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남기 “상황 악화 않는 ‘스탠드스틸’도 대안”…대화 지속하면서 관계 정상화 모색
[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의 일왕 즉위식 참석과 아베 총리 면담, 또 이를 통한 문재인 대통령 친서 전달 등으로 그동안 파국으로 치달았던 한일 관계에 정상화의 발판이 마련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경제적 측면에서 상황을 더 이상 추가적으로 악화시키지 않고 현상을 유지·관리하는 ‘현상유지’ 전략이 유력한 ‘출구’로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줄곧 주장해온 원상회복, 즉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까지 가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고 시행령 개정 등 절차도 복잡한데 따른 것이다.
한일 양국이 추가적인 보복 등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외교·군사·경제 분야의 협의 채널을 가동해 현안들에 대한 대화를 지속하면서 관계 정상화라는 최종적인 출구를 모색할 것이란 관측이다.
일본이 추가적으로 수출 규제 등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우리 기업들이 우려하는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한국으로선 다음달 22일 종료되는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과 사실상 중단된 민간교류 재개 등을 협상 카드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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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23일 일본 도쿄 주일한국문화원에 마련된 동행기자단 기자실을 방문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면담 전망에 대해 “일정한 정도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 |
24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7월 불화수소 등 3개 반도체 핵심 생산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로 촉발된 한일 경제전쟁의 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 주장했던 ‘원상회복’에서 한걸음 물러서 ‘현상유지’를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가 열린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일 갈등의 출구와 관련해 “협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우리는 원상복귀가 원칙이고 그것이 ‘베스트’지만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 ‘스탠드스틸(standstill, 현상유지)’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홍 부총리는 “우리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크게 우려하기 때문에 깔끔하게 없어지는(수출규제가 철회되는) 게 최선이지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를 철회하려면 시행령을 고쳐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이 일본에 제시할 수 있는 출구의 명분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걸 다 검토해서 리스트해 놓았다”며, “그 중에 하나가 지소미아고, 원전 문제도 그런 거고, 관광도 정부가 하는 게 아니지만 일본에 압박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정부가 모든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낙연 총리도 한일 대화의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 22일 출국하면서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정치·경제 지도자들과 만나 한일 간 대화를 촉진하도록 말씀 나누겠다”고 말했고, 23일에는 아베 총리와의 면담 전망에 대해 “최대한 대화가 촉진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대화를 좀 세게 하자’ 정도까지는 진도가 나가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번 이 총리의 방일과 대통령 친서 전달은 지난 1년 가까이 꽉 막히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일 관계의 추가적인 악화를 막으면서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큰 것으로 풀이된다. 한일 양국 정부는 과거사 인식이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입장 등 근본 현안을 둘러싼 한일 간의 큰 간극을 인정하면서, 외교·군사·경제 분야의 대화를 다각도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hjlee@heraldcorp.com