘렸는데 그 옛날의 그린과 홀이 지금도 남아 있다.

당시 2번 홀이던 파4 17번 홀은 ‘알프스’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세컨드 샷을 높은 잔디 언덕 너머로 잘 보내야 한다. 블라인드 홀로 그린이 안보이지만 포어캐디가 가리키는 지점에 짧으면 그린 앞 사하라 사막에 빠진다.

파3 5번 홀은 ‘히말라야’라는 별칭이 붙은 블라인드 홀이다. 티잉 구역에서 타깃을 가리키는 철도 침목이 언덕 꼭대기에 세워져 있다. 이 두 개의 홀은 홀아웃하고 종을 쳐야 다음 조가 안전하게 샷을 할 수 있다. 국내에도 홀을 마치거나 어느 지점을 지나면 종 치는 블라인드 홀들이 있는데 프레스트윅이 종의 원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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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1번 홀부터 해안가로 나가는 아웃 코스와 9번 홀에서 돌아 오는 인 코스로 18홀이 처음 만들어졌다.


1873년에 처음으로 디오픈을 개최한 뒤 올해까지 무려 30번을 개최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오늘날 ‘한 라운드=아웃 인 18홀’이란 틀이 잡힌 곳이다. 원래는 이 코스가 아웃-인 11홀씩 총 22홀이었다.

골퍼들이 늘어나면서 코스는 복잡해졌고 결국 1764년에 시작하는 짧은 파3 홀 두 개씩을 잘라 18홀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의 18홀 중에 10개 홀은 똑같은 홀을 두 번 도는 것이었다. 그 뒤로 100여년이 지난 1856년이 되어서야 오늘날처럼 다른 색깔의 깃대를 공략하는 더블 그린을 사용하는 18홀로 변경했다. 제주 클럽나인브릿지 골프장에서 더블그린 홀을 봤다면 올드 코스의 더블그린이 연상되면 좋겠다.

이스트로디안의 뮤어필드는 ‘명예로운 에딘버러골퍼 모임(Hono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 HCEG)’의 홈 코스다. ‘공은 놓인 그대로 친다’는 등 오늘날 골프룰을 만든 애초 13개 조항이 1744년 이 클럽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명망가들의 사교클럽이었던 HCEG는 이전까지 머슬버러를 홈 코스로 쓰다가 1891년에 이곳이 개장되면서 홈 코스를 옮겼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2년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16번이나 디오픈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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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어필드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는 HCEG 역대 회장의 초상화와 함께 실버클럽들이 전시되고 있다.


머슬버러는 경마장 트랙을 공동으로 사용해 9홀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18홀인 이 코스가 디오픈 개최 코스로 낙점된 것이다. 또한 이 코스는 9홀씩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18홀 구성이다. 아웃(Out)코스로 나갔다가 인(In)코스로 돌아오던 종전 방식에서 벗어난 첫 코스다. 오늘날 한국 코스들은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9홀씩 도는 뮤어필드 방식을 택한다.

HCEG의 코스여서인지 클럽하우스 프로샵에서는 골프룰 13개 조항 복사본을 두고 있고 각종 기념품들도 뮤어필드라는 이름 대신 HCEG를 박아둔다. 클럽하우스 정문에는 HCEG라는 이름과 함께 회원이나 게스트밖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적어두었다.

우리 일행은 세계 100대 골프 코스 전문 여행사인 센텀골프의 도움으로 클럽하우스로 들어가 기념품을 사고 회원들의 야외 정원에서 맥주 한 잔씩 마시면서 평화롭고 고즈넉한 스코틀랜드의 들판을 감상할 수 있었다. 회원 전용 레스토랑은 들어갈 수 없었으나 밖에서 본 레스토랑의 벽에는 역대 캡틴들의 초상화와 실버클럽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골프클럽과 골프코스, 컨트리클럽을 하나의 개념으로 여긴다. 하지만 원래 골프클럽은 골퍼들의 모임이고, 골프코스는 이와는 별도인 코스이며, 컨트리클럽은 골프와 테니스, 수영 시설 등을 복합적으로 갖춘 스포츠 클럽을 말한다. 말하자면 HCEG는 골프클럽이고, 뮤어필드는 골프코스다. 머슬버러 골프장은 예전 HCEG의 홈코스였으나 지금은 뮤어필드 코스를 HCEG가 독점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개념으로 쓰인다. 반면 머슬버러는 오늘날 저렴한 퍼블릭 코스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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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버딘의 크루덴베이는 그린피 20만원대의 세계 100대 코스다.


세계 100대 골프장이면서 디오픈 코스를 돌아보는 건 이처럼 골프가 어떻게 생겨나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일종의 역사 성지 순례에 해당한다. 이번 스코틀랜드 여행으로 내 세계 100대 코스 라운드 숫자는 30곳을 넘겼다. 언제일 지 모르나 향후 50곳 라운드를 채우는 게 새로운 목표가 됐다. 한 평생 골프를 쳐야 얼마나 칠 수 있을지, 과연 얼마나 더 많은 코스를 경험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골프매거진>이나 <골프다이제스트>와 같은 저명한 잡지사에서 전문 패널을 통해 평가하고 선정한 100대 코스는 충분히 가볼 가치가 있음을 다시 느꼈다.

<미술랭 가이드>의 최고 등급 쓰리스타의 정의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다’라고 규정한다. 진정한 식도락가가 시간과 돈을 내 먼 곳의 쓰리스타를 찾는 정성과 열정처럼 골프 애호가라면 ‘평생 세계 100대 코스를 몇 개까지 쳐본다’는 것을 버킷 리스트로 삼는 것은 훌륭한 목표 지향이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들을 치기 위해 더 열심히 돈을 벌고 건강을 잘 챙기고 친구도 사귀어야 하는 동기 부여가 된다.

그리고 사실 세계 100대 코스에는 엄격한 프라이빗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일본, 한국을 제외한 유럽에서는 제한적으로 부킹 가능하거나 언제나 열려 있는 코스가 절반 이상이다. 노하우를 알면 충분히 라운드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린피가 엄청나게 비싼 것도 아니다.

애버딘의 100대 코스 크루덴 베이는 20만원 대다. 캐디를 쓰지 않고 풀카트를 대여해 2명이나 한 명 부킹도 가능하니 야디지북을 보면서 라운드 하면 한국보다 더 저렴하게 100대 코스를 체험할 수 있다. 라운드를 마쳤을 때의 감동과 자족감은 미슐랭 쓰리스타 음식을 맛보는 것 이상이다. 적어도 너덧 시간의 감동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평생의 자랑거리가 생기는 건 말할 것도 없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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