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op

검색
닫기
[데스크 칼럼] 현금에 대한 추억
뉴스종합|2018-12-04 11:22

“왜, 이리 뚱뚱해?”

“세상이 어느땐데, 그렇게 뚱뚱하게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얼마전까지 아내로부터 듣던 핀잔이다. 몸 얘기가 아니다. 내가 ‘뚱뚱’하지만, 그걸 갖고 핀잔을 줄만큼 아내는 ‘크산티페’류는 아니다.

지갑 얘기다. 아내는 때론 한 술 더 뜬다. “지갑은 남자의 패션이야. 날렵한 지갑, 얼마나 좋아?”

뭐 따로 할 말은 없다. 내가 갖고 다니는 지갑이 뚱뚱한 이유는 단 하나다. 지갑엔 현금이 두툼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철학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갑에 카드만 있으면 불안하다. 절대로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지갑에 현금 몇십만원은 갖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아마, 지겹도록 가난했던 어린시절과 관련이 클 것이다. 돈 없던 설움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아내가 뚱뚱한 지갑 얘길 꺼내면, “하다못해 후배 아이 만나면 용돈이라도 줘야 하고, 갑자기 상 당한 사람이 있으면 부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냐? 카드결제로 못하는 일도 많이 생기니, 현금 있으면 좋지, 뭐”라며 자리를 피하곤 한다.

이런 내가 몹시 자랑스러운(?) 때가 있기도 하다. 최근 KT 아현지구 통신구 화재 사건이 일어난 주말이었다. 그날은 당직 날이었다. 당직때면 집앞 편의점에서 캔커피 등 몇가지 챙겨 회사로 가는게 패턴이다. 그날 역시 편의점에 들렀다. “오늘 카드 결제 안돼요. 죄송하지만 현금으로…”. 아르바이트 학생 같은 매장 직원이 미안한듯 말한다. “왜요?” “KT 화재 때문에…”. 그러고보니 KT 통신구 화재로 일대 통신대란에다가 결제대란이 벌어졌다고 하던데, 그 불똥이 우리 동네까지 튀었나 보다. 지갑에 현금이 있으니 결제엔 문제 없었다. 현금 계산 도중, 그가 한마디 내뱉는다. “현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요즘 별로 없어요. 물건 샀다가 카드결제가 안된다고 하니, 현금 없다고 그냥 가시는 분도 많아요. 오늘 헛일 많이 하게 생겼어요. 하하”.

여기까진 그런가 보다 했다. 아침 당직을 끝내고, 점심을 먹으러 후배 한명과 중국집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사장님이 말한다. “오늘 카드 안돼요. 현금만 받습니다.” “아, 현금 있어요.”

테이블에 물을 가지고 온 사장님이 미안한 듯 덧붙인다. “오늘 카드가 안돼, 다 드신후 난감해하는 손님들이 있어서 미리 말씀드린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그런데 사람들이 돈을 안갖고 다니나 보죠?” “열에 다섯 손님은 카드 안된다고 하면 그냥 돌아가세요. 요즘 사람들 다 그렇죠 뭐. 카드만 달랑 갖고 다니니까…”.

지하철 퇴근 길, 떠오르는 게 있다. 한달내내 실을 뽑으면서 받은 돈을 꾸깃꾸깃 내 주머니에 넣어주시던 할머니. 겨우내 대나무를 찌어 내다 판 돈을 모아 손주 주머니에 몰래 찔러주시던 외할머니. 주머니 속 손에 만져지던 지폐의 감촉, 그리고 사랑. 40년 이상 간직한 할머니들의 그 정(情)이 현금과 관련이 크다는 것을 지하철 안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용돈을 입금받는 시대, 이런 정은 절대로 모르리라.

근데 지하철에서 내릴때, 이런 생각도 든다. 현금없는 시대, 디지털로만 결제하는 시대라는데, 나만 거꾸로 사는 것일까. 아, 지금 웃고 있을때가 아니네.
 
ysk@heraldcorp.com
프리미엄 링크
베스트 정보
이슈 & 토픽
비즈링크

오늘의 인기 정보
핫이슈 아이템
실시간 주요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